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과 ESG] 산업 부문의 기후변화 적응… 범위 넓히고, 업종별로 접근해야

이시형 대한상공회의소 탄소중립실 과장 2024. 10. 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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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해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이 5월 20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2050 탄소 중립·녹색성장위원회 주최로 열린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수립을 위한 콘퍼런스’에서 미국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뉴스1
이시형 대한상공회의소 탄소중립실 과장 세종대 환경공학 학·석·박사, 현 세종대·카이스트(KAIST) 겸임교수

기후변화 문제의 대응 방법으로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기후변화 적응이란 기후변화에 의한 부정적 영향은 줄이고 긍정적 영향은 최대한 이용하자는 개념이다.

기후변화 대응 초기에는 선진국은 온실가스 감축(mitigation), 개도국은 기후변화 적응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그러나 2015년 ‘파리협정(Paris Agreement)’ 체결로 이제 당사국 모두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적응 계획을 포함한 종합적인 목표(NDCs·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를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10년 ‘제1차 기후변화 적응 대책(2011~2015년)’ 수립을 시작으로 본격 기후변화 적응 정책을 시행했다. 현재는 ‘제3차 적응 대책(2021~2025년)’이 추진 중이며, 해당 대책은 5년 단위로 목표(NDCs)를 수립하고 이행 경과를 점검하는 파리협정 이행 체계와도 맞물려 있어,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기후변화는 기업의 원자재 확보에서부터 마지막으로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단계까지 공급 사슬(supply chain) 전체에 매우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85% 이상을 배출하는 산업·에너지 부문의 기후변화 정책은 지금까지 온실가스 감축을 중심으로 추진됐다. 기업도 새롭게 생긴 온실가스 감축 규제를 준수하는 것을 기후변화 대응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 강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변화 현상 등으로 인해 기업은 더욱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최근 국가의 감축 규제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사회적인 기후변화 대응 요구와 기후변화 대응 우수 기업에 프리미엄을 부여하고자 하는 자본 및 제품 시장 변화가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에서는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산업 부문 기후변화 정책 추진 성과와 향후 정책 추진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산업 부문 기후변화 적응 대책(2011~2020년)

기후변화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비즈니스 전반에 걸쳐 매우 광범위하다. 즉, 기후변화로부터 발생 가능한 모든 위험과 부정적인 영향에 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업은 다양한 기후변화 위험 요인별로 발생 가능성과 영향 정도를 파악해 적절한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

제1·2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 대책에 근거해 지난 10년간 추진된 산업 부문 기후변화 정책의 가장 주요한 성과는 기업이 기후변화의 위험 요인별 우선순위를 파악해 효과적인 기후변화 적응 대책이 수립되도록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1│사회 기반 시설 적응 보고제 도입

전력, 도로, 철도 등 사회 기반 시설의 기후변화 피해는 공공서비스 중단을 초래해 엄청난 인명 및 재산 피해 등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정부는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기후변화 위험성을 평가해 적응 활동의 우선순위를 선정, 이와 관련한 대책을 수립할 수 있게 위험성 평가 도구를 개발했다. 또한, 2016년부터 공공기관이 수립한 적응 대책을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는 ‘공공기관 적응 보고제’를 실시하고 있다.

/셔터스톡

2│기후변화 취약성 평가 체계 구축

우리나라는 국가 산업화 기반 구축을 위한 주요 방법으로 산업단지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항만과 전력, 공업용수 등 산업 기반 시설의 건설 경제성을 높이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개발해, 산업단지의 기후변화 피해는 대규모 기업에 연쇄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우리나라는 산업계 기후변화 취약성·적응 진단 툴(ICAT·Industrial Climate change Adaptation Tool)을 개발하고,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기후변화 취약성 평가를 하고 있다. ICAT 평가를 통해 도출된 산업단지별 취약성 정보는 입주 기업에 제공돼 자발적인 적응 대책 수립을 유도하고 있다.

3│민간기업 기후변화 리스크 평가 시스템

민간 부문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한 산업 부문 전반의 기후변화 적응 역량을 강화하고자 기업의 기후변화 리스크 평가 시스템(CRAS 시스템·Climate change Risk Assessment System)을 개발했다. CRAS 시스템을 통해 기업은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과 피해를 추정해 볼 수 있고, 경영 활동 전반에 대한 기후변화 영향을 점검함으로써 적응 대책 수립이 가능하다. 또한, 기후변화에 취약한 중소기업이나 기후 민감 업종 등을 대상으로 맞춤형 기후 적응 컨설팅을 제공해 기후변화 적응 대책 수립 지원 체계도 구축했다.

기후변화 적응, 탄소 감축과 통합적 접근해야

지난 10년 동안 기후변화 적응 정책 시행 결과, ‘적응’에 대한 인식 확산과 기업의 기후변화 취약성·리스크 평가 체계 구축 등의 매우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 국가 및 지자체 수준에서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수립하고 공공 부문과 산업단지에 적용하는 단계까지는 진척돼 있으나, 민간 부문(민간기업)까지의 확산에는 다소 미흡한 점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 해소와 효율적인 기후변화 적응 대책의 이행을 위해서 다음 같은 사항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산업 부문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범위 확장’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적응 범위를 기후 요인에 따른 직접적인 물리적 피해 대응으로 한정하다 보면 기업의 적응 대책도 시설 관리 측면으로 한정 지어진다. 특히 기후변화 영향으로 정책, 규제, 사회적 요구 등에 따른 시장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는 적응 산업·기술의 육성과 해외 진출이라는 ‘기회의 활용’ 측면은 어려울 수 있다.

둘째, 주요 ‘업종별 접근’이 필요하다. 각 업종의 고유 특성으로 인해 기후변화 영향도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보다 현실적인 기후변화 적응 논의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업종별 연구 및 논의 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셋째, ‘공급 사슬의 협력’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시장의 변화, 이해관계자 요구 등에 민감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절된 단일 기업 차원이 아닌 일련의 공급 사슬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 온실가스 감축 측면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공급 사슬 관리 개념이 도입됐기 때문에 이를 적응 분야까지 확산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활동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생산공정과 건물 구조 개선은 온실가스 감축에도 효과적일 수 있다. 반면, 기업이 기후변화 적응 측면에서 온도, 습도 등의 근로 조건을 향상하면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될 수도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 적응과 온실가스 감축의 통합적 관점에서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고,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사회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기후변화 적응은 기후변화 대응의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0년부터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수립·이행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국가 기후변화 적응 대책이 성공적으로 이행돼 기후 안심 국가 구현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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