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美 나사도 애태우는 캐나다의 '그 기술'... 만능 로봇팔
⑤캐나다, 로봇팔 등 세부 기술에 올인하다
편집자주
정부가 얼마 전 우주항공청 설립 계획을 공식 발표함에 따라, 한국도 몇 년 안에 우주 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을 가지게 됩니다. 우주 개발 후발국가인 한국에게 우주 전담기관은 그야말로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새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이미 우리보다 우주 개발을 일찍 시작한 미국·일본·유럽·인도 등 우주 전담기관을 살펴보고,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것을 피해야 '한국형 나사'를 성공하는 조직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 봅니다.
"캐나다는 달에 간다. 캐나다에 의해,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로봇팔은 달에서 우주정거장을 조립·보수할 것이다."
2019년 3월 2일 캐나다우주국 기자회견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트뤼도 총리의 이 말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결코 아니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을 상대로 큰소리칠 수 있고, 우주 국제협력에서 절대 빠져선 안 되는 나라가 바로 캐나다다.
자력 우주 발사체 기술도, 심지어 제대로 된 자국 우주발사장도 없는 캐나다는, 과연 어떤 비밀 무기를 가졌기에 우주개발의 필수 국가로 인정받는 것일까?
캐나다는 나사 주도의 유인 달 탐사 계획 명칭이 '아르테미스'로 정해지기(2019년 5월) 전에, 그리고 나사가 우호국을 상대로 아르테미스 약정 서명(2020년 10월)을 받기도 전인 2019년 3월, 이미 사업 참여를 확정했다. 함께 하자고 매달린 쪽은 캐나다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2018년 11월엔 짐 브리던스타인 나사 국장이 캐나다 수도 오타와를 방문해 달 우주정거장 참여를 공식 요청했다.
미국이 캐나다에게 지극정성을 다한 것은, 캐나다가 보유한 우주 전용 로봇팔, 바로 캐나담(Canadarm·캐나다의 팔이라는 뜻) 때문이었다.
원자로 로봇팔에서 시작된 '캐나다의 팔'
캐나다의 로봇팔 경쟁력을 이해하기 위해 시계를 과거로 되돌려 보자. 1969년 달 착륙에 성공하며 아폴로 미션의 8부능선을 넘은 나사는, 그 후속 프로젝트로 우주왕복선(space shutle)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우주왕복선은 지구 저궤도 우주정거장을 수시로 오가는 우주비행기다. 임무 완수 이후 대기권에서 재가 되버리는 로켓 대신, 재활용이 가능한 우주선을 만들고자 했다.
다만 이 우주왕복선 개념이 가능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게 있었다. 공사장에서 크레인과 같은 역할을 해줄 우주 전용 로봇팔이다. 이전까지 위성 발사는 로켓, 혹은 우주선이 목표 고도에서 위성을 분리시키는 방식(사출)이었다. 하지만 우주왕복선은 트렁크(Cargo Bay)를 열고 로봇팔이 위성 등을 꺼내는 식이어야 했다. 특히 나사는 우주왕복선이 위성을 수리하거나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임무를 맡길 원했는데, 우주에 정차한 우주왕복선에 로봇팔을 설치한다면 인간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많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거라 봤다.
당시 나사가 주목한 것은 캐나다 'CANDU 원자로'에서 사용되던 연료 적재용 로봇팔이었다. 나사와 캐나다는 1974년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로봇팔 개발을 본격화했다. SPAR Aerospace(현재 캐나담 기술을 보유한 우주기업 MDA의 전신)에 소속된 토론토대학교 항공우주연구소 연구팀이 캐나담의 수학적 매커니즘 개발에 핵심 역할을 했다.
로봇팔은 가벼우면서도, 접었을 때 우주왕복선의 탑재물에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 부피가 작아야 했다. 또한 관절이 자유자재로 움직여 우주왕복선 인근 어디로든 팔 끝을 옮기고, 무중력 상황에서 우주왕복선에 가해지는 반작용 역시 최소화하도록 설계해야 했다.
캐나담, 우주에서 활약하며 몸값 상승
1981년 컬럼비아호에 설치돼 첫 테스트를 마친 캐나담(캐나담1)은 나사 우주왕복선 5기(챌린저, 디스커버리, 아틀란티스, 엔데버 등)에 설치돼 90회 이상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중량 410㎏, 길이 15m, 지름 33㎝의 작은 크기지만 중력이 거의 없는 저궤도에서 최대 26만 6,000㎏까지 들어올릴 수 있었고, 전력은 차를 끓이는 것보다도 적게 들었다.
캐나담은 우주왕복선의 적재물을 옮기고 위성에서 발생한 고장을 수리하는 데 사용됐다. 1985년에는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에서 방출된 인공위성이 작동하지 않자 로봇팔로 위성을 다시 회수, 고장을 수리한 뒤 정상 궤도에 진입시키기도 했다. 나사에 따르면 로봇팔은 0.15㎝의 틈에 못을 박을 수 있을 정도로 정밀했다. 캐나담을 처음 우주에서 조종한 우주비행사 조 엔글은 "매우 직관적이어서 내 팔을 확장한 것 같았다"고 평가했다.
캐나담 활약의 하이라이트는 허블망원경 수리다. 이 수리는 영화 '그래비티'(2013년)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대기권 밖 지구 저궤도에서 우주의 모습을 찍는 허블망원경은 총 47억 달러를 들인 나사의 회심작이었지만, 1990년 4월 발사 직후 광학장치 문제로 뿌연 화면만을 송출해 "돈낭비"라는 질타를 받았다. 그러자 나사는 우주왕복선을 올려 망원경을 수리했고, 수차례 업그레이드를 통해 기능을 향상시켰다. 그 때마다 캐나담은 무거운 장비를 옮기고 우주비행사가 세부 수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지대를 제공하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주왕복선 결함 수리에도 활용됐다. 1984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의 귀환을 앞두고 우주선 밑바닥 환기구 구멍에 생긴 얼음을 제거해 사고를 막았다. 2003년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가 귀환 도중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난 뒤로는, 캐나담에 카메라와 레이저 측정 장비를 부착해 귀환 전 기체 점검을 의무화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필요한 탑재물을 나르고 건설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ISS에 설치된 새로운 캐나담(캐나담2)이 우주왕복선의 캐나담1에게 탑재물을 건네받는 장면은 지금도 '우주에서의 악수'라는 이름으로 회자된다.
2001년 ISS에 설치된 캐나담2는 길이 17m, 무게 1,497㎏으로 ISS에 깔린 레일을 따라 움직일 수 있다. 각 관절마다 270도 회전이 가능하도록 자유도가 향상됐고, 미국과 캐나다의 지상국에서도 원격 조정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특히 캐나담2에는 덱스터(Dextre)라고 불리는 로봇손이 장착됐는데, 이를 이용하면 우주공간에 직접 우주비행사가 나갈 필요없이 ISS 수리 등 정밀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ISS로 배달된 화물운송선을 우주 공간에서 붙잡아 ISS에 도킹시키는 것도 캐나담2와 덱스터의 주요 임무다.
로봇팔 캐나다, 우주산업을 이끌다
우주왕복선 사업에서 시작된 캐나담은, ISS를 거치며 우주 건설과 수송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캐나다 우주개발 전체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입소스가 2018년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캐나다 국민들의 92%는 캐나담을 자랑스러워하며 85%는 달 탐사에서도 역할을 이어가야 한다고 답했다.
캐나다가 우주전담기관인 캐나다우주국(CSA)을 만들게 된 계기도 캐나담이었다. 미국이 1985년 ISS 건설을 발표하자, 캐나다는 더 이상 국립연구위원회(NRC)나 개별 기업 차원에서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1989년 CSA를 설립해 캐나담2 개발을 지원했다.
캐나다 우주비행사들도 캐나담을 통해 배출됐다. 우주왕복선 프로젝트에서 캐나담의 역할이 커지자, 나사는 우주왕복선에 캐나다 우주비행사를 참여시켰다. 캐나다 첫 우주인 마크 가르노, 캐나다 첫 여성우주인 로베르타 본다가 우주왕복선을 타고 우주에 갔다. 크리스 해드필드는 우주왕복선을 타고 ISS에 캐나담2를 설치하는 임무를 맡았고, 이후 캐나담2 운영 등을 맡으며 ISS 사령관까지 지낸다.
우주정거장 건설에서 캐나담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나사가 아르테미스 계획을 본격화하기 전 가장 먼저 캐나다의 확답을 받고자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핵심은 달 궤도 우주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 건설이다. 달 유인기지 건설을 위해선 수시로 달 표면을 오가야 하는데, 유인 달착륙은 지금까지 성공한 나라가 미국 밖에 없을 정도로 어려운 미션이다. 나사는 아르테미스 계획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지구에서 달 궤도를 오가는 '달 우주선' △달 궤도와 달 표면을 오가는 '달 착륙선'을 분리해 운용하기로 했는데, 이를 위해선 달 궤도 우주정거장이 필수적이다. 그 우주정거장 건설하고 보수하려면 캐나담이 없어서는 안 된다.
나사와의 협상 끝에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2019년 3월 "14억 달러를 투자해 캐나담3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캐나다는 2024년 예정인 아르테미스 2호 발사에서 우주비행사 티켓을 확보했다. 우주비행사가 달 궤도로 가는 것은 미국 외에는 이번이 처음이다. 발사체 중심의 우주경쟁에서 뒤처져 있는 듯 보였던 캐나다는, 로봇팔이라는 틈새기술로 우주 국제협력의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가 됐다.
한국도 대체불가 '독자기술' 가져야
미국마저 가지지 못한 핵심 기술을 무기로 나사의 당당한 파트너가 된 캐나다의 경험은 한국에도 많은 교훈을 준다. 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우주경쟁에 본격 뛰어든 한국은 국제협력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1일 정부는 최상위 법정계획을 통해 '아르테미스'는 물론 '루나 게이트웨이 구축' '우주인 임무 수행' 등 참가를 명시했다. 아직 격차가 큰 발사체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내 우주 전문가들은 인류 우주활동이 지구 궤도에서 달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지구 궤도와 달은 비슷해 보이지만 매우 다른 환경이다. 우주방사선으로부터 지구자기장의 보호를 받는 ISS와 달리, 달 궤도를 비롯한 우주에선 우주선이나 구조물이 태양풍, 고에너지입자, 방사능 등에 직접 노출된다. 더 확실한 방사능 차단과 내구성이 필요하다. 또 우주비행사들이 더 오래 머물러야 한다. 그래서 우주 식물 재배, 단백질 섭취, 우주 불면증 해결, 심리나 건강 등 의학 연구와 관련한 기술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우주 방사능
독일 키엘대의 로버트 비머-슈바인그루버 교수 연구팀이 중국의 달 착륙선 창어 4호의 방사선 측정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주인은 태양풍 등 강한 태양활동이 없을 때에도 하루 평균 1.368밀리시버트의 우주 방사선에 노출된다. 지구 일반인에게 허용된 연간 허용치 방사선(한국 기준 연간 1밀리시버트)를 하루에 다 받는 것으로, ISS와 비교해도 2.6배 높은 수준이다.
대체불가 '틈새기술' 확보하려면, 모든 부처 힘을 합쳐야
이런 영역에서 한국이 대체불가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면, 아르테미스는 물론이고 이후 이어질 화성 탐사 국제협력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 반도체, 제조업 등 한국이 이미 가지고 있는 우수한 기술을 우주에 적용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주정거장 모듈 개발·제공 방식으로 루나 게이트웨이에 가면 좋겠지만, 이런 방식은 수천억 원의 투자가 필요하고 ISS 참여국을 중심으로 한 진입장벽도 높다"며 "달 유인임무가 확대되면서 생겨난 새로운 분야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주 임무의 장소가 지구궤도에서 달로 이동하면서 사람이 버티는 게 중요해졌다"며 "최고의 인재들이 몰린 한국의 의학 인프라를 이용하면 새롭고 대체 불가능한 국제협력 분야를 발굴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달 기지를 유지하려면, 우주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전 분야가 포함된 별도의 우주경제 체제가 필요하다. 발사체와 위성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특정 부처 한 곳에서 주도하는 우주개발만 계획으로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담아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 우주 관련 연구원은 "과학 담당 부처가 전적으로 우주계획 입안을 하면 발사체 위성 개발에 비해 우주농업, 의학, 바이오 등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며 "새로 만들어질 우주 거버넌스에선 모든 부처가 적극적으로 사업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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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나사, 독립성ㆍ전문성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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