
“국산화는 잘 만들어진 남의 기술을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진정한 1등이 되기 위해서는 모방을 넘어 세상에 없던 창조적 혁신으로 세계 최초 기술을 만들어 승부해야 한다.”
대한민국 반도체 장비 산업 1세대 벤처 신화이자 산 증인인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의 철학은 확고했다. 1993년 창업 이래 30년 넘게 연구개발(R&D) 외길을 고집한 그는 주성은 물론 국내 모든 기업이 퍼스트 무버로 거듭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산화를 넘어 세계화를 이뤄내는 창조적 혁신만이 AI(인공지능)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승부수라는 것이다. 황 회장과 21일 경기 판교의 한 식당에서 미래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부터 태양광 에너지 비전, 투철한 기업가 정신 등에 관해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주성엔지니어링은 물론 한국 산업의 청사진 등에 대해 거침없는 식견을 쏟아냈다.
선진국 모방 불과한 ‘국산화’에 일침
황철주 회장은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이 관성적으로 외치는 '국산화'라는 단어 사용이 틀렸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국내 소부장 기업들이 크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국산화라는 이름 아래 선진국 기술을 따라가는 데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며 “모방을 통해 얻은 기술력에 안주한다면 혁신은 가로막힌다”고 지적했다.
해외 기술을 들여와 국산화(내재화)하는 것은 베끼는 것이기에 자체적인 국가 경쟁력 및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말이다. 황 회장은 선진국의 모방에 불과한 국산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출의 막대한 비중을 연구개발에 쏟아붓는다. 현재 매출의 20~30%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AI 반도체 미래, 로직·메모리 융합
AI 시대 도래와 함께 반도체 시장이 격변기를 맞는 가운데, 황철주 회장은 명확한 미래 청사진을 제시했다. 현재까지 로직(비메모리)과 메모리 반도체가 분리돼 있었지만 미래 AI 반도체는 이 둘이 한 공간에 존재하는 형태로 융합·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연산과 저장이 동시에 이뤄지는 혁신적인 반도체 구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를 위해 차세대 반도체 증착 기술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저온에서 원자 단위 박막을 한 층씩 증착하는 ALD(원자층 증착) 장비를 중심으로 지난해말 기준 885억원의 수주 잔고를 쌓았다. 글로벌 ALD 장비 시장에서도 2024년 기준 네덜란드 ASM과 일본 TEL, 미국 LAM 등에 이어 점유율 4위다.
그러나 반도체 선폭이 최근 1nm(나노미터)급으로 진입하며 기존 ALD 공법은 심각한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다. 박막이 얇아질수록 균일도가 낮아지고 복잡한 3D 구조에서는 물질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는 결함이 발생해서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LG(원자층 박막 성장) 기술을 개발·확보했다. ALG는 기판 표면의 에너지를 조절해 원자가 스스로 최적의 위치에 결합해 자라나는 성장 방식이다. 공정 정밀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켜 초미세 공정에서 나타나던 치명적인 수율 하락 문제를 혁신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기술력이다.
황 회장은 “원자를 층층이 덮어씌우는 ALD 방식은 지표면 위에 소복하게 쌓이는 눈과 비슷하다”며 “우리가 개척한 차세대 ALG 기술은 결정 자체가 단단하게 응집돼 얼어붙은 얼음과 같다”고 설명했다.
초미세 공정을 요구하는 미래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외부 충격이나 열에 쉽게 녹거나 흩어지는 눈이 아닌, 극한의 환경에서도 완벽한 구조적 무결성을 보이는 얼음과 같은 ALG 기술이 필수라는 얘기다. 황 회장은 ALG 기술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 판도를 바꾸겠다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태양광, 포기할 수 없는 ‘미래의 쌀’
반도체 중심 포트폴리오를 넘어 태양광 등에 대한 뚝심 있는 투자도 황철주 회장 특유의 집념을 보여준다.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는 것은 에너지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해야 하는 절대적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투자 당위성을 설명했다.
황 회장은 “기존 실리콘 태양 전지의 효율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친환경 광전 소자 신소재인 페로브스카이트 등을 적층하는 탠덤 기술이 해답”이라며 “발전 효율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차세대 태양광 장비로 글로벌 에너지 패권 판도를 흔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시장에서는 주성엔지니어링이 반도체 ALG 제품과 함께 글로벌 빅테크에 태양광 장비를 공급하면서 퀀텀 점프가 가능하다고 본다. 중국 정부가 태양광 장비 수출을 제한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현지 태양광 기술인 HJT 장비가 해당 빅테크 기업에 공급되지 못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태양광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주성엔지니어링이 수혜를 얻을 것이란 분석과 기대감으로 지난 20~21일 주가는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가총액 400兆 향한 출사표
황철주 회장은 주성엔지니어링의 성장 목표를 묻는 질문에 ‘시가총액 400조원 달성’이란 파격적인 화두를 던졌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창조·혁신적 가치를 지속 창출한다면 대한민국 벤처기업도 글로벌 빅테크에 버금가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의 표명이다.
창업주로서 피할 수 없는 경영 승계에 대해서도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황 회장은 “국내 많은 기업이 자식이라는 이유로 능력이 부족해도 경영권을 물려주려 하는데 이는 회사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며 “경영은 철저하게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맡아야 하며 자식이라도 자격이 없다면 절대 물려줘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황철주 회장의 아들 황은석 사장은 2024년 주성엔지니어링에 합류했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박사 학위 소지자로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한 바 있는 황 사장은 ‘사장’으로 입사해 미래전략사업부를 총괄했다.
재계에서 흔하지 않은 모습이다. 오너 2~3세는 대부분 과장이나 차장 등으로 입사해 실무 경험을 쌓은 후 초고속 승진을 통해 고위 임원으로 발돋움한다. 반면 황 사장은 합류 시점부터 사장급으로 시작해 지난해 9월에는 황철주 회장과 함께 각자 대표로 선임됐다.
황 회장은 “황 사장이 직원으로 주성에 합류했다면 해당 조직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을 수 있다”며 “삼성전자에서 수년간 실무 경험을 쌓은 만큼 경영진의 시선으로 회사와 사업 등을 다룰 수 있도록 각자 대표이사 중 한 자리를 맡고 있다. 앞으로도 끝없이 역량을 발전시켜 기업과 시장, 주주에게 CEO로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황 회장은 벤처 1세대다운 묵직한 제언을 했다. 빵을 얻기 위한 노동은 고통스럽지만 세상 판도를 바꾸는 1% 혁신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남들이 닦아 놓은 안전한 궤도를 거부하고 30년 넘게 스스로 길을 개척해 왔다. 황철주 회장의 시선은 이미 퍼스트 무버를 넘어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시가총액 400조원이라는 혁신 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진정으로 목숨 걸고 집중해야 할 것은 남들이 감히 생각하지도, 시도하지도 않은 1%의 혁신”이라며 “1%에 집중해 새로운 가치를 극대화하고 세상의 판도를 바꾸는 것이 기업가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주성엔지니어링이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할 영원한 방향성”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유호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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