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국내 중고차 시장이 역주행을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연말은 중고차 비수기다. 연식 변경과 신차 할인으로 매물은 넘치고 수요는 줄어든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엔카닷컴이 공개한 12월 중고차 시세 분석 결과, 2022년식 무사고 차량 기준 국산차 평균 시세가 전월 대비 0.79% 상승하며 비수기 공식을 완전히 깨뜨렸다. 수입차까지 포함한 전체 중고차 평균 시세도 0.55% 오르며 강보합세를 기록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답은 ‘단종’이라는 두 글자에 있었다. 신차 시장에서 사라진 차들이 중고차 시장에선 오히려 몸값이 치솟는 역설이 펼쳐지고 있다.

디젤 단종 파장, 중고차로 수요 몰려
디젤 SUV가 중고차 시장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현대 더 뉴 팰리세이드 2.2 2WD 캘리그래피는 전월 대비 3.23% 상승하며 12월 국산차 중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기아 카니발 4세대 9인승 프레스티지도 2.92% 올랐고, 기아 스포티지 5세대 2.0 2WD 노블레스는 1.73% 상승했다. 현대 더 뉴 싼타페 2.2 2WD 프레스티지도 0.31% 시세가 올랐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명확하다. 신차 시장에서 디젤 모델이 사실상 종말을 맞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투싼과 스타리아를 비롯한 모든 일반 승용 디젤 모델을 단종시켰다. 기아도 2024년 10월 스포티지 부분변경 모델에서 디젤 엔진을 삭제했고, 2025년 8월 카니발 연식변경 모델에서도 디젤 파워트레인을 완전히 제거했다.

현재 국내에서 구매 가능한 국산 디젤 신차는 기아 쏘렌토, KG모빌리티 렉스턴 뉴 아레나, 무쏘 스포츠 단 3종뿐이다. 카니발과 팰리세이드처럼 가족 단위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대형 SUV와 MPV의 디젤 모델은 이제 신차로 살 수 없게 됐다. 디젤 특유의 높은 연비와 내구성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중고차 시장으로 몰리면서 시세가 급등한 것이다.
케이카 관계자는 “최근 카니발 등 주요 SUV와 RV 디젤 모델 단종으로 수요가 중고차 시장으로 이동했다”며 “여전히 높은 연비와 주행 내구성 등 경유차 특유 실용성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러시아 수출 시장에서도 디젤 모델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는 올해 말부터 수입차 폐차세 인상을 예고했고, 현지 딜러들이 한국산 경유차를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국내외 수요가 겹쳐 가격을 더욱 끌어올렸다.

단종 경차의 반란, 스파크 3년째 인기 지속
2022년 단종된 쉐보레 스파크가 3년이 지난 지금도 중고차 시장에서 뜨겁다. 2025년 6월 국내 중고차 시장에서 스파크는 판매량 2위(3,189대)를 기록하며 기아 모닝(3,497대)에 이어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올해 3분기까지 중고차 3만 719대가 거래되며 단종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차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가성비가 스파크 인기의 핵심이다. 케이카가 분석한 3월 중고차 시장 평균 시세에 따르면 더 뉴 스파크는 787만원, 더 넥스트 스파크는 638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520만원대부터 830만원대까지 다양한 가격대에서 매물이 형성돼 있어 사회 초년생부터 중장년층까지 전 연령대에서 고른 수요를 보이고 있다.
경기 침체로 가성비 중고차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도 스파크 인기의 배경이다. 신차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1,000만원 이하로 구매 가능한 경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신차 경차 시장이 현대 캐스퍼, 기아 모닝·레이 단 4종으로 축소된 것도 중고 스파크 수요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신차 납기 지연이 부른 경차 중고 시세 상승
단종되지 않은 신차 경차들도 중고차 시장에서 시세가 오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 캐스퍼 인스퍼레이션은 1.19%, 기아 더 뉴 레이 시그니처는 0.80%, KG모빌리티 베리 뉴 티볼리 1.5 2WD V3는 0.78% 시세가 상승했다.
이유는 신차 출고 대기 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현대 캐스퍼는 자연흡기 모델 기준 17개월, 터보나 매트칼라를 선택하면 최대 22개월의 출고 대기 기간이 필요하다. 기아 더 뉴 레이도 가솔린 모델이 7개월, 그래비티 모델은 10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거의 2년에 가까운 신차 납기를 감당할 수 없는 소비자들이 중고차로 눈을 돌리면서 경차 중고 시세가 오히려 상승하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했다.
9월 3.0%, 10월 4.4%에 이어 11월에도 5.0%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는 차량도 있다. 바로 캐스퍼 일렉트릭이다. 도심형 활용성과 합리적인 가격, 출고 지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
수입차는 희비 엇갈려
국산차가 디젤 단종과 경차 납기 지연이라는 구조적 요인으로 강세를 보인 반면, 수입차는 모델별 선호도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전체 수입차 평균 시세는 0.21% 상승에 그쳤다.
아우디 A4(B9) 40 TFSI 프리미엄이 4.30% 상승하며 수입차 중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고, 미니 쿠퍼 클래식 3세대도 4.17% 큰 폭으로 시세가 올랐다. 반면 일부 인기 수입차 세단은 1% 이상 하락했다. BMW 3시리즈(G20) 320i M 스포츠는 1.51% 떨어졌고, 벤츠 C클래스 W205 C200 AMG라인은 3.12% 하락하며 12월 수입차 중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볼보 XC60 2세대 B6 인스크립션과 XC90 2세대 B6 인스크립션도 각각 0.65%, 0.94% 시세가 내려갔다. 벤츠 E클래스 W213 E250 아방가르드도 0.21% 소폭 하락했다.
비수기 공식 깨진 2025년 중고차 시장
2025년 12월 중고차 시장은 완전히 다른 흐름을 보였다. 통상적으로 연말은 중고차 매물이 늘고 시세가 하락하는 비수기지만, 올해는 경제적 이유로 실용적인 중고차를 찾는 수요가 늘면서 오히려 시세가 상승했다. 특히 디젤 신차 단종과 경차 납기 지연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맞물리며 국산차 중고 시세가 평균 0.79% 올랐다.
엔카닷컴 관계자는 “12월은 일반적으로 해가 바뀌기 전 연식 변경이나 연말 할인 프로모션 등으로 중고차 매물이 증가하며 시세가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나, 올해는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중고차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며 “중고차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면 쉐보레 더 뉴 스파크나 벤츠 C클래스, BMW 3시리즈 등 이달 하락세를 보인 모델의 시세 변동을 살펴보시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단종됐다고 끝이 아니다. 오히려 단종이 중고차 시장에선 프리미엄이 되는 시대다. 디젤 팰리세이드와 카니발, 경차 스파크처럼 신차로 살 수 없게 된 차들이 중고차 시장에선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2025년 12월, 중고차 시장은 단종 모델들이 주인공이 되는 역주행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