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익스테리어 - 파고라와 가제보

전원의 삶을 추구하며 전원주택을 선택한 사람들은 각자가 꿈꾸던 크고 작은 정원을 전원 속에 갖추게 된다. 내가 갖게 된 꿈의 정원을 좀 더 수준 높게 익스테리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꿈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유명 서양화가이자 조경가인 정정수 JJPLAN 대표의 글을 연재한다. 미술과 건축(조경)을 접목해 새로운 지평을 연 그의 깊은 식견과 경험은 독자 여러분의 정원을 더욱 풍성하고 품격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진행 이형우 기자│글 자료 정정수(ANC 예술컨텐츠연구원 원장)
파고라(pergola)
파고라는 유럽에서 덩굴식물을 키우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이었으나 점차 쉼터라는 기능이 추가되면서 디자인이 달라진 익스테리어 시설물이다. 우리는 본래의 기능을 구현해보는 과정 없이 파고라를 들여와 식물을 배제한 채 사용하고 있다. 사람이 사용하는 쉼터라는 결과만을 사용하다 보니 덩굴식물을 심을 흙이 없는 콘크리트 위에 파고라만 세워서 사용하는 것을 주로 보게 된다.
파고라만 해도 시중에서 구하려고 검색하면 상품 목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경공간 안에 익스테리어가 얹어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고 분리된다고 지적받는 이유는 기둥 밑에 덩굴식물을 키울 흙이 없고 콘크리트 위에 기둥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품은 처음부터 덩굴식물을 키우려는 생각은 없고 대량 생산만 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시장과 타협해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상품에 비해 작품성 있는 익스테리어가 되려면 현장의 분위기에 맞게 제작돼야 정원의 가치도 상승된다.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파고라의 형태를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사각형 큐브에 가깝게 디자인이 된 것보다는 직사각형이 더 아름답다. 대부분의 일반 목수들은 사진 자료만으로도 파고라 정도는 제작이 가능하다. 지인들에게 경험이 있는 목수를 소개받는다면 내 정원에 어울리는 나만의 파고라를 설치할 수 있다.
목재로 제작된 익스테리어 시설물의 대부분은 목재가 갖는 나무색을 칠하게 되는데 식물들의 초록색 잎새와 화려한 꽃색을 받쳐주는 배경으로 흰색만큼 조화로운 게 없다. 흰색은 깨끗하게 관리된 ‘오래된 흰색’의 느낌이어야 좋으며, 이러한 선택은 집 안팎의 칠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새것이 새것 같지 않고 헌것이 헌것 같지 않은 어느 광고의 느낌을 추천한다.
조금 더 설명하면 칠을 할 때 흰색을 추천하는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순수한 흰색(white)보다는 노란색이 아주 조금 섞여서 흰색인 듯 아닌 듯한 색을 추천한다. 순수한 흰색은 창백해 보이며 때가 쉽게 묻기 때문이다.
흰색 외장용 수성페인트 색을 그대로 사용해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도료를 구입할 때 판매처에 문의하기를 권한다. 언제나 지금까지 해왔던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더 좋은 물건이 어제 나왔을 수도 있으므로 경험자의 의견을 물어 폭넓게 생각하는 게 좋다.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된다.
덩굴식물은 기댈 것이 없으면 파고라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없으므로 파고라 벽에 트렐리스(사각이 아닌 마름모꼴로 구성된 트렐리스도 있음)를 추가해 덩굴식물이 올라갈 수 있는 시작점을 만들어줘야 한다. 사진은 식물이 올라가기 전이다. (필자는 2018년 가을에 발병한 뇌경색으로 치료와 재활을 위해 7개월 동안 입원한 적이 있다. 현재는 95% 이상 회복돼 정상에 가까운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작업해 L병원 입원실 창에서 찍었다.)
파고라를 정원용과 공원용으로 구분해보자. 공원용은 돌로 쌓은 두터운 기둥에 철재로 구조체를 만든 것(덕수궁 파고라 참조)이 있는데 이렇게 튼튼하게 시공된 것은 트렐리스의 기능 따위가 필요 없다. 기둥만으로도 등나무와 능소화 같은 만목蔓木(덩굴성 나무)을 키워 그늘을 만들 수 있어 공원용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에 사진으로 제시한 파고라는 공원보다는 정원에 필요한 규모로 제작된 것이므로 나무 굵기가 한 아름이 될 정도로 자라는 만목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묘목이라고 만만하게 보고 심게 되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된다. 둘리에게는 미안하지만 아기공룡 둘리를 닭장에 키울 수는 있겠으나, 수년 후에는 닭장에 공룡 키우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햇빛을 좋아하는 식물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자외선만을 골라서 싫어한다. 그늘을 선택하기 위해서 파고라가 쉼터로 사용된다 해도 비 오는 날에 파고라를 사용하려는 시도는 말리고 싶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대안을 마련하게 되는데 대개는 투명한 소재를 지붕으로 얹는다. 하지만 결국에는 위로 올라오는 덩굴식물과 단절하는 결과를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된다. (2019년 작업한 지리산 운봉)
외국어 단어가 타국으로 들어가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왜곡되고 불편한 건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가든garden은 도시 근교의 고기 구워 먹는 식당 이름으로, 파크park는 비교적 건전하지 못한 숙소의 이름으로 왜곡돼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유럽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16세기 유럽에서는 중국으로부터 도자기가 수입되고 조경 디자인이 바뀌기 시작했다. 동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영어로 도자기를 ‘차이나’라고 부르게 된 것만 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입된 단어들은 고생이 많다. 16세기 영국 귀족들에게 ‘파고라’에 앉아 중국에서 온 도자기로 차를 마시는 문화는 라이프스타일의 주류가 되기도 했다.
파고라의 용도를 바꿔 쉼터로 사용하는 것은 앞에서 가든과 파크가 왜곡돼 사용되듯이 검증을 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모든 것은 용도에 따라 함께 변하게 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근본이 무시되며 변하는 게 발전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덩굴을 빨리 올리려는 생각으로 식재된 덩굴을 수직으로 세우는 것은 말리고 싶다. 덩굴은 트렐리스의 밑에서부터 옆으로 잡아줘야 마디마다 순이 나와 위로 자라게 되므로 사진에서 보는 붉은인동의 모습처럼 꽃으로 전체를 덮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풍성한 모습을 만들게 된다. 빨리 높게 오르게 하려고 세워서 시작하면 2년 후 아랫부분이 허접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에 이르게 된다. (2019년 작업한 지리산 운봉)
지난 호의 계단에 이어 이번에 게재되는 파고라도 디자인이 같은 것이 거의 없고, 또 형태가 비슷하더라도 규격은 대부분 다르다. 작업 현장은 지형도 다르고 건축 형태도 달라서 똑같은 현장은 결코 없으므로 현장을 고려한 익스테리어를 고른다면 상품보다는 작품성을 추구하기를 적극적으로 권한다.
현장에 조화로울 수 있는 익스테리어를 디자인해서 시공한 예로 다음의 그림과 사진을 제시한다. 위치를 설명하면 대학 도서관에서 밖으로 나와 계단을 내려오면 둥근 원형으로 형성된 동산이 있다. 그 양쪽으로 10m 반원의 파고라를 기획해 그대로 제작이 가능한 목수를 수소문했으나 대개는 못 하겠다면서 철제 제작을 추천했다.
자신과 관련된 전문적인 일을 할 때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라도 종합적 사고를 갖춘 장인은 문제 해결 능력을 갖는다. 예를 들어 칼국수 전문가에게 수제비를 주문했을 때 못 한다고 한다면 그는 전문가가 아니다. 열심히 찾아다니다 결국에는 능력 있는 목수를 만나 해결할 수 있었다.
능력 있는 기능인을 만나는 행운은 원하는 익스테리어를 완성시킬 수 있게 한다. 스케치를 가지고 목수를 다섯 명이나 찾아다닌 끝에 지인의 소개로 홍성에서 만난 목수로부터 가능하다는 답을 얻었다. 능력 있는 사람은 경험치가 쌓이게 되면 불가능하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 (2011년 작업한 순천 ○○대학교)
열매와 씨앗의 차이
파고라에 덩굴식물을 식재할 때 이들의 성격을 구분할 줄 알면 도움이 된다. 열매와 씨앗의 차이는 덩굴과 덩굴손의 차이다. 수세미, 클레마티스, 나팔꽃, 붉은인동 같은 덩굴성 식물을 관찰해보면 나팔꽃 같이 씨가 맺히는 식물은 줄기의 끝이 허공을 탐색하다가 기댈 수 있는 물체를 만나면 감고 올라간다.
반면에 작은 계란 크기의 초록색 패션후르츠 열매를 맺는 시계꽃과 수세미, 호박 등 더 큰 열매를 맺는 덩굴식물들은 덩굴손을 사용한다. 덩굴손의 기능 중 하나는 열매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유연성을 갖고 출렁이듯 움직이는 것이다.
열매의 무게에 의해 끊어지지 않는 스프링을 만드는 방법으로 덩굴손의 한쪽은 줄기에 붙어 있고 다른 한쪽은 감아야 할 대상에 붙여 스프링을 만든다. 종족을 보호하려는 어머니와 같은 의지는 모든 생물에게서 발견된다.
덩굴손은 스프링처럼 생겼고 실제로 기능이 스프링처럼 완충작용을 한다. 스프링이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감아지게 되면 섬유질이 끊어지지만, 사진에서 보는 핸드 드릴(나무에 구멍을 뚫는 기구)과 같이 줄기의 어디인가를 중심으로 잡고 돌리면서 중심부 양쪽으로 스프링을 만들기 때문에 덩굴손은 끊어지지 않고 열매의 안전을 유지한다. 열매를 맺는 덩굴은 자신이 만든 열매의 무게를 견딜 만큼 스프링의 숫자를 조절한다. (정정수의 <식물일지> 중에서)
우리나라 정자의 용도가 가족적인 기능의 익스테리어라면 규모가 큰 루는 공적인 기능을 하는 장소로서 촉석루, 죽서루, 부벽루 등 강가나 호숫가에 자연을 차경으로 관조할 수 있는 장소에 규모를 크게 만들어 사용했다.
현대인들이 유럽에서 도입한 파고라도 선조들이 만든 루의 개념을 가지고 그 규모를 크게 만든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사와 쉼의 공간을 여유롭게 만들 수 있다.
파고라 규모를 늘리고자 할 때 크기만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파고라는 기둥보다는 위쪽이 더 비중 있는 역할을 하므로 규모가 커졌을 때 서까래만으로는 변화가 없는 단순한 디자인이 된다. 중심부 무대의 미와 기능을 위해 궁륭의 형태를 참고했다. 기둥 위에서 천정으로 이어지는 곡선을 유지하는 디자인으로 유럽의 석재 건물들과 성당 건물의 천정을 아름다워 보이게 만드는 구조이기도 하다.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가운데 무대가 되는 위치에 아치를 대각선마다 겹쳐서 궁륭의 형태로 단상을 만들었다. 궁륭이란 활이나 무지개 같이 한가운데가 높고 길게 굽은 형상 또는 그렇게 만든 천장이나 지붕을 지칭하며 ‘돔’과는 구분이 된다. (2014년 작업한 홍성 ○○마을)
긴장과 이완의 조화를 위해 직선과 곡선으로 디자인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디자인된 곡선은 나무를 사용한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사진에서 보는 파고라의 재질은 의뢰인이 스테인리스 스틸 가공공장의 대표이기에 나무보다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해 분채 도장으로 마무리했다. (2014년 작업한 홍성 ○○마을)
단상을 겸하는 무대 위의 이완된 곡선은 궁륭의 디자인을 참고한 것으로 모두에게 만족감을 준다. 식물을 사랑하는 모든 이가 빨리 위로 올리고 싶은 마음에 식물을 위를 향하도록 수직의 한 방향으로 키우게 되는데 이런 방법보다는 옆으로 펼쳐 키워야 빨리 전체를 덮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장미 넝쿨을 위로 세우지 않고 옆으로 잡아주면 마디마다 새순이 나와서 트렐리스의 전체를 덮게 된다. 내 식물이나 내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기다려주는 것이다. (2014년 작업한 홍성 ○○마을)
가제보(gazebo)
서까래만 있는 파고라는 비나 눈을 가리는 지붕이 없다는 점에서 가제보와 구분된다. 모두에게 친숙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을 통해 우리는 가제보를 본적이 있다.
폰 트랩가의 큰딸 리즈와 그녀의 남친 랄프가 함께 “You are Sixteen Going on Seventeen”을 부르면서 비를 피해 들어간 곳이 유리로 창을 덧댄 가제보다.
영화의 분위기로 보아 어둠이 깔린 정원에 흐릿한 정원등 불빛을 뒤로한 채 비를 피해 가제보 안으로 들어가야 할 당위성이 주어진다. 비는 외부로부터 우리가 있는 공간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비 오는 날이 좋다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날 리즈와 랄프에게 가제보는 최적의 공간이다.
창을 만들지 않았다 해도 가제보가 설치된 정원은 격을 달리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원의 어딘가에 얹어지면 된다고 간단히 생각할 수만은 없다. 무엇이든지 관계에 끼어든 관계 하나가 더해지면 나를 벗어난 모든 관계에서 객관성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 생각의 차이는 주로 자연을 사랑하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연을 최대한 존중해 담장 안과 밖을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차경을 추구해 왔다. 가제보도 그런 장소에 자리잡게 해야 훌륭한 익스테리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주변 환경이 한국식 건축이나 정원이라면 그와 조화롭게 정자를 선택해야겠지만 현대식 정원에는 정자보다는 가제보를 익스테리어하는 것이 좋다. (2021년 전주 강인목재와 함께 작업한 전주 ○○대학)
사람들 모두가 자연과 동화하며 영적 연결고리를 이어나갈 수는 없겠지만, 지금 나만이라도 자연의 일원임을 자각할 때 내 자신을 또 다른 차원으로 자연스럽게 이끌게 될 것이다. 정원을 시작으로 자연을 사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