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레거시 미디어 위기, 신뢰·효능감에 대한 질문
나이도 그렇고 삶의 궤적도 그래서 꽤 많은 선거를 지켜보았다. 자유당 시절의 부정선거야 책으로 읽었지만,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관권 부정선거와 돈 봉투 살포는 현실에서 보았다. 조직과 자금 못지않게 미디어의 영향력이 획기적으로 커진 것은 YS(김영삼) 때부터였다. YS의 대통령 당선은 신문, 특히 신문사 내 이른바 ‘YS 장학생’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3당 합당 때에도, 내각제 합의 각서가 드러났을 때도, 초원복국집에서의 관권선거 논의가 들켰을 때도, 상식과는 달리 YS에 유리하게 프레임을 비틀고 여론을 만들어나갔다. DJ의 대통령 당선은 TV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정희 이후 장기간의 군부독재 시절,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DJ의 이미지는 ‘빨갱이’이거나 과격한 ‘선동정치가’였다. IMF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TV토론을 통해 비로소 그의 합리성과 경제적 식견을 볼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인터넷 시대의 커뮤니티와 댓글 덕분이었다. 커뮤니티와 댓글을 통해 유권자들은 왜 그를 지지해야 하는가를 학습했고, 그렇게 학습된 이들은 정몽준과의 단일화 결렬 이후 노무현을 지키기 위해 투표장으로 몰려나갔다.
불법 계엄과 탄핵으로 치러진 2025년 대선에서 가장 핵심적인 미디어는 무엇이었을까? 레거시 미디어 측은 마음에 안 들겠지만, 나는 유튜브였다고 생각한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후보 결정 때 참고한 정보원으로, 유튜브 비율은 신문+방송과 같은 27%였다. 실제 후보들은 현장 유세시간까지 아껴가며 각종 유튜브에 출연했다. 왜 그랬을까?
첫째는 후보들의 메시지가 왜곡되지 않고 직접 전달된다. 유튜브는 미디어가 아니다. 메시지 검증도 없고 편향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레거시 미디어로 불리는 신문과 방송도 그 비난에서 자유로운가? 겉으로는 객관 중립을 표방하지만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나? 독자나 시청자들은 많은 신문과 방송이, 후보의 메시지나 발언을, 심지어는 거짓말까지 그대로 받아쓰거나 자의적으로 편집해 사실관계를 흐리게 하거나 맥락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유튜브를 비롯한) SNS가 없었으면 나는 언론에 가루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둘째는 유튜브가 웬만한 신문 방송보다 보는 이가 많아 도달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당시 출연했던 ‘매불쇼’는 구독자가 253만 명이고, 김어준의 ‘겸공’도 210만 명이다. 정치적으로는 반대쪽인 ‘진성호tv’도 구독자가 187만 명, ‘신의한수’도 162만 명이다.
뉴스를 제외하면 지상파 방송의 경우 KBS MBC SBS 3사를 합쳐도 대선 후보토론은 겨우 3차례에 불과했다. 교양이나 예능 쪽에서의 후보나 가족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아예 없었다. 그 틈새를 공략한 것이 홍진경의 ‘공부왕찐천재’였다. 구독자 177만 명의 ‘공부왕찐천재’는 한국 학부모들의 관심사인 공부를 소재로 한 예능 콘텐츠로 조회 수도 아주 많다.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후보가 모두 출연했을 정도이다.
유튜브에 출연한 후보의 이른바 ‘짤’들은 각종 SNS를 통해 유통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던 장면은 이동 중인 후보 차량에 함께 탄 유튜버가 생방송으로 “1976년의 소년공 이재명을 2025년의 대통령 후보 이재명이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가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냐”는 질문에 눈물지으며 “그냥 꼭 안아주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는 대목이었다. 이 장면은 생성형 AI에 의해 즉각적으로 15초짜리 동영상으로 만들어지고 전파되어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유튜브의 득세는 전국 단위의 선거, 대선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지난 총선과 부산 교육감 보궐선거에서도 후보자들은 지역 선거 운동 시간을 줄여 서울지역 유튜브에 앞다투어 출연했다. 이미 정치홍보 시장에서의 권력은 레거시 미디어가 아니라 유튜브로 넘어갔다. 지역은 더더욱 그렇다. 후보들의 지역 공약은 카드뉴스로 만들어져 SNS로 유통되었다.
나는 1995년 제1회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한국 언론사상 최초로 출구조사를 했고, 2002년에는 지역방송 최초로 대선 후보토론 방송을 주관했었다. 그때만 해도 정치 시장에서 지역과 지역 언론의 영향력이 있었던 셈이다. 지역이 쇠퇴하면서 지역 언론도 같이 어려워지고 있다.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나는 ‘신뢰’ 혹은 ‘효능감’의 회복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계적인 중립, 혹은 공정이 반드시 진실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기계적 중립의 뒤에 숨지 말고 독자나 시청자에게 옳고 그름의 잣대를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가 수정헌법 1조인 미국의 연방 통신위원회도 1987년부터 ‘공정성’ 원칙을 폐기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군인들이 총기를 들고 국회에 난입할 때 어떤 신문과 방송도 불법 계엄이라며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지키자고 말하지 않았다. ‘내란’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 미디어 시장의 위기는 정보통신기술이 초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신뢰의 위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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