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뒤 1℃ 상승마다 실향민 10억명” 제러미 리프킨 인터뷰
1973년 12월 미국의 주유소마다 긴 줄이 늘어섰다.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OPEC)이 석유 수출을 금지하면서 일어난 ‘1차 석유파동’(오일쇼크)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젊은 제러미 리프킨은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빈 석유통을 바다에 던지는 시위를 계획했다. 이 ‘오일 파티’는 1773년 ‘보스턴 티파티’의 기원이 된 시위를 본뜬 것이었다. 과세에 항의해 차 상자를 바다에 던지는 시위는 미국 독립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행동 당일 새벽 5시 눈보라가 쳤다. 여자친구와 길을 나서며 “우리밖에 없겠는걸” 했는데, 웬걸 2만명 화석연료의 종말을 부르짖었다.
경제학자, 사회학자, 미래학자 등의 면모 뒤에 제러미 리프킨의 사회운동가 모습은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9일 저녁 8시(한국시각)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리프킨(미국 워싱턴 경제동향연구실 사무실에서 인터뷰)은 50년 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와튼 스쿨에서 15년간 경제학 강의를 하기도 한 그는 ‘위기는 기회다’라는 경제학의 금언이 여섯 번째 멸종을 맞을지도 모르는 ‘인류의 기회’에 대해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 행동하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정부는 ‘시대착오적’이라고도 매섭게 비판한다. 지난 3일 전 세계 동시 발행된 ‘플래닛 아쿠아’는, 격하게 말하면, 그가 주동하는 ‘하이드로이즘’(물 생태주의) ‘시위’의 ‘팸플릿’이다.
“상상해보라. 지구 80억 인구가 깨어났는데 어디에 살고 있는지 행성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면 어떨지를.”
리프킨은 행성의 위기로 전 세계인이 급격한 변화 속에 있다고 말했다. 제목으로 내세운 ‘플래닛 아쿠아’는 ‘물의 행성’인 지구를 가리킨다. 물은 이제 ‘회복력’을 되찾으려고 한다.
회복력(resilience, 탄성력)은 눌렸던 스프링이 원래로 돌아오는 것을 뜻하는데, 리프킨은 “6천년 전 강 유역을 시작으로 번영을 누리기 시작한 도시 수력 문명이 끝나고 물의 재야생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물의 행성’인 지구는 ‘회복’하기 위해 복수를 시작했다. “가뭄과 홍수, 꺼지지 않는 산불, 녹아버린 빙하, 마실 수 없는 물”이 그 증거다. 물의 재야생화 사례도 전 세계에 차고 넘친다. 중국 베이징의 식수를 공급하는 지하수의 수위는 매년 1m씩 낮아지고 있고, 미국 시카고의 전력 시설 등 인프라는 지표면 아래 지반이 가열되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리프킨은 “지구 온도가 1℃ 상승할 때마다 실향민 10억명이 생길 것”이고 이는 “50년 후가 아니라 20년 뒤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신유목민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리프킨의 전망은 긍정적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뒤 2만5천년의 95%를 유목민으로 지냈기 때문이다.” 대두하는 새로운 기술 역시 인류 편이다. “‘슬로워터 운동’ ‘수자원 마이크로그리드’ ‘스펀지 도시’, 물을 250배 적게 쓰는 농업 등이 실험”되고 있다. 여기에는 태양과 바람의 재생에너지도 포함된다. “2019년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의 고정 비용이 급락했습니다. 태양과 바람은 우리에게 청구서를 보내지 않습니다.(한계비용 제로)”
리프킨은 화상 인터뷰에서 종이에 써온 메모를 읽었다. 경제-사회-역사를 꿰뚫고 의제를 설정하는 힘을 가진 미래학자가 예상하는 미래상은 이러했다.
“소유에서 접근성으로, 수직적 경제에서 수평적 경제로, 중앙집권에서 분권 조직으로, 지식재산권은 오픈소스로, 몇몇 대기업 의존하지 않고 민첩한 중소기업이 전면으로, 제로썸 게임에서 네트워크 효과로, 세계화에서 세방화로, 지정학 중심 아닌 생태 중심 정치로, 국민 국가는 생태지역 개념으로 전환될 것입니다.”
밝은 미래의 전제는 당연히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한국 정부와 산업계에 그는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한국은 재생 에너지 산업을 축소했고, 동해에서 새 석유·가스전을 개발하고 있다. 14개 신규 ‘기후대응 댐’ 건설도 발표했다. 원자력 에너지 부활을 선언하고 케이(K)-원전이라며 외국의 원자력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원자력은 석탄·석유·천연가스를 이용해 터빈을 돌리고 물을 이용해 냉각합니다. 전체 전기의 68%를 원자력으로 제공하는 프랑스는 최근 기온이 높아져 냉각수를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발전소가 멈췄습니다. 비용이 훨씬 낮은 재생 에너지 대신 오래된 기술을 쓰는 한국이 안타깝습니다. 특히 기후 위기를 직격탄으로 맞고 있는 상황에서요.”
“물의 행성에 알맞은 세계관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존 듀이가 ‘듣고 그에 대답하라’고 말했듯, 물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 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리프킨의 절박한 외침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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