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권 라이프자산운용 대표가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KCC의 자사주 교환사채(EB) 철회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강 대표는 지난달 30일 “KCC가 논란을 인지하고 중요한 결단을 내린 점에 대해 훌륭하다고 평가한다"며 “자사주 매각이나 EB 발행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했던 것이 본질적 쟁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결정은 사회적 분위기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다른 기업들에도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며 “다만 보유 중인 삼성물산 지분의 가치가 회사 시가총액보다 큰 상황에서 해당 지분의 활용 계획을 주주들과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강 대표는 KCC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의 문제점을 정조준했다. KCC는 7월 HD한국조선해양 지분을 활용해 8828억원 규모 교환사채(EB)를 발행했는데 유독 삼성물산 지분만 매각이나 EB 발행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것이 강 대표의 지적이다.
실제 KCC는 2019년 세계 3대 실리콘 기업 중 하나인 미국 실리콘 기업 모멘티브 인수 당시에 인수금융으로 연 6~8%대 금리의 2조원을 차입했다. 이 과정에서 3조3000억원에 달하는 삼성물산 지분을 1주도 매각하지 않았다. 반면 삼성물산을 장기 보유해 얻는 배당수익률은 연 1% 초반대에 불과하다.
KCC는 지난달 24일 자사주를 기초로 4300억원의 EB를 발행한다고 공시해 논란이 일었다. 3조원이 넘는 삼성물산 지분이 아닌, 자사주를 EB에 활용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됐다. KCC는 약 4조6000억원 규모의 상장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삼성물산 지분만 3조3000억원에 달한다.
강 대표는 국내 기업들의 자사주 EB 남발 현상도 지적했다. 코스콤 집계에 따르면 9월말 기준 올해 EB 발행액은 3조1033억원으로 지난해 총액인 2조248억원를 뛰어넘었다. 2023년 1조766억원과 비교하면 3배에 가깝다.
강 대표는 "KCC가 3조원이 넘는 삼성물산 주식을 들고 있으면서 4300억원 조달에 자사주를 기초로 EB를 발행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국민연금과 주주들이 10여년간 지배구조 리스크를 감내해 온 수혜를 KCC가 일방적으로 가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사회가 상식적으로 접근했다면 비핵심 상장지분인 삼성물산 지분 매각을 먼저 검토했어야 한다"며 "자사주 EB를 택한 배경을 데이터와 논리로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사주 EB는 백기사를 내세운 3자배정 유상증자와 다르지 않지만 절차적 규율은 훨씬 간단하다"며 "유증은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하지만 자사주 처분은 이사회 결의만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남발 유인이 더 크다"고 강조였다.

강 대표는 입법부와 사법부가 이러한 현상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자사주 의무소각이 포함된 상법 개정을 예고하면서 법 시행 전 EB 수요를 폭발시켰다는 것이다. 법 시행 전 발행한 EB는 소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 알려지자 기업들은 EB 발행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뛰어들고 있다.
그는 "자사주 소각은 코스피5000 시대로 가겠다는 선한 의지로 시작했지만 법 시행 전 과도기에 기업들이 EB 발행에 매달리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해석했다.
사법부에 대해서도 "태광-트러스톤 사례처럼 법리상 자사주 처분을 기업의 재산 처분으로 볼 수 있다고 해도 판결이 유발하는 파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EB가 사실상 3자배정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면 심사 잣대도 그에 맞게 고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태광산업의 EB 발행을 둘러싼 분쟁 중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태광산업은 신사업 진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3200억원의 EB 발행을 추진했으나 트러스톤운용은 주주 가치 훼손을 이유로 반발했다. 법원은 태광산업의 자금 조달 필요성을 인정해 트러스톤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강 대표는 EB 발행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는 "기업 재무 측면에서 EB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절차와 보호장치가 부족하면 시장 신뢰가 깨진다"며 "이사회는 다른 조달 수단과 비교해 왜 자사주가 최선인지에 대한 논거를 문서로 남기고 주주가 감당할 비용에 상응하는 기대 가치와 향후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입법부가 성급한 법 개정으로 EB를 악용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했고 실제 IB들이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했다"며 "사법부마저 자사주 처분이라는 문을 열어준 것은 스스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자초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KCC는 자사주 EB 발행 계획을 밝힌 뒤 주주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자 해당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KCC는 “회사의 경영환경과 주주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보다 명확하고 안정적인 방향을 택하고자 내린 결정”이라고 공시했다.
신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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