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전쟁·서부개척 거쳐 '총기권' 확립.. 종교 자유처럼 헌법보장



■ Why - 美 총기규제 실패하는 이유
올해에만 총기사망 1만363명
무차별 피해에도 규제 소극적
유럽서 건너온 초기 이주민들
원주민·야생동물에 총기 필수
1791년 수정헌법 제2조 명시
총기協, 막강 로비로 규제 저지
공화당 규제 반대 정서도 한몫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수정헌법 제2조)
12일(현지시간) 비영리단체 총기폭력 아카이브에 따르면 올 들어 7일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사건으로 인한 사망자는 1만363명, 부상자는 1만9742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총기사건으로 2만944명이 숨진 지난해와 비슷한 추이를 보이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텍사스주 유밸디 롭 초등학교 총기참사처럼 총기에 희생된 어린이(11세 이하)와 청소년(12∼17세) 사망자만 각각 182명, 688명에 달했다. 4명 이상 사망·부상자가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역시 올 들어 6개월 남짓한 기간 322건에 달했다. 미 전역에서 하루 평균 1.71건, 약 2건의 총기난사 사건이 매일같이 벌어진다는 계산이다. 미국 내 총기규제 여론이 들끓고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 “범람하는 총기폭력과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이번에도 실효성 있는 총기규제를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미국이 숱한 희생에도 총기규제를 단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독립전쟁·서부 개척시대 겪으며 ‘총을 든 시민’ 개념 확립=미국의 역사는 총기와 함께 시작됐다. 유럽에서 아메리카대륙으로 건너온 이주민들은 야생동물, 원주민, 다른 이주민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고, 위태로운 환경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총이 필요했다. 하지만 영국은 과중한 세금에 대한 반발을 막기 위해 1774년 무기몰수를 단행했고, 이에 불응해 자신의 총기를 지킨 시민들이 결국 힘을 합쳐 독립을 이뤄 냈다. 이후 미국인들은 국가 형성 과정에서 중앙집권적 정부가 무력을 독점하는 대신 자치권을 가진 주들이 연합해 국가를 이루는 방식을 택했다. 식민지배 국가였던 영국 같은 압제적 정부가 출현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연방의회는 1791년 수정헌법을 제정하면서 종교·언론의 자유를 명시한 수정헌법 제1조에 이어 총기 소지 권리를 제2조로 보장했다. 서부 개척시대 역시 원주민, 갱단 등으로부터 개인의 생명·재산·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총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총기 소지 문화는 전통으로 굳어졌다.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 6월 23일 공공장소에서의 권총 휴대를 금지한 1913년 뉴욕주 법률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근거도 총기 소지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2조 위반이었다. 권총 휴대 허가를 받지 못한 뉴욕주민 2명이 낸 소송에서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보수 성향 대법관 6명은 일제히 위헌 판단에 동참했다. 다수 의견을 작성한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수정헌법 제2조를 핵심 근거로 제시하며 “개인이 정부 관리들에게 특별한 필요를 설명한 후에야 헌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다른 경우에는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규제가 역사적 총기규제 전통과 일치하는지를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에서는 231년 전 제정된 수정헌법 제2조의 민병대 조항을 21세기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된 지 오래다. 민병대가 정부 압제로부터 자유를 지킨다는 논리도, 민병대와 아무 관련 없는 18세 청소년까지 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보수 우위 대법원은 총기 소지권이 민병대원에 한정된 권리가 아닌 모든 미국인에게 부여된 권리라고 판단한다. 대법원의 이 같은 논리는 총을 최후의 자기방어 수단으로 여기는 상당수 미국인의 뿌리 깊은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은 어려서부터 총기를 접하고 총기 소지를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 지난해 퓨리서치 설문조사 결과 규제 강화로 대형 총기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한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49%에 그쳤다. 2019년 240만 명이었던 신규 총기 구매자가 2020년 380만 명으로 58% 증가하는 등 연방정부가 코로나19로 강도 높은 방역대책을 시행하는 동안 오히려 총기판매가 급증하기도 했다.
◇돈·로비 뿌리는 NRA와 공화당도 규제 가로막아 = 전미총기협회(NRA)와 공화당도 총기규제 입법화를 가로막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최대 이익단체인 151년 역사의 NRA는 남북전쟁 직후인 1871년 북군 장성들이 주도해 사격술 훈련을 목적으로 한 여가단체로 출발했다. 하지만 1934년 총기 관련 법에 대한 정보를 회원들에게 우편으로 보낸 것을 시작으로 로비단체로 탈바꿈했다. NRA는 이후 1934년 전국총기법, 1968년 총기통제법을 지지하며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미 전역에서 활동하는 회원 수는 500만 명으로 추산되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조지 H W 부시, 로널드 레이건 등 무려 10명의 대통령이 NRA 회원이었다. NRA의 2020년 한 해 예산은 2억5000만 달러(약 3254억 원)로, 미국 내 모든 총기규제 옹호 단체의 예산을 합한 것보다 많다. NRA는 정치인 직접 후원에 400만 달러 정도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치활동 전반에 5000만 달러 이상을 사용하는 등 실제 로비 금액은 훨씬 막대하다. 무엇보다 NRA는 총기소유권에 대한 성향에 근거해 정치인을 A등급부터 F등급까지로 분류하는데, 막강한 조직력 덕에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밸디 총기참사 이후 악화한 여론에 떠밀려 지난 6월 29년 만에 21세 미만 총기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연방 차원의 총기규제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초당적 논의를 거친 끝에 민주당 의원 50명은 물론 공화당 의원 15명도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요구했던 총기 구매연령 상향이나 공격용 소총·대용량 탄창 판매금지 등 핵심 내용은 여야 논의과정에서 모두 빠졌다. 특히 법안에 찬성한 공화당 의원 중 정계 은퇴를 앞둔 4명이 포함되는 등 공화당 내 총기규제 반대 여론은 여전한 상황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당내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총을 든 나쁜 놈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놈이 총을 드는 것”이라며 총기규제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지난 5월 텍사스 초등학교 참사 발생하자… 총기 관련 주식 일제히 상승
■ 비뚤어진 산업구조
1만여 곳이 年 1130만정 생산
3D프린터 ‘유령 총’까지 범람
지난 5월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롭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19명을 비롯해 21명이 숨지는 최악의 총기참사가 발생하자 뉴욕증시에서는 스미스 앤드 웨슨, 비스타 아웃도어, 스텀 루거 등 총기 관련주들이 일제히 상승했다. 총기참사로 총기규제 법안이 도입될 가능성에 대비해 미리 총기를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총기 관련 매출이 급증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총기참사가 끊이지 않는 데는 제도적 문제점과 함께 총기 관련 불안이 커질수록 오히려 성장하는 비뚤어진 산업 구조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12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총기 제조업체들이 2020년 한 해 동안 생산한 총기는 1130만 정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00년 이후 20년 동안 미국 내에서 제조된 총기는 1억3900만 정에 달하고, 같은 기간 7100만 정의 총기가 수입, 750만 정이 수출됐다. 현재 미국 전체 인구 3억3480만 명을 감안하면 2000년대 이후 미국 인구 1인당 약 0.6정의 총기를 소비했다는 분석이다. 총기 제조업체 수도 대폭 증가했다. 2000년 연방정부에 등록된 총기 제조업체는 2222개였지만 2020년에는 1만6936개로 8배 가까이 급증했다. 최근에는 자녀 생일이나 성경 구절, 성조기 등을 새긴 총을 기념품으로 소지하려는 수요가 늘어 소규모 총기 제조업체들이 호황을 맞고 있다. 공식 제조사가 만든 총기에 더해 부품 형태로 온라인에 유통되고 3D프린터로 생산 가능한 ‘유령총’(ghost gun)까지 범람하는 상황이다.
총기산업이 포화 상태에 달하면서 유밸디 총기참사에 사용된 소총을 제조한 대니얼 디펜스 등 일부 총기회사들은 젊은 층을 겨냥한 공격적 마케팅 등으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매점에 총기를 납품하던 관행과 달리 고객에게 온라인으로 총기를 직접 판매하거나 비싼 총기를 할부로 손쉽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판매 전략도 강화 중이다. 2005년 제정된 총기산업보호법은 총기가 범죄에 사용된 경우에도 제조업체에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했다. 다만 총기 제조사가 위법적 마케팅을 한 경우에는 제소할 수 있다. 2012년 26명을 숨지게 한 코네티컷주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참사의 경우 범행에 사용된 반자동소총 부시마스터를 제조한 레밍턴의 보험사가 최근 유족들과 7300만 달러(약 960억 원) 배상에 합의했다. 유족들은 레밍턴이 광고에서 총기를 전쟁무기처럼 묘사하고 선동적 문구로 범인을 자극했다고 주장해 배상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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