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 이 기록은 절대 안 깨진다? 내년부터는 조금 내려놓을까… 힌트는 있다
[스포티비뉴스=광주, 김태우 기자] 선발 투수로 한 시즌에 30경기 혹은 그 가까이 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완주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로테이션을 돌 만한 기량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몇 년 반짝할 수는 있지만, 이를 5년 이상 끌고 가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기준을 '170이닝'으로 높여 잡는다면 더 그렇다. 한 시즌을 정상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에서 보내면 1~3선발급 선수들은 보통 30경기 정도에 나간다. 그 30경기에서 평균 6이닝 가까이 소화를 해야 오를 수 있는 고지가 바로 170이닝이다. 건강·체력·기량·정신력이 모두 뒷받침되어야 한다. 양현종(36·KIA)이 세운 기록이 비록 공식 시상 부문은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 값져 보이는 이유다. 한 시즌 달성하는 것도 어려운 이 기록을 10년 연속 해냈다.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었으니 ‘특별하다’고 치켜세워도 과하지 않다.
양현종은 25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롯데와 경기에서 5이닝 동안 7개의 안타를 맞으며 5실점하고 패전 투수가 됐다. 이날 경기가 자신의 정규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던 양현종은 한국시리즈에 대비한 듯 전력투구를 하지는 않았다. 평소보다 구속이 조금 떨어졌다. 여기에 특유의 변화구 커맨드도 이날은 흔들리면서 집중타를 맞았다. 다만 팀이 이미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는 점에서 이날 등판은 어쩌면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170’이라는 특별한 숫자였다.
양현종은 이날 등판에서 10년 연속 170이닝 소화를 노렸다. 사실 목표는 명확했다. 연속 시즌 170이닝 이상 소화는 양현종의 자부심이다. 다른 기록은 욕심이 없거나 하다 보면 이뤄지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이 기록은 꼭 해내고 싶다고 항상 강조할 정도였다. 다른 기록은 언젠가 누군가는 깰 기록이기는 하지만, 10년 연속 170이닝 이상 소화는 앞으로 깨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다. 처음부터 170이닝을 생각하고 던진 건 아니겠으나 오랜 세월이 쌓이면서 욕심을 낼 만한 기록이 됐다.
데뷔 이후 부침이 있었던 양현종은 2014년 171⅓이닝을 소화하며 개인 첫 170이닝 이상 투구를 했다. 이 시점은 양현종이 선발 투수로서 눈을 떠가는 시기로 기억된다. 이후로는 170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다. 2015년 184⅓이닝, 2016년 200⅓이닝(개인 첫 200이닝 달성), 2017년 193⅓이닝, 2018년 184⅓이닝, 2019년 184⅔이닝, 2020년 172⅓이닝을 던졌다. 여기까지 7년 연속 170이닝 이상 투구였다.
2021년 메이저리그 도전으로 잠시 KBO리그를 비운 양현종은 2022년 돌아와 다시 175⅓이닝을 소화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KBO리그 역사상 최초로 8년 연속 170이닝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이후로는 자신과 싸움이었지만 양현종은 오히려 이 목표에 더 의욕을 보였다. 지난해 평소보다 다소 더딘 이닝 소화로 이 연속 기록이 깨지는 듯했으나 시즌 마지막까지 힘을 내면서 171이닝을 던져 기어이 또 170이닝을 채웠다. 이 기록을 향한 양현종의 집념이 만들어 낸 성과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하면 수월했다. 시즌 29경기에서 171⅓이닝을 던지며 11승5패 평균자책점 4.10을 기록해 건재를 과시했다. 팀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덕에 무리하지 않고 등판 일정을 잡아 예상대로 170이닝을 넘길 수 있었다. 양현종도 26일 경기 후 “시즌 초부터 세웠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서 기쁘다. 아프지 않고 꾸준히 던지며 팀 승리에 기여하고 팀이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조할 수 있어 더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렇다면 양현종의 이 기록은 앞으로 깨질 수 있을까. 아마도 한동안은 도전자조차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모든 이들의 의견이 같다. 기본적으로 한 시즌이라도 170이닝 이상을 던지기가 쉽지 않다. 이제 시즌이 막바지로 향하는 25일 현재 올해 KBO리그에서 17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단 5명이고, 국내 선수는 양현종 딱 하나에 추후 박세웅(롯데) 정도가 가능성이 있다. 150이닝 이상 투구한 투수도 15명밖에 안 된다. 마운드 운영이 분업화되고, 예전보다 선발 투수들의 이닝 관리가 더 철저해지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
10년은 더 어렵다. 이닝 소화에서 강세를 보이는 외국인 투수들은 KBO리그에서 10년을 뛰기는 어렵다. 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토종 에이스들은 170이닝 돌파가 쉽지 않다. 안우진(키움)은 2022년 196이닝을 던진 게 유일한 170이닝 이상 시즌이다. 박세웅(롯데)도 딱 한 번이 있다. 원태인(삼성)이나 곽빈(두산)은 아직 한 번도 170이닝 이상 시즌이 없었다. 10년 동안 큰 부상 한 번 없어야 한다는 전제라 난이도는 더 높아진다.
그렇다면 10년 연속 170이닝 이상에 오른 양현종은 11년, 12년 연속으로 그 도전을 이어 갈 수 있을까. 체력이 되고, 기량이 되는데 도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양현종은 “항상 이닝에 대한 욕심은 있다. 내년에도 많이 던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팀이 이기는 데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그럼 기록도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송진우 선배의 최다 이닝도 언젠가는 깨보고 싶은 욕심은 있다.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라 한 시즌 한 시즌 지금처럼 던지는 데에 집중하겠다. 그렇게 아프지 않고 쭉 던진다면 그 기록도 언젠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송진우는 KBO리그 유일 3000이닝(3003이닝) 달성자다. 앞으로 500이닝 정도가 남았다.
다만 이범호 KIA 감독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 감독은 올해 선발 투수들이 줄부상으로 쓰러지는 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유일하게 로테이션을 완주한 양현종에 찬사를 보냈다. 다만 내년부터는 이닝 관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을 한 두 차례 밝힌 적은 있다. 이제 나이도 있으니 더 신선하게 공을 던지려면 중간에 몇 차례 휴식을 취하는 등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고, 많은 이닝이 누적되면 되레 경기력에 영향을 주거나 부상 위험도를 높일 수 있다. 한편으로 “내년에도 많이 던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팀이 이기는 데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는 양현종의 말은, 어쩌면 자신도 ‘170이닝’이라는 스트레스를 조금 내려놓겠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분명 170이닝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한 부분은 있었다.
‘10년’은 분명 상징성이 있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끊긴다는 점에서 선택의 시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감독은 이전에 “본인이 170이닝을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는 것 같다. 10년째이기 때문에 채우고 나면, 이제는 이닝 수를 조금 줄여가면서 던지는 것도 (양현종의) 선수 생활과 우리 팀에 보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잘 상의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감독과 선수의 시선은 다를 수 있는데, 양현종이 이 감독의 걱정을 내년에도 지울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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