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안은 차선책 중 최선책이다 [쓴소리 곧은소리]
청년층 의식한 포퓰리즘 비판은 과도…중장년층이 좀 더 양보함으로써 세대 간 형평성 높일 수 있어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기초연금과의 이중 구조 개선하고 특수직 연금제도와의 형평성 해결해야
(시사저널=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정부의 연금개혁추진계획(이하 개혁안)이 발표됐다. 개혁안의 큰 방향은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성을 강화하고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는 동시에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 및 개인연금의 다층 연금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짜여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첫째, 현재 연령에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9%인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3%로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국민연금 재정을 위해 더 걷자는 말이다. 둘째, 세대별로 보험료율 인상을 차등화해 청년층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개혁안의 스케줄에 따르면 20대는 매년 0.25%포인트(p)씩 보험료율이 오르고 30대는 0.33%p, 40대는 0.5%p, 그리고 50대는 1.0%p 오르게 잡혀 있다. 이렇게 되면 20대 평생 보험료율은 12.9%, 50대는 9.6% 정도가 된다.
셋째, 2028년이면 40%로 낮아지는 명목 소득대체율을 42%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명목 소득대체율이란 은퇴 전 평균소득에 비해 연금으로 지급되는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로, 국민연금의 소득보장 수준을 보여준다. 국민연금 도입 당시에는 70%였으나 1999년 60%, 2008년 50%로 낮아진 이후, 매년 0.5%p씩 인하돼 2028년까지 40%로 조정될 계획이었다. 넷째,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인구, 기대여명 또는 가입자 수 증감을 연동하고 기금 운영 상황에 따라 연금 인상액을 자동적으로 조정하는 장치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野 '푼돈 연금' 폄하는 국민에 대한 예의 아냐
이런 정부의 국민연금 제도 개혁안에 대해 반대하는 견해가 많다. 특히 야당에서는 소득대체율 42%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난 21대 국회에서조차 우여곡절 끝에 44%로 합의했었는데 그보다 더 낮은 42%를 '푼돈 연금'이라고 폄하하며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난 36년을 국회의 준엄한 의결을 거쳐 지속돼온 현재의 소득대체율을 '푼돈'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소중한 국민연금을 받아 귀중하게 생활해온 수천만 국민에게 예의가 아닐뿐더러 책임 있는 정치인의 언행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지난번 연금개혁공론화특위의 대체안 40%보다는 개선된 안이라서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정부가 적게 주고 싶어서 적게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 재정이 어려워서 그렇다는 걸 아는 양식 있고 합리적인 지식인이라면 42%를 반대할 이유가 별로 없다.
또 다른 비판은 세대 간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20대는 유리하고 50대는 불리한 구조라 세대 간에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대로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20대는 보험료율 인상 속도가 매년 0.25%p로 40대의 0.5%p보다 좀 낮을 뿐 그들이 50대가 되면 보험료 13%를 같이 내게 돼 있다. 그리고 평생 가입기간 동안 20대의 연평균 보험료율은 약 12.9%지만 50대는 약 9.6%니까 사실상 평생 내는 보험료율로 보면 젊은 세대가 더 많이 내는 구조다. 게다가 1999년과 2008년 개혁으로 명목 소득대체율이 크게 인하되면서 청년세대들의 혜택은 적어지고 부담만 커지는 구조였다.
이를 두고 청년층에 유리하다거나 젊은 층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무지의 오판이다. 이런 표현이야말로 갈라치기 하려는 의도를 가진 발언이다. 연령대별로 보험료율을 차등하는 것은 원칙에도 없고 현실성도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지만 자동차 보험료도 연령별로 차별 적용하지 않는가. 청년층의 기대연령도 고령층보다 더 높지 않은가. 설혹 특정 연령층이 반대한다 해도 국민의 대의기관 구성원이라면 이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20대는 0.25%p, 30대는 0.33%p, 40대는 0.5%p에서 50대에 가서 갑자기 1.0%p로 뛰게 되어 있는 것은 조정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이번 개혁안의 백미는 자동조정장치
이번 개혁안의 백미는 자동조정장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4개국이 운영하고 있는 이 제도는 인구구조 변화나 경제 상황 등의 변화에 연동해 연금액 등을 조정하는 장치다. 현재는 소비자물가 변동률만 반영해 매년 연금액을 조정해 실질가치를 보전하고 있고, 인구 변화나 경제 상황에 따라 연금액을 조정하는 장치는 운영하고 있지 않다. 정부 개혁안은 3가지 도입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는데 도입 시점에 따라 기금 소진 연장 효과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행 제도대로라면 2056년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이번 개혁안이 실행되면 수익률이 4.5%에서 5.5%로 높아지면서 소진 연도도 2072년경으로 늦춰지게 된다. 여기에 자동조정장치를 수지적자 시점인 2054년부터 도입하면 기금 고갈 시점은 2077년으로 더 늦춰지게 되고 2036년으로 도입 시점을 앞당기게 되면 2088년에 가서야 기금이 고갈되게 된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전망은 너무 변수가 많아 신뢰하기 어렵다. 국민연금 지급액을 어떻게 조정하는지가 불분명하다. 다시 말해 연금지급액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줄어드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몇 연도에 기금이 고갈될지를 전망한다는 게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더구나 국민연금을 더 준다는 게 아니라 깎거나 보험료를 더 내게 된다는 것이므로 국민의 반대가 극심할 것이 예상되는 상태에서 단지 고갈 시점을 상당히 뒤로 늦춘다고 해서 춤추고 환영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부 발표대로 깊은 논의가 필요하고 국민의 합의를 도출해야만 할 사항이다.
남은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이중 구조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일이다. 이번 개혁안에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기초연금을 받을 경우 생계급여를 감액해 지급하는 현행 제도를 단계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는데 생계급여 수급자에게 서둘러 기초연금액의 일정 비율을 추가 지급하고, 이를 기초생보 소득인정액에서 공제해 빈곤 노인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특수직연금제도와의 형평성 문제다. 이번 개혁안에서는 빠져 있지만 공무원연금이나 사립교원연금 혹은 군인연금 같은 공적특수직역연금에 비해 턱없이 불공평한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외면하면 안 된다. 특수직역연금 제도와 국민연금 제도를 합리적으로 연결하는 제도 개선이야말로 국민이 가장 환영하는 연금 개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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