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과 리오넬 메시의 첫 MLS 맞대결은 경기 전부터 이미 이벤트였다. 그래서 더 놀라운 건, 그 이벤트가 막상 시작하자마자 “쇼”가 아니라 “경기”가 됐다는 점이다. 관중 7만 5천 명이 넘게 몰린 메모리얼 콜리세움은 축제 분위기였지만, LA FC는 축제에 취하지 않았다. 개막전부터 디펜딩 챔피언 인터 마이애미를 3-0으로 눌러버렸고, 그 한가운데에 손흥민이 있었다.

“판정승”이라는 표현이 붙었지만, 사실 이날 승부는 판정으로 갈 필요가 없었다. 숫자 그대로, LA FC가 세 골을 넣고 한 골도 안 줬다. 메시는 풀타임을 뛰었고, 손흥민은 88~89분을 소화하며 결승골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같은 필드에 서 있었지만, 경기의 중심축은 메시가 아니라 손흥민이 만든 ‘전환’과 ‘공간’이었다.

경기 초반부터 손흥민의 움직임은 한 장면만 봐도 느낌이 왔다. 전반 6분, 부앙가의 스루패스가 들어가자 손흥민은 단숨에 골키퍼와 일대일을 만들었다. 여기서 ‘슛’이 먼저 나올 줄 알았는데, 손흥민은 한 번 더 골키퍼를 속이려다 스텝이 길어졌다. 결정적인 장면을 놓친 건 분명 아쉬웠다. 하지만 이 장면이 의미한 건 따로 있었다. 마이애미의 수비 라인은 생각보다 느렸고, 손흥민의 첫 스프린트 한 번에 이미 흔들렸다는 사실이다.
이후 전반 13~14분 프리킥 장면에서도 손흥민의 “오늘 컨디션”이 보였다. 좋아하는 위치에서 오른발로 벽을 때렸고, 튕겨 나온 공을 다시 발리로 처리하려 했지만 수비에 맞았다. 결과만 보면 ‘무산’이지만, 흐름은 달랐다. LA FC는 손흥민을 중심으로 ‘빠르게 끊고 빠르게 들어가는’ 그림을 계속 그렸고, 마이애미는 메시의 중앙 돌파로만 해답을 찾으려 했다.

전반 37~38분, 승부를 가른 장면은 손흥민이 가진 장점이 정확히 응축된 5초였다. 마이애미 수비 실수로 열린 역습, 손흥민은 공을 잡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파고드는 다비드 마르티네스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침투 패스를 찔렀다. 포인트는 ‘화려함’이 아니라 ‘정확함’이었다. 패스의 속도, 방향, 도착 시점이 딱 맞아떨어지니 마르티네스는 골키퍼와 1대1에서 침착하게 감아차기로 마무리했다. 손흥민의 리그 1호 도움이자, 개막전 결승골의 출발점이었다.
마이애미는 후반 초반 확실히 변화를 줬다. 라인을 올리고, 공격 숫자를 늘리고, 메시의 터치 횟수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후반 18분 베르트라메의 헤더, 후반 23분 프라이의 슈팅 등 “한 방”은 몇 번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LA FC 수비는 흔들리기보다는 더 단단해졌다. 위고 요리스를 중심으로 라인이 내려앉을 땐 내려앉고, 박스 앞에서 몸을 던져 막아냈다. 마이애미가 원하는 ‘메시의 마법 한 번’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로, 경기 자체를 바꿔놓은 셈이다.

그리고 이런 경기에서 가장 잔인한 순간은, 상대가 몰아칠 때 한 번의 역습으로 목을 조르는 장면이다. 후반 28분, LA FC는 딱 그걸 했다. 틸먼의 긴 패스가 전방으로 날아갔고, 드니 부앙가는 골키퍼가 애매하게 나온 틈을 놓치지 않았다. 머리로 한 번 치고, 빈 골문에 밀어 넣는 추가골. 이 골이 의미하는 건 ‘개인기’가 아니라, LA FC가 후반에도 체력과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개막전에서 이걸 해내면, 시즌 내내 “이 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박힌다.
손흥민은 2-0 이후에도 “수비형 공격수”처럼만 뛰지 않았다. 후반 41~43분쯤, 손흥민이 왼쪽 페널티박스에서 침투해 공을 받았고, 골키퍼까지 제치는 장면이 나왔다. 각이 없으니 중앙의 부앙가에게 내줬는데, 부앙가의 슈팅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으며 공격포인트 추가는 무산됐다. 하지만 이 장면은 손흥민이 왜 무서운지 보여준다. 득점이 아니라, 상대 수비가 ‘다음 한 번’을 더 두려워하게 만드는 플레이다.

교체 장면에서 손흥민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나는 그 표정이 오히려 반갑다. 이길 때도 만족하지 않고, 한 장면 더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는 선수는 팀을 끌고 간다. 특히 MLS는 시즌이 길고, 원정 이동이 빡세고, 기복이 많은 리그다. 그 리그에서 손흥민 같은 ‘기준점’이 있으면 팀은 흔들려도 금방 돌아온다.
반면, 메시의 마이애미는 이날 너무 ‘익숙한 방식’에 머물렀다. 메시가 중앙에서 공을 잡고, 그 주변이 움직이며 해법을 찾는 구조. 물론 그 방식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LA FC는 그걸 알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메시가 공을 잡게 하되, 메시가 끝내게 두지 않는’ 방식으로 압박을 쪼갰다. 그래서 이날 경기는 “손흥민이 메시를 이겼다”라기보다, LA FC가 마이애미의 패턴을 해체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개막전 한 경기로 우승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막전 한 경기로 “그 팀의 기질”은 충분히 말할 수 있다. LA FC는 단순히 이긴 게 아니라, 강팀을 상대로도 흔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이겼다. 손흥민은 그 안에서 1도움을 했지만, 사실 더 큰 기여는 ‘경기를 설계하는 움직임’으로 만들어냈다. 이제 MLS는 더 이상 “유명 선수들이 가는 리그”가 아니다. 유명 선수가 리그를 바꾸는 리그가 됐고, 그 첫 페이지에 손흥민의 이름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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