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서 숨진 모녀 집 앞엔 5개월치 ‘전기료 독촉장’이...
서울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모녀가 나란히 숨진 채 발견돼 25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모녀는 생활고를 겪고 있었지만 지자체에 알리지 않아 기초생활수급자에 해당되지 않았고, 보건복지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이었지만 실거주지와 주민등록상 주소가 달라 지자체에서는 이들의 소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9일 탈북민이 백골시신으로 발견됐고, 지난 8월엔 수원에서 세모녀가 생활고로 사망한 바 있다.
이날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26㎡(약 8평)짜리 원룸에서 어머니 채모(65)씨와 딸 김모(36)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집주인은 월세가 계속 밀리는 모녀와 연락이 닿지 않자 직접 집에 찾아갔지만 인기척이 없어 경찰에 “세입자가 사망한 것 같다”고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모녀가 생활고를 겪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녀가 사는 집 현관에는 5개월 치 전기료 9만2000원의 연체를 알리는 9월자 독촉고지서가 붙어있었고, 월세가 밀려 퇴거를 요구하는 집주인의 편지도 붙어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모녀는 지난해 11월 집주인과 임차계약을 한 뒤 10개월간 월세가 밀려 보증금이 모두 공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어머니 채씨는 공무원 출신으로 월 연금으로 200만원 이상을 받고 있었지만 카드값과 월세 등 어느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던 것으로 경찰은 전했다.
지자체에 따르면 모녀는 서대문구에 거주했지만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광진구로 돼있었다. 이들은 올해 7월 기준 건강보험료 16개월, 5개월 치 통신비 15만원이 밀려있었다. 서대문구로 이사 오기 전부터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이다. 이에 지난 8월 보건복지부는 이들의 생활고를 인지하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에 포함시켰다.
이에 광진구는 모녀를 찾기 위해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찾아갔지만 다른 가정이 살고 있었고, 경기도에 사는 채씨의 남편에게 거주지를 물었더니 “아내와 별거 중이고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한다. 서대문구 역시 모녀가 이사를 온 후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 바람에 위기 가구 관리 대상에 포함시키지 못했다.
지자체에서는 모녀가 전입 신고를 하지 않아 이들의 생활고를 파악하기 어려웠고, 생활고를 겪는다는 표시를 하지 않아 지원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당사자의 신청에 의하여 복지가 시작된다는 ‘신청주의’의 허점이 다시 드러난 대목이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달 19일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던 탈북민 김모(49)씨가 백골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파트 임차료를 낸 것은 2020년 11월이었다. 일각에서는 사망 후 1~2년은 방치됐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안 양천구는 작년부터 총 5차례 김씨 집을 찾아갔지만 기척이 없어 복지 지원을 신청하라는 우편을 보냈다고 한다.
지난 8월 경기 수원시에서 생활고에 극단적 선택을 한 세 모녀의 사례 역시 이번 사건과 비슷하다. 세 모녀의 집 안에서는 “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하지만 이들은 특별한 직업도 없었고 각종 빚에 시달렸지만 복지 서비스를 신청한 적이 없었다. 지자체 관계자 역시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제 주거지가 달라 거소가 확인되지 않으면 지원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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