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3사 크리스마스 마켓, 한번 비교해 봤습니다
경험의 밀도에 집중한 현대, 확산에 성공한 신세계, 그리고 애매해진 롯데
매년 자존심을 건 승부가 펼쳐집니다
크리스마스는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쇼핑 시즌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국내 백화점 업계에서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쇼핑을 넘어, 자존심을 건 경쟁의 장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그 시작은 명동에 위치한 신세계 본점이 미디어파사드를 활용한 화려한 연말 장식으로 주목받으면서부터였습니다. 이후 백화점 3사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VMD*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죠.
※ VMD(Visual Merchandising): 매장 등 상품을 판매하는 환경을 시각적으로 연출하고 관리하는 일련의 활동으로, 주로 브랜드 컨셉에 맞춰 제품을 전시하거나 매장을 눈에 띄게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던 중, 작년을 기점으로 크리스마스 시즌 경쟁의 중심은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이동했습니다. 단순히 외부 장식으로 시선을 끄는 것을 넘어, 방문객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한 겁니다. 특히 이런 경험 중심의 이벤트는 입장 인원을 제한하며 '오픈런' 현상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요. 한정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방문객의 기대감이 높아졌고, 백화점들은 이를 활용해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화제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백화점 3사의 크리스마스 전쟁은 현재진행형이고요.
경험을 파는 현대와 물건을 파는 롯데
올해 크리스마스 마켓 전쟁에서도 현대백화점이 단연 돋보입니다. 특히 더현대 서울은 압도적인 장식과 완성도로 크리스마스 마켓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올해 1차 사전 예약이 단 14분 만에 마감된 데서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 직접 방문한 더현대 서울의 크리스마스 팝업, <움직이는 대극장>은 마치 동화 속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자아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거대한 서커스 천막은 시각적으로도 압도적이었고, 움직이는 조형물과 음악은 과거 놀이기구 ‘지구 마을’을 떠오르게 하는 섬세한 디테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마치 놀이공원을 연상시켰습니다.
특히 사소한 요소까지 철저히 설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방문객들에게 입장 티켓을 나누어 주며 이를 기념품으로 간직하거나 인증 사진을 찍도록 유도한 점, 서커스 천막을 최대 2분간 포토존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면서도 대기 중인 고객을 배려해 다양한 장식 요소를 배치한 점은 현대백화점의 세심함을 보여줬습니다. 이처럼 현대백화점은 단순히 쇼핑을 넘어 고객 경험을 극대화하며 연말 명소로 자리 잡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롯데백화점은 상품 경험에 초점을 맞춘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대표 매장인 잠실점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롯데는 입장권을 유료로 판매하되, 이를 내부에서 쿠폰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무려 전년 대비 16개가 늘어난 41개의 상점을 입점시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한 다양한 소품과 먹거리를 판매하며, 방문객들이 현장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차별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소품 상점은 예쁘긴 했지만, 구매로 이어질 만큼 특별하지 않았고요. 가장 많은 대기를 유발한 상점이 닭꼬치와 닭강정 매장이었는데, 크리스마스 분위기와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회전목마는 눈길을 끌긴 했지만, 새롭다기보다는 다소 익숙한 구성이라는 점이 아쉬웠고, 더욱이 회전목마는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두 백화점의 승부를 가른 것은 디테일이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수작업으로 완성한 정교한 장식과 체계적인 기획으로 몰입감을 극대화한 반면, 롯데백화점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컨테이너 형태의 가건물로 꾸며져 몰입감이 다소 부족했습니다. 여기에 롯데의 MD 구성도 특별히 돋보이지 않아, 현대백화점이 무려 1년간 준비한 결과물에 비해 투자와 준비의 격차가 느껴졌는데요. 무엇보다, 경험을 중심에 둔 현대의 전략이 구매 중심의 롯데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험의 확장도 진화 중입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크리스마스 마켓 자체의 완성도뿐 아니라, 이를 다른 점포로 확장하는 방식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결국 고객의 경험이 주는 효과는, 개별 경험의 밀도와 이를 누린 고객의 수를 곱한 총량에 따라 결정됩니다. 아무리 더현대 서울이나 롯데백화점 잠실점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완성도가 높더라도, 다른 지점에서 이를 누릴 수 없다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 백화점들은 어떻게 하면 핵심 점포의 경험을 다른 점포들까지 확장시킬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특히 올해 현대백화점이 선보인 대극장 컨셉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였는데요.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서도 일부는 바로 재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무역센터점처럼 비교적 유휴 공간 규모가 작은 점포에서도 주요 요소들이 충실히 구현되어 고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데 성공했죠.
롯데백화점 역시 크리스마스 마켓의 확장을 시도했는데요. 통일된 테마를 기반으로 주요 점포들에서 유사한 행사를 진행하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전파했습니다. 특히 먹거리가 주요 콘텐츠였던 만큼,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도 보다 더 쉽게 구현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강점이었습니다. 사실 <움직이는 대극장>은 공간 규모에 따라 경험이 확 달라졌지만, 솔직히 팝업 마켓은 아주 큰 차이를 느끼진 못했을 정도고요. 어쩌면 경험의 밀도는 현대 대비 떨어졌지만, 오히려 확장성 자체는 롯데가 더 나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확장성은 신세계가 가장 빛났습니다
그런데, 올해 크리스마스 마켓 시즌에서 확장성 측면에서 가장 뛰어났던 건 역시나 신세계백화점이었습니다. 신세계는 크리스마스 VMD로 처음 주목받은 선두주자였지만, 마켓 경쟁 구도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현대와 롯데에 비해 화제성 면에서 다소 뒤처져 있었는데요. 특히 올해에는 매출 1위를 자랑하는 강남점에서 ‘조이마켓’이라는 이름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선보였지만, 현대나 롯데만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신세계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아닌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며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는데요. 시작은 인스타그램 계정에서부터였습니다. 트렌디한 캠페인으로 주목받는 돌고래유괴단과 협업해, 계정을 산타클로스에게 해킹당한 것처럼 꾸몄고, 이어 캠페인 모델인 카리나가 등장하며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세계 본점 미디어 파사드에서 풀 브랜드 필름을 공개하며, 크리스마스 시즌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로 신세계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죠.
이처럼 밀도 면에서는 현대가 압도적으로 앞서 나갔다면, 신세계는 확산 전략으로 차별화를 이루며 또 다른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반면 롯데는 다소 모호한 포지셔닝과 부족한 몰입감을 보여주며 화제성 면에서도 아쉬움을 남겼는데요. 하지만 크리스마스 마켓 전쟁은 매년 새로운 전략과 창의성을 요구하는 경쟁인 만큼, 내년에는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속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내년 백화점 3사의 크리스마스 경쟁이 기대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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