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원에 낙찰된 다이애나비의 '검은 양' 스웨터에 담긴 의미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검은 양 스웨터’가 소더비 경매에서 114만 여 달러(약 15억원)에 낙찰됐다. 린제이 베이커에 따르면, 이 스웨터는 장난끼 많은 ‘슬론(런던 중상류층의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에서 강력한 커뮤니케이터로, 그리고 결국에는 아웃사이더가 된 다이애나 비의 여정을 상징한다.
영국 왕실 역사의 상징적인 물품이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됐다. 이 소장품은 다이아몬드 티아라도,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이브닝 드레스도 아니었다. 바로 ‘웜 앤드 원더풀(Warm and Wonderful)’이라는 작은 브랜드에서 만든, 양 무늬가 재미있는 형태로 배열된 빨간색 스웨터다. 1981년 6월, 당시 19세였던 다이애나 스펜서는 이 옷을 입고 약혼자였던 당시 찰스 왕세자의 폴로 경기를 관람했다. 두 사람의 약혼 발표 4개월 후에 대중 앞에 등장한 이 패션을 두고 많은 평론가들이 “여러 마리 흰 양 사이에 검은 양 한 마리가 그려진 니트 패턴은 다이애나가 왕실 안에서 자신의 입지에 대한 판단, 즉 겉도는 존재라는 것을 다소 당돌한 자세로 표현한 것”이라 설명하는 등 많은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 옷을 선택한 게 정말 10대 다이애나가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과 감정을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을까? 정말로 자신을 “검은색 양”이자 아웃사이더라고 세상에 미묘하게 알린 신호였을까? 왕립 자수 학교 이사이자 작가 겸 큐레이터, 패션 역사가인 엘레리 린에 따르면, 그 대답은 ‘아니오’다. 린은 BBC 컬처와의 인터뷰에서 “어쩌면 우리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중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당시 그녀가 자신을 '한 마리의 검은 양'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입은 패션의 영향력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녀는 열심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던 어린 여성이었어요. 패션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죠. 또래 친구들처럼 옷을 입었고, 옷을 입는 데 있어서 장난끼가 넘쳤습니다. 아직 패션을 통해 소통하는 단계는 아니었죠."
글래스고 대학의 패션 사학자 샐리 터켓도 이에 동의했다. “80년대는 생동감 넘치는 (종종 상충하는) 색상과 대담한 표현이 대세였는데, 이는 당시 니트웨어 디자인에서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검은 양’ 스웨터가 이를 아주 완벽하게 보여주죠. 대비되는 색상 사용과 반복되는 양 패턴을 보면 이 시기 영국에서 어떤 니트웨어와 디자인이 떠오르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린에 따르면, 목 둘레선에서 피터팬 칼라(끝 부분이 둥근 칼라)가 살짝 드러나는 이 양 스웨터에선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을 엿볼 수 있다. 스웨터가 계급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스웨터는 80년대 초 슬론(‘슬론 레인저’는 영국 상류층 또는 중상류층을 일컫는 말로, 런던의 상류층이나 중상류층이 즐겨 찾는 첼시 슬론 스퀘어의 이름을 따 생겨난 말이다) 패션의 전형이었다 “그녀는 슬론 레인저였고, 스웨터는 그녀가 가진 옷들 중에서 장난기를 살려 입는 옷이었어요.” 1981년, 19세의 나이로 왕위 계승자와 결혼을 앞둔 슬론이었던 다이애나는 영국에서 가장 특권적인 모임의 중심부에 있었지, 결코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다. 80년대 초는 슬론의 전성기였다. 1982년에 ‘슬론 레인저 핸드북’이 출간됐고, 이 책에선 다이애나를 “슈퍼슬론”이라고 표현했다.
작가이자 디자이너인 루엘라 바틀리는 저서 '루엘라의 영국 스타일 가이드' 내 ‘브리타니아의 부족들’이라는 장에서 다이애나가 "전형적으로 보여준” 80년대 슬론 레이저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바틀리는 “나의 슬론은 80년대의 슬론”이라고 썼다. “슬론의 패션적 특징 및 그녀가 지켰던 규칙의 엄격함은 보존돼야 합니다. 슬론은 빨강과 흰색, 파랑을 입고 깃발을 휘날립니다. 충성심을 표명하고 자신이 아는 것을 고수하죠. 파란색은 연대와 항해를 상징하며, 모든 것에 어울립니다. 빨간색은 쾌활함을 상징합니다. 흰색은 학교 셔츠와 베르비에(스위스 지명)의 눈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바틀리가 책에서 말하는 슬론의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 “그들은 재미를 만들어내는 데 능숙합니다. 실용적인 농담, 화려한 정장무도회, 우스꽝스러운 별명 등… 그들이 싫어하는 것은 똑똑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분명 지적인 것을 싫어하며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못 견뎌 합니다.” 빨간색과 흰색이 섞인 "쾌활하고" 만화 같은 양 스웨터에 흰색 피터팬 블라우스와 네이비 청바지를 입은 80년대 초의 다이애나의 모습은 가장 전형적인 슬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장난기
엘레리 린에 따르면 1981년의 다이애나는 아웃사이더도 반항아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몇 년간 의상 선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 스웨터는 린이 말하는 “장난기”의 초기 징후였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에 관해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그녀가 전복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말해왔죠. 예를 들어 한 쪽은 빨간색이고 다른 한 쪽은 검은색인 이브닝 장갑을 끼거나 턱시도 정장 바지에 무늬가 있는 타이츠를 입는 등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조금 비틀어 입거나 독특한 옷을 입는 것을 즐겼죠. 또는 왕실 의례에 따르면 애도와 장례식에만 입는다는 검은색 옷을 입기도 했죠. 그녀는 그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옷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졌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지 않았죠. 항상 그녀가 선택했습니다."
린은 또 다른 상징적인 니트웨어로 결혼식 직전 밸모럴성에서 입었던 밝은 분홍색 라마 그림 스웨터를 꼽았다. “그녀는 '컨트리 하우스 스타일'을 좋아했지만 약간씩 이를 비틀었어요. 클래식한 승마구두에 분홍색 스웨터를 입거나 바지를 장화 안에 넣어 입었죠. 환상적인 트위드 소재의 봄버 재킷을 입어 컨트리 스타일 클래식에 현대적이고 젊은 감각을 더했습니다.”
다이애나가 패션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점점 더 능숙해져 가는 과정은 잘 기록되어 있다. ‘다이애나: 그녀의 패션 스토리’ 전시회는 다이애나가 순진한 젊은 여성에서 강력한 커뮤니케이터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주었다. 전시를 기획한 린은 디자이너들의 도움으로 “그녀에겐 패션이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런 활동을 정말 즐거워했죠. 결혼(1981년) 이후 자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깨닫게 됐고, 장난기와 전복성을 유지하면서 고의로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린은 이러한 유쾌함과 현대성이 다이애나의 정체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주장한다. “다이애나는 에이즈 환자를 만나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관습을 깨는 등 왕실의 관례를 다른 식으로 깨뜨리는 선택을 하면서 보다 더 넓은 것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패션에는 그러한 특징이 반영되어 있었죠.”
“양 스웨터는 유쾌함과 장난기, 전복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이애나의 이미지가 가져올 힘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이루어진 것이죠.” 결국 다이애나가 '왕실'의 눈 밖에 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 왕실 수집품에 더 큰 상징성을 부여했다. 또한 그 상징성은 극적인 아이러니와 비극의 본질, 희극의 정신, 비련, 부인할 수 없는 카리스마 등 옷을 입었던 이의 생애 속 다양한 요소 때문에 그렇게 강력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