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신도시에 래미안·자이 아파트 보기 힘든 이유
택지환수·1개사1필지입찰 제재 먹힐까
주택브랜드 다양화? "대형사는 안해"
최근 입주하는 신도시를 가보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래미안', '자이' 등 대형건설사가 지은 브랜드 아파트인데요.
그 배경으로 '벌떼입찰'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일부 중견건설사들이 다수의 계열사를 내세워 낙찰 확률을 높이면서 '공공택지계 강자'가 됐다는 건데요.
이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도 칼을 빼들었습니다. 택지 환수, 1개사1필지 입찰 등을 통해 주택브랜드를 다양화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과연 중견건설사들의 벌떼입찰을 막으면 아파트 브랜드 경쟁력을 위해 입지 등에 따라 선별 공급하는 대형건설사들이 공공택지 입찰에 적극적으로 나설까요?
신도시에 중견건설사 아파트만 있는 이유
국토교통부는 지난 26일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벌떼입찰한 건설업체를 제재하고 사전 차단하는 방안을 담은 '벌떼입찰 근절대책'을 내놨습니다.▷관련기사:국토부 '벌떼입찰' 10개 건설사 경찰수사 의뢰(9월26일)
벌떼입찰은 입찰 경쟁률을 높이기 위해 모기업과 다수의 계열사들이 떼로 입찰에 참여하는 행태를 말하는데요. 이는 공공택지 추첨 방식 입찰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추첨은 수싸움인 만큼 입찰을 많이 할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데요. 일부 건설사들이 페이퍼컴퍼니를 계열사로 둔갑시켜 입찰에 참여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가령 A 공공택지를 추첨으로 입찰받고 싶다면 B건설사가 단독으로 참여하는 것보다는 수십개의 계열사를 동원하면 당첨 확률이 더 높아지겠죠. 계열사가 입찰을 받아도 B건설사의 수익이 될테고요.
이는 주로 중견건설사들이 이용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현재 여당 의원실과 국토교통부가 지목한 불법적인 '벌떼입찰' 정황이 의심되는 건설사 대부분은 중견건설사인데요.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토부와 LH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2021년 호반·대방·중흥·우미·제일건설 등 5개 건설사가 LH에서 분양한 공공택지 물량 178필지 중 67필지(37%)를 낙찰받은 것으로 나타났고요.
이들 건설사의 계열사는 중흥건설이 47개, 대방건설 43개, 우미건설 41개, 호반건설 36개, 제일건설 19개 등에 달합니다. 물론 이들 계열사를 전부 다 동원한 건 아니겠지만요.
대형건설사는 왜 벌떼입찰을 하지 않았냐고요? 대기업이라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죠.
상대적으로 수를 늘려 입찰할 수 있는 중견건설사들이 공공택지에선 '강자'인 이유인데요. 특히 한동안 주택 시장이 활황이었던 만큼 건설사들이 편법을 동원해서도 낙찰을 받으려 했던 것으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입주한 지 얼마 안 된 신도시를 가보면 중견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를 쉽게 볼 수 있는 반면, 대형건설사의 주택 브랜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벌떼 입찰 막으면…주택브랜드 많아질까?
이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가 칼을 빼들었습니다. 그동안에도 △공동주택용지 2년간 전매 금지(2015년) △계열사 간 택지 전매금지(2020년) △경쟁방식 확대 및 입찰 참가자격 강화(2021년) 등 벌떼 입찰을 막기 위한 조치가 있긴 했는데요.
이번엔 제재 수위를 한층 더 높였습니다. 페이퍼컴퍼니 의심 정황이 포착된 건설사는 경찰 수사를 의뢰해 불법 행위가 확인되면 계약 해제 및 택지 환수 조치하기로요. 아울러 수도권 규제지역 등에선 '1개사1필지' 입찰하도록 제한하기로 했습니다.
그야말로 고강도 제재로 보이는데요. 문제는 실현 가능성입니다.
해당 택지에 아파트 분양이 진행돼 제3자 권리관계가 형성됐을 경우 택지 환수가 불가능하고요. 여건상 택지 환수가 된다고 해도 건설사와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거든요.
1개사1필지 입찰 제한의 경우 경쟁력 없는 지역이라면 '노는 땅'이 돼버릴 수도 있고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조치에 따라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설사 브랜드가 다양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는데요. 그러나 중견건설사의 벌떼 입찰을 막는다고 해도 대형건설사가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대형건설사는 외주 사업이나 도시정비사업 위주로 영업해도 일거리가 충분하다"며 "최근 분양 시장도 안 좋은데 굳이 자체사업(공공택지 사업)으로 리스크를 안을 필요 없기 때문에 관련 제재가 생긴다고 해도 분위기가 반전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요.
김영덕 건설사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대형건설사는 아파트 브랜드를 가지고 위치 등을 선별해서 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에 공공택지가 입지 등에서 어느 정도 메리트가 있지 않으면 굳이 입찰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견건설사들의 불만도 터져 나옵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1개사1필지 제한은 자유경쟁 침해이자 중견건설사들의 진입 장벽만 높이는 것"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대형건설사는 경기가 안 좋을 땐 낙찰된 땅도 위약금 물고 포기하는 등 굳이 공공택지 사업을 안 해도 되는 입장"이라며 "더군다나 수도권 규제지역 등에서만 1개사1필지 제한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럼 지방은 중견건설사가 가져가라는 뜻이냐"며 지역 양극화 심화를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서 대형건설사의 주택 브랜드를 보긴 힘들 듯 한데요.
시장에선 입찰 전 스크니링 시스템을 확보하는 동시에 인센티브 확대와 제재 강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등 종합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김영덕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제재만으론 자칫 공공택지의 매력도만 떨어트리게 될 수 있다"며 "편법 입찰은 강력한 제재 조치라 필요하긴 하지만 사전에 입찰 업체에 대한 스크리닝을 강화하고 분양이 잘 안 되는 곳엔 인센티브를 주는 등 입찰 단계부터 분양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제도 개선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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