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SK 최태원·노소영의 재산분할

SK㈜ 지분 등 총재산의 10%가 상한선

사업파트너 게이츠·베이조스 부부도 20%

“최회장 재산은 부부재산 아닌 가문 재산”

지난해 5월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 부장판사)는 예상을 뒤엎고 최 회장에게 1조 3808억 원의 재산분할을 명했습니다. 이에 로펌업계에서는 상고심 수임 경쟁이 물밑에서 치열했습니다. 고등법원 가사2부의 판결은 일부일처제를 깬 최태원 회장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자 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으로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로펌업계는 300억 원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이 SK그룹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인정한 항소심 판결에 의구심을 보였습니다. 비자금(뇌물)이 SK그룹 성장과 주식 가치 형성에 기여했다고 본 판결이 부당하다고 본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누구든 수임만 하면 상고심에서 이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예상대로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의 판결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습니다. 대법원은 상고심 판결에서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의 반환청구 배제’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다소 어려운 법률 용어지만 내용은 상식적입니다. 부정한 행위를 한 사람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도박판에서 진 빚은 갚지 않아도 됩니다. 도박 자체가 불법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노태우 비자금도 애초 불법 뇌물이므로 그 돈이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 하더라도 이를 인정하거나 보호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 1부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모든 재판이 정치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재판일수록 외적·정치적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세기의 이혼’, ‘세기의 재산분할’로 불린 이번 사건의 대법원 파기환송 역시 이런 여러 외부 요인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물밑에서 치열했던 상고심 수임 경쟁

우선 눈여겨볼 점은 윤석열 정권의 퇴진입니다. 재계에서는 ‘미술’이라는 공통의 관심사와 일을 매개로 한 노소영 관장과 김건희 여사의 인연, 그리고 최태원 회장에 대한 김 여사의 부정적 인식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윤석열 정권의 퇴진은 이혼 재판 중인 최 회장 입장에서는 결코 나쁠 것이 없었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그대로 있었다면 어떤 판결이 나왔을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또 하나의 외적 변수는 SK하이닉스의 급성장입니다. SK하이닉스는 대만의 세계적 반도체 기업 TSMC처럼 삼성전자와 함께 대한민국을 지키는 ‘호국신산(護國神山)’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재계는 물론 일반 여론과 정치권까지 글로벌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K하이닉스의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대법원 역시 이런 여론의 흐름을 잘 알고 있었고,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13년 전 SK하이닉스는 최태원 회장의 결단으로 장기 적자와 워크아웃 상태에서 벗어나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제는 SK하이닉스가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회사로 성장해 위기에 빠진 최 회장을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재산분할 소송은 서울고등법원 가사1부에 배정돼 새 판결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세기의 이혼’으로 불리는 만큼 최종 결론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파기환송심 과정에서 양측이 전격 합의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1심의 665억 원은 지나치게 적었고, 항소심의 1조 3808억 원은 너무 과했기 때문에 그 중간선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최소 1000억 원에서 최대 7000억~8000억 원 사이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 퇴진이 재판에 미친 영향

모든 이혼 소송은 재판관의 주관적 판단이 크게 작용하는 ‘원님 재판’의 성격이 강해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는 있습니다.

‘세기의 이혼’의 원조는 미국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부인 매켄지 스콧(개명 전 매켄지 베이조스)의 이혼입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부인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의 이혼이 있습니다.

베이조스 부부는 1993년 결혼해 25년 만인 2019년에 합의 이혼했습니다. 제프 베이조스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마존 주식 16%(당시 1500억 달러) 중 25%에 해당하는 4%(358억 달러)를 매켄지 스콧에게 양도하는 조건이었습니다. 다만 매켄지가 받은 주식의 의결권은 제프 베이조스가 행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빌 게이츠와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는 1994년 결혼해 27년 후인 2021년에 이혼했습니다. 이혼은 베이조스 부부보다 훨씬 복잡했으나 전체 자산의 약 20%를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가 받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당시 두 사람의 총자산은 약 1300억 달러로 추산됐습니다. 멀린다 게이츠가 이혼 초기 받은 주식과 2024년 재단 공동의장에서 사임하며 받은 금액 등을 합치면 약 250억~300억 달러로, 전체 자산의 19~23% 수준으로 평가됩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부부 공동재산제’를 원칙으로 하며 혼인 기간 중 획득한 재산은 반씩 나누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이들 부부가 이혼한 워싱턴주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매켄지 스콧과 멀린다 게이츠는 단순한 가정주부가 아니었습니다. 매켄지는 제프 베이조스와 함께 아마존을 공동 창업했고, 멀린다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젝트 관리와 제품 마케팅을 담당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게이츠 재단을 공동 설립해 운영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동반 창업자이자 전략적 사업 파트너였습니다. 그럼에도 재산분할은 20% 수준에 그쳤습니다.

가정주부 아닌 공동 창업자의 재산분할

노소영 관장은 아트센터 나비 관장으로서 SK그룹의 사회공헌에 기여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아마존의 매켄지 스콧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처럼 그룹의 공동 창업자도, 전략적 사업 동반자도 아닙니다. 오히려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이혼 맞소송 제기부터 2025년 10월 상고심 판결에 이르기까지 5년간 최태원 회장과 SK그룹을 공격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에게 최 회장을 비방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재산분할 문제를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달리 SK그룹은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창업한 회사가 아니며 개인 회사도 아니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우리나라 다수 대기업집단이 그렇듯 SK그룹의 재산은 ‘가문의 공동재산’이지 ‘최태원·노소영 부부의 재산’이 아닙니다.

최 회장의 SK㈜ 지분 17.7%도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그룹의 안정적 지배구조를 위해 직계 동생은 물론 사촌 형제들까지 자신들의 몫을 포기한 결과입니다. SK그룹은 오래전부터 ‘사촌경영’으로 유명하며 지금도 최 회장의 4촌인 최창원 부회장이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맡아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하면 노소영 관장에게 돌아갈 몫은 많아야 최 회장 재산의 10%, 보수적으로 보면 1000억 원 수준으로 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10월 말 기준 최태원 회장의 재산은 상장사인 SK㈜ 지분 17.7%의 시장가치 약 3조 원과 두산그룹이 인수를 검토 중인 비상장사 SK실트론 지분 29.4%의 가치 약 9000억 원 등을 합쳐 최대 4조 원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노소영 관장 몫, 보수적으로 1000억 수준

올해 들어 증시 호황과 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 실적 호전으로 지난해 항소심 판결 당시보다 최 회장의 재산이 1조 원가량 늘었습니다. 현시점에서 최 회장의 재산을 총 4조 원 수준으로 본다면 서울고등법원 가사1부의 파기환송심 판결도 최대 4000억 원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SK그룹 일각에서 “노소영 관장에게 3000억~4000억 원 수준을 지급하는 조건이면 합의할 만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1000억 원 이상은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최 회장이 상당한 채무를 안고 있는 데다 그룹 지주사 주식을 매각할 경우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 회장은 올해 SK㈜ 주식을 담보로 약 5000억 원 규모의 대출약정을 체결했습니다.

재계 서열 2위 그룹의 총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현금 여력이 크지 않다는 점은 향후 재산분할을 판단해야 하는 법원 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것입니다.

노소영 관장 역시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 받은 20억 원의 위자료 외에는 눈에 띄는 자산이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노 관장 쪽의 조급함이 커질 것입니다. 반면 시간은 최태원 회장 편입니다. 만약 서울고등법원 가사1부가 과도한 재산분할을 판결할 경우 최 회장은 다시 상고할 수도 있습니다.

노 관장이 조 단위의 재산분할에 집착하는 이유가 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 자녀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두 사람의 이혼이 확정되면서 최 회장은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 합법적으로 혼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경우 장차 상속 과정에서 법적 배우자인 김희영 이사장과 그 자녀들에게 더 많은 재산이 돌아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노 관장이 이를 우려해 재산분할에 집착한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시간은 노소영 아닌 최태원 편

노소영 관장 입장에서는 공개적으로 ‘상간녀’라 비난했던 김희영 이사장 쪽으로 최 회장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흘러가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런 논리는 많은 억측과 비약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최태원 회장 유고 시 누구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고 어떤 비율로 재산을 분배할지는 SK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문제입니다. 이는 노소영 관장에 대한 재산분할 문제보다 훨씬 중요하며, 동시에 두 사안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최 회장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어떤 승계 구도가 가장 바람직할까요. 이 부분은 다음 칼럼에서 다뤄보겠습니다.

박종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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