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시절, 우리 책상의 8할은 모니터가 차지했었다

▲ 뚱뚱하던 그 모니터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지금도 난 기억합니다.

오래전 컴퓨터 책상 위에는 엄청나게 큰 모니터가 있었다. 배가 불룩 나온 뚱땡이 CRT 모니터. 전원 버튼을 누르면 경쾌한 퉁 소리가 났다. 그래서 몰컴 따위는 꿈도 못 꿨다. 어머니 귀가 밝았기에 모니터 켜는 소리는 바로 들켰기 때문이다. 화면 구석, 가장자리는 언제나 왜곡된 모습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스운 게, 당시 그 화면이 굉장히 선명하다고 생각했다. 광각렌즈처럼 왜곡된 화면이었는데…

아무튼 크긴 진짜 엄청나게 컸다. 부피가 너무 큰 탓에 같은 책상 위에 키보드를 둘 곳조차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옛날 컴퓨터 가구를 보면 키보드 수납장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키보드를 서랍에 넣어 보관하는 게 깔끔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실은 둘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이 없다면 모니터 옆으로 비스듬히 돌려 키보드와 같이 두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황당한 이야기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그 누구도 CRT 모니터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CRT 모니터에 대한 추억을 되새겨보자.


CRT를 모르는 요즘 사람들을 위한 간단한 CRT 강의

CRT 모니터의 CRT는 무슨 의미일까? CRT는 Cathode-Ray Tube의 약자로 구글 번역에 따르면 음극선관이란 의미다. 음극선은 진공 유리관에 설치된 양극, 음극 사이에 고전압을 걸어줬을 때 관측되는 전자의 흐름을 말한다. 음극선은 그렇다 치고, 음극선관은? 음극선관은 바로 그 음극선을 이용해 형광빛을 발산하는 진공관을 말한다. 전기 신호로 음극선의 방향과 강도를 조절한다.


▲ 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음극선관이 어렵다고? CRT를 써 왔던 우리들이 잘 아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CRT를 개발한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이 발명했다. 그러면 브라운이 발명한 관은 무슨 관? 브라운관이다.


▲ 음극선관의 구조, 무언가 상당히 공학스럽다<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구조는 크게 어려울 건 없다. 모니터 내부에 전자총이 있는데, 이 전자총이 화면을 향해 전자빔을 쏜다. 그러면 전자가 막 튀어나오는데 문제는 전자가 방향성 없이 막 튀어나온다는 것. 이를 막기 위해 강력한 전자석인 포커싱 코일과 편향 요크를 사용해 자기장으로 전자빔의 초점을 맞추고 이동 방향을 주사선으로 이동할 수 있게 휘게 만든다.


▲ (사진 출처: 유튜브 채널 Midnight Geek)

다시 전자총으로 돌아오자. 전자총이 쏘는 것은 3개의 빔으로 적색, 녹색, 청색 형광점에 닿게 된다(초창기 CRT는 전자총 3개를 내장해 따로 쐈다). 참고로 적색은 Red, 녹색은 Green, 청색은 Blue. 합치면 RGB. 이 전자빔이 RGB 형광점에 닿으면 빛이 발생한다.

그런 방식으로 화면 구석구석 픽셀 단위로 이동하며 그림이 그려진다. 1초에 60번씩 이동해서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60Hz며 144번이면 144Hz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주사율의 원조격이라 볼 수 있다. 또한, CRT는 응답속도가 사실상 없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전자선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FPS 장르에서 CRT 모니터가 오랫동안 쓰였다.

아무튼 그 당시 CRT 모니터와 손발을 맞추던 IBM PC 그래픽카드는 MDA, CGA, EGA, VGA, XGA 등이 있다. 더 이어갈 수 있긴 한데 이야기가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오해 마시라. 절대 필자가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위험한 CRT

▲ 좀 무서운 CRT 모니터의 잔재<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CRT의 유명한 단점. 무겁고 뚱뚱하다. CRT TV의 경우 이삿짐센터에서 잘 안 받아주기도 했다. 내부에는 진공이 형성되어 있기에 깨지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었다. 진공 상태에서 깨지면 후폭풍이 커서 크게 다칠 수 있다. 이에 대비해 CRT는 유리를 두껍게 만들었다. 두껍게 만들면? 무거워진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린다. 그래서 가끔 안 좋은 뉴스가 나기도 했다. 어린아이가 CRT TV 등에 깔려 숨진 사건 등이다.


▲ 고전압이 흐르는 CRT 내부를 촬영한 영상
<출처: 유튜브 채널 RODALCO2007>

하지만 위험하다고 표현한 건 사실 이 이유가 아니다. 정말 위험했던 이유는 내부의 전자총 때문이었다. 전자총에는 고전압이 필요했다. 대략 30kV 정도인데, 이 정도면 KTX(전압 25kV) 수준이다. 그런 이유로 오래된 CRT 모니터의 매뉴얼을 보면 여기저기 감전 경고가 써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발열이 심하다고 뚜껑을 열고 쓰면 절대 안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실제로 전원이 꺼진 CRT 모니터를 수리하다 감전사한 케이스도 있다.


▲ 고양이들의 온수매트(?)였던 CRT 모니터

또한, 발열이 심했다. 오래 사용하면 상당히 뜨끈뜨끈했다. 고양이가 있는 집이면 고양이가 모니터 위에 누워있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위험했다. 그런 이유로 모니터 뒤편에 공간을 꼭 두라는 주의사항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위험한 CRT 모니터도 어머니들의 열정은 막지 못했다. CRT 모니터 상단에 직접 정성스럽게 짠 예쁜 레이스 커버를 올려두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마치 비디오 플레이어(VHS)나 냉장고처럼… "엄마 여기 올려놓으면 안 된다니까!" "어머 보기 좋은데 왜 그러니. 아무 문제도 없잖아" 그런 일이 있었다.

전자파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유해한 전자파를 차단해 준다는 보안경 등이 팔리곤 했다. 선인장도 올려놓곤 했고, 10원 동전을 모니터에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모니터는 사실 측, 후면에서 전자파가 방출됐다. 정면으로 나오는 전자파는 10~20% 정도로 적었다. 그래서 모니터 전자파 때문에 몸이 아팠다면, 사실은 전자파가 아니라 바르지 못한 자세를 취해 통증이 생긴 건 아닐지 생각해 볼 수 있다.


CRT 모니터로 먹고 산 브랜드

▲ 다나와의 2005년 CRT 모니터 관련 기사

앞서 언급한 것처럼 CRT 모니터는 생각보다 위험했기에 제조사의 기술력이 중요했다. 그럼 CRT 모니터는 대기업 브랜드만 있을까? 그건 아니다. 다나와가 2005년 올린 CRT 모니터 분야 판매 점유율 분석 게시물을 확인해 보자.


▲ 세기말엔 '청년'이라는 단어가 유행했었다. 한솔전자 마젤란 모니터 TV-CF
<출처 : 유튜브 cgaega1 채널>


2005년 당시에는 삼성전자, LG전자, 오리온 정보통신이 3강 체제를 구축했다. 즉, 중소기업 CRT 모니터도 분명히 있었다. 오리온 정보통신 외에도 비티씨 정보통신, 제우스 등 국내 중소기업 제품군이 많았다. 또한, 일본산 모니터도 있었다. EIZO, NEC, 소니가 강세였다. 특히 EIZO는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아주 유명했다.

이렇듯 다양한 종류의 CRT 모니터가 있었지만, 역시 국내 시장에서 주역은 삼성전자, LG전자였다. 삼성전자는 1988년 싱크마스터 브랜드로 CRT 모니터를 처음 선보였고, 2011년 2월까지 해당 브랜드를 사용했다. 당시 싱크마스터는 삼성 완제품 PC인 알라딘, 그린, 매직스테이션에 세트로 판매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 삼성전자 싱크마스터 909NF

싱크마스터의 고급형도 있었다. 일명 싱크마스터 매직. 매직브라이트, 매직컬러, 매직 업스케일 같은 기능이 추가된 버전이다. 매직브라이트는 기존제품과 동일한 소비전력과 수명 조건으로 모니터 밝기를 2배 이상 높이는 기능이다. 매직 컬러는 채도 부분을 향상시켜 선명한 자연색을 구현하는 기능이다. 매직 업스케일은 작은 이미지를 확대할 때 이미지 깨짐 및 화질 저하를 방지했다.


▲ 삼성전자 싱크마스터매직 CD197AP

싱크마스터는 909NF 제품군이 유명했고 매직 라인업은 CD197 시리즈가 유명했다. 909NF 제품군은 미쓰비시 NF Diamondtron 브라운관을 사용해 색감이 선명하고 평면감이 뛰어났다. CD197 시리즈는 06~07년도에 생산돼 실질적으로 CRT의 마지막 불꽃이라 볼 수 있었다. 등급에 따라 매직 브라이트 기능 등이 삭제되는 경우도 있다.


▲ LG전자 플래트론 F920B. '평면' 모니터다

LG전자는 플래트론 브랜드가 유명했다. 그런데 플래트론은 사실 PC 모니터가 아니라 원래 평면 브라운관 TV 브랜드다. 모니터는 플래트론, TV로는 플라톤이라는 명칭이었고, LG전자가 1995년 미국 제니스(야인시대 합성물의 라디오로 유명하다)를 인수하며 취득한 완전 평면 CRT 플래트론을 적용한 TV 라인업이었다. 이후 LG전자는 완전 평면을 거쳐 LCD 라인업까지 플래트론 브랜드를 사용하게 된다.

여기서 완전 평면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 초창기 CRT 모니터는 전자총 음극선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가 화면 가장자리에는 중앙보다 음극선이 도달하는 거리가 길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면을 볼록하게 만든 것이고, 그건 우리가 기억하는 배불뚝이 모니터로 이어진다. 그러나 기술력의 향상과 함께 이 튀어나온 배는 점점 들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평평해졌다.


▲ 삼성전자 싱크마스터 다이나플랫 955DF

그런데 평평해진 모니터도 자세히 볼 필요가 있었다. 안쪽의 발광면은 여전히 볼록한데, 겉면만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모니터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면 겉모습만 평면 모니터며 실제로는 여전히 볼록한 CRT 모니터다. 삼성전자가 다이나플랫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모니터를 선보인 적이 있다. 하지만 LG전자는 플래트론 브랜드로 안과 밖이 모두 평평한 모니터를 선보였다. 완전 평면 모니터를 먼저 선보인 것이다.


▲ 삼성과 LG는 이때도 참 많이 싸웠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삼성전자는 다이나플랫을 홍보할 때 기존 평면 모니터의 오목해 보이는 단점을 보완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사람들이 기존 CRT 모니터의 볼록함에 익숙했기 때문에 할 수 있던 말이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볼록하게 보인다고 느껴질 수 있다.


진정한 Nerd는 듀얼 모니터를 썼다

▲ CRT 모니터 두대로 듀얼모니터 셋팅한 모습. 참 거대하다.<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듀얼 모니터? 그게 뭐라고? 지금에야 이런 말을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엄청나게 크고 튼튼한 책상 정도나 되어야 듀얼 모니터를 감당할 수 있었다.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무겁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모니터 두 대를 올려놓고서도 키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책상이어야 했다. 요구 조건이 절대로 만만하지 않다.


▲ 듀얼 모니터의 첫걸음, 2차 RAMDAC<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그래픽카드 구입 시 2차 RAMDAC(이하 램댁) 장착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램댁? RAMDAC다. 참고로 DAC는 디지털 아날로그 변환 회로다. 그 DAC 맞다. 이게 왜 필요했냐면, 그래픽카드는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지는데 CRT 모니터는 아날로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변환해서 출력해야 했다. 그럼 램댁이 두 개 달려 있으면? 한 번에 2개의 출력을 동시에 쓸 수 있었다. 램댁은 당시 그래픽카드를 고를 때 스펙에 표기됐다. 그래서 듀얼 모니터를 사용한다면 D-SUB 및 DVI 슬롯이 둘 다 있나 확인해야 했다.


▲ 매트록스 밀레니엄 G450. DVI와 D-Sub 동시 출력이 가능했다

그런 이유로 당시 인기를 끌었던 그래픽카드가 매트록스며, 그런 매트록스 중에서도 초절정 간지템이라 언급할 수 있는 제품이 매트록스 밀레니엄 G450과 G550이었다. 당시 게이밍 그래픽카드는 라데온 VE나 지포스 2 MX 계열이 대세였다. 그런데 매트록스 밀레니엄 시리즈는 게이밍 그래픽카드도 아니고, 2D 그래픽카드에 불과했다. 대체 이게 왜 간지템이었을까?

이유는 화질이다. 매트록스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그래픽카드’였다. 3D 가속은 경쟁사 제품과 비교하면 사실상 포기한 수준이지만(메모리 인터페이스 64비트), 대신 색감과 화질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듀얼 디스플레이 기능을 윈도우 2000에서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었고, 두 개의 디스플레이 모두를 DVI 인터페이스로 적용할 수 있었다. 당시로는 획기적이었다.


소중했던 CRT 모니터를 기억한다

LCD의 등장은 가정, 사무실의 풍경을 완전히 바꿨다. 이제 CRT 모니터는 현시점에서는 특수 용도(레트로 게임)를 제외하고는 딱히 일할 곳이 없다. 백남준의 대표적인 비디오아트 다다익선도 브라운관 TV의 내구연한을 훌쩍 넘겨 LCD 모니터로 교체하자는 제안까지 들어왔던 실정이다. 심지어 생긴 것은 CRT더라도 하우징 내부에 MicroLED 등 현대 디스플레이 패널이 탑재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CRT 모니터와 보낸 세월이 변하지는 않는다. 한때 가전제품과 같은 취급을 받을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존재였다. CRT 모니터와 함께 보낸 날들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시대를 지나온 우리들에게 CRT 모니터는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기획, 편집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글 / 김도형 news@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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