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없는 이유
계엄(戒嚴)이란 ‘군사적 필요나 사회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해 행정권과 사법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군이 맡아 다스리는 일’이다. 계엄에는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이 있는데, 경비계엄은 계엄사령관이 ‘군사’에 관한 행정·사법만을 관장하지만, 비상계엄은 계엄사령관이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 이전의 전국 단위 비상계엄은 지금으로부터 44년여 전인 1980년 5월17일, 5·18 민주화운동 전날 선포됐다.
다만 이번 2024년의 비상계엄은 약 6시간 만인 12월4일 새벽 4시30분 해제되었다. 계엄 선포 2시간33분 만인 12월4일 새벽 1시2분, 국회가 재적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한 결과다. 헌법 제77조 5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국회 가결로부터도 3시간28분이 지나서야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국회의원 300석 중 야당 의석만 192석이다. 국회가 해제를 요구하면 이토록 허무하게 끝날 계엄을, 윤석열 대통령은 왜 선포했을까? 윤 대통령은 12월4일 오후 5시께 한덕수 총리와 여당 정치인들을 만나 “더불어민주당의 폭거를 알리기 위한 것이지 나는 잘못한 게 없다” “야당에 대해 경고만 하려던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할 줄 알면서도, 민주당의 일련의 행태에 ‘경고’를 날리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민주당의 예산 감액과 탄핵 남발을 이유로 들었다. 최근 민주당이 정부가 낸 내년도 예산안을 감액만 반영해 단독 처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긴 하다. 그러나 헌법 제57조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예산 ‘증액’을 못할 뿐이다. ‘감액’은 합법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회가 정부 예산을 심사해 깎을 권한은 법에 보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의회라는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의회란 애초 왕이 세금을 마음대로 쓰지 말라고 생긴 기구다). 민주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감사원장 탄핵을 연이어 추진하는 행위 역시 과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는 있어도 엄연히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 일이다.
“민주정에서 1분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반면 계엄사령부가 12월3일 밤 11시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내린 포고령 제1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 행위를 금한다.’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 (···).
모두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내용들이다.
계엄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에 어느 정도 제약을 가하는 걸 전제로 하는 건 맞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헌법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게 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계엄 이유로 든 민주당의 ‘폭거’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느냐다.
정치경제학 연구자인 조석주 경희대 교수는 “국회 다수파가 무리하게 행정부의 발목을 잡는지, 아니면 정당한 견제를 하고 있는지는 언론이 자유롭게 보도하고 각 시민이 자유롭게 비판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판명날 일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잘못한 걸로 결론이 나면 시민의 저항에 맞닥뜨릴 수도 있고, 다음 선거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 이게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다수파가 서로 다른 정파가 되었을 때, 정부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지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가 경험하는 현상이다. 이는 민주적 정치 과정을 통해 해결해야 할 일이지, 비상계엄으로 특정 정파의 방식을 강제해 문제를 푸는 체제를 자유민주주의라 부를 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그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자유로운 시민 간의 ‘갈등’을 ‘비상(非常)’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상적인 정치 갈등을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면, 그 자체로 위헌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이번 계엄을 “경솔한 한밤중의 해프닝”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 한 지방법원 판사 A는 이렇게 말했다. “12월3일 밤이 경찰로는 도저히 치안 유지가 되지 않아 군을 투입해야 할 상황이었나? 전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이 전시·사변에 준하는 상황이 아닌데도, 즉 비상계엄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는데도 군대를 동원해 국민의 기본권을 정지시켰다는 게 사건의 본질이다. 나중에 해제했든 안 했든, 유혈 사태가 있었든 없었든 관계없이, 계엄이 선포되고 해제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온 국민의 기본권이 실제로 제한되었다. 민주정에서라면 단 1분이라도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걸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나.”
더욱이 이번 계엄 과정에서는 설령 전시·사변에 준하는 상황이더라도 허용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12월3일 밤 11시48분부터 12월4일 새벽 1시18분 사이에, 무장한 계엄군 280여 명이 국회 진입을 시도한 것이다. 12월4일 밤 12시34분에는 일부 계엄군이 국회의사당 2층 사무실 유리를 깨고 의사당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이 가결되기 28분 전이었다. 비상계엄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 계엄군을 보낸 건 계엄 해제 표결을 막기 위해서인가’라는 SBS의 질문에 “넵··· 최소한의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변을 보냈다. 이는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할 걸 알면서도 ‘경고성’으로 계엄을 내렸다는 윤 대통령 해명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회는 계엄 해제를 요구할 권한을 가진 유일한 헌법기관이다. 또 다른 현직 판사 B는 “계엄법으로도 입법권은 반드시 보장하게 되어 있다. 과거 위헌·위법적 계엄을 막기 위해 계엄법을 만든 건데, 입법권 행사를 못하게 할 목적으로 국회를 틀어막았다면 명백히 위헌·위법적 계엄권 행사라 볼 수 있다. 특히 포고령 1번에서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건 사실상 법을 만들지 말라는 얘기인데, 누가 작성했는지 모르지만 계엄령에 대한 기본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번 비상계엄이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죄인 ‘내란죄’에 해당할 여지도 있다고 법조계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통령은 재직 중 불소추 특권을 갖지만 내란죄는 예외다.
또한 헌법 제77조 4항은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국무회의 심의를 거쳤다고 하나 참석자도, 회의록도 불분명하다.

계엄 해제 다음 날인 12월5일 밤 0시48분, 민주당 등 야 6당 의원 190명에 무소속 김종민 의원을 포함한 총 191명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 본회의에 보고했다. “헌법이 요구하는 그 어떠한 계엄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원천 무효인 비상계엄을 발령”하고, “유일한 계엄 통제 헌법기관인 국회를 군과 경찰을 불법적으로 동원해 봉쇄하는 등 헌법기관의 작동 불능을 시도”해 “대한민국 헌법 질서의 본질적 요소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국민의힘은 탄핵소추안을 보고하는 본회의 직전인 12월4일 밤 비공개 의원총회를 연 끝에 12월5일 새벽,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표결은 따로 없었고 박수로 추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의총에서는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그랬겠는가” “대통령이 고독해한다는데 우리가 말벗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해졌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12월5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비상계엄으로 “국민께 큰 충격과 심려를 끼친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만 해도 국민의힘은 헌법 수호 세력의 일부인 듯 보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 20분 만인 12월3일 밤 10시49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입니다. 국민과 함께 막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을 시도하던 12월4일 0시1분 한동훈 대표는 군인과 경찰을 향해 “반헌법적 계엄에 동조하고 부역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새벽 1시2분 계엄 해제 결의안에 찬성한 의원 190명 중 18명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대부분 친한동훈계로 꼽히는 의원들이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탈당 요구도 합의 못해
그 시각 다른 국민의힘 의원 50여 명은 추경호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중앙당사 3층에서 의원총회를 소집해 그곳에 머물렀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장소를 네 차례 변경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국회를 무력으로 제압하려 하는 국면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태도였지만 워낙 전례 없는 혼란스럽고 급박한 상황이어서 우왕좌왕한 것으로, 최대한 선의로 해석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설마’는 ‘역시’로 바뀌었다. 날이 밝은 12월4일 오전 한동훈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요구하기로 한 것은 내각 총사퇴, 국방부 장관 해임, 국민의힘 탈당이었다. 대통령 탈당 요구는 당내에서부터 반대에 부딪혔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을 ‘해임’이 아닌 ‘면직’ 처리했다.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하긴 했으나 12월6일 오전 현재까지 내각 총사퇴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동훈 대표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가 당론으로 정해진 데 대해 12월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당의 주요 당론이 결정되는데 당대표가 사전에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윤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을 옹호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동훈 대표는 윤 대통령 ‘탄핵’ 대신 ‘탈당’을 재차 요구했다.
그러던 한동훈 대표는 12월6일 오전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입장을 바꿨다. “어젯밤 지난 계엄령 선포 당일에 윤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들 등을 반국가세력이라는 이유로 고교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체포하도록 지시했던 사실, 대통령이 정치인들 체포를 위해서 정보기관을 동원했던 사실을 신뢰할 만한 근거를 통해서 확인했다. 새로이 드러나고 있는 사실 등을 감안할 때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정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라며 탄핵 찬성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평시에 무장한 계엄군을 국회로 보낸 사람이다. 국회보다 더 먼저, 더 많은 계엄군(297명)이 비상계엄 선포 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점거 등에 투입된 사실도 뒤늦게 보도되었다. 계엄군은 야간 당직자 등 5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고 한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선관위 부정선거 의혹 관련 수사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계엄군을 선관위에 보냈다고 답했다.
헌정 질서 복원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박상훈 정치학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 정치의 변화나 문재인 정부 때 이뤄진 적폐 청산 수사에 부정적이다. 이번에도 윤 대통령 탄핵보다는 정치적 해결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윤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부모가 아이를 잘되게 하기 위해 부엌칼로 위협했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윤석열은 통치할 도덕적 권위를 이미 상실했다. 다만 법은 느리다.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에 맡기기보다 정치가 역할을 해서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처럼 사퇴하게 해야 한다.”
보수 원로인 윤여준 전 장관도 “민주 헌정을 짓밟으려 한 사람을 용서해선 안 된다. (탄핵이든 사퇴든) 어떤 방식이든 간에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정도로 끝난 건 불행 중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이번 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서툴러서 실패했을 뿐이다. 성공 여부를 떠나 시도한 것 자체가 의도가 불순하다.”
조석주 교수도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당선된 대통령이 임기를 못 마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나 2024년 12월3일 밤 이후로 입장이 바뀌었다. 조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수도 없이 공식적 언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그의 정치는 자유주의의 기본 요건인, 자신에게 반대하는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내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가 금지하는 자유로운 정치활동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윤 대통령이 자신과 다른 방향의 정치적 견해를 가진 세력들을 ‘체제 전복 세력’이라 부르며 공적 권한을 사용해 기본권을 억압하려 한 것은 가장 반자유적인 정치행위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윤석열은 헌법과 시민 앞에서 한 서약을 배반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직접 공격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방법은 윤석열을 권력에서 축출하는 것이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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