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도전, 너무 감사해”…공사 현장에 피어난 2030 여성 청년들 [주말엔]
KBS [주말엔] 취재진은 공사현장에 일하고 있는 2030 여성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속내를 들어봤습니다.
자신의 일에 전문성과 자부심을 갖고 도전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 “젊은 처자가 왜 이런 힘든 일을 해?”
건설·시공 현장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은 호기심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여자가 왜?’라는 질문이 줄곧 따라다니죠.
‘전동 드릴’, ‘원형 톱’, ‘그라인더’ 등 거칠고 위험한 장비를 다루는 젊은이가 아직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탓일까요?
현장에선 따가운 시선과 미묘하게 날 선 반응이 이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직업관에 흔들림이란 없었습니다.
오히려 고정관념과 싸우며 ‘실력’으로 인정받아 자신의 직업 가치를 이어갑니다.
젊음과 패기, 그리고 열정으로 도전에 나선 ‘2030 청년’ 김연서(21), 박소정(35) 씨.
‘험한 일’이라는 편견을 넘어 ‘노력에 따른 고수입’, ‘유연한 근무 환경’이라는 실리를 쫓아 개인사업자로서 건설·시공 현장에 뛰어든 두 청년입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길에 첫발을 내딛는 것은 두 청년에게도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주변에서 ‘길이 아니다’라고 말해도 묵묵히 확신의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그들만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 “이 나이에 도전, 너무 감사하게 생각”
‘방충망 요정'이라고 불리는 김연서 씨는 수도권을 누비며 아파트 주택 등 방충망 관련 설치, 시공, 철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은 체구에 앳된 얼굴.
영락없는 20대 초반의 모습이지만, 시종일관 차분함을 유지하면서도 내뱉는 말끝에서 깊은 내공과 강단이 느껴졌습니다.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시공 사업에 뛰어든 것은 그녀에게도 큰 도전이었습니다.
건축 관련 학과를 다니던 것도 아니었고, 관련 일을 한 경험은 전혀 없습니다.
이 직업의 어떤 면이 그를 매료시킨 걸까요?
"젊은 여자가 공구를 다루면서 이렇게 방충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신비롭잖아요."
“공구 다루는 재미에 좀 많이 들려서 ‘이렇게 다루면 이렇게도 되네’ 하는 그런 성취감도 있고, 고객분들이 ‘여자분 대단하다’ 하실 때 너무 뿌듯해요."
“제 나이(2003년 생)가 많이 어리잖아요. 어린데도 불구하고 40~50대 작업자분들이 어렵게 해내시는 걸 ‘나도 해냈다’라는 성취감 덕분에 너무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연서 씨는 ‘여자가 공구를 다루면 어떨까?’에서 생긴 호기심에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막상 공구를 직접 다뤄보니, 스스로 무엇인가 만들어 냈다는 뿌듯함이 점차 이 직업의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멋지게 일을 해내고 능력을 인정받으며 가능성을 봤습니다.
오히려 20대만이 할 수 있는 마케팅, 젊은 시선,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계획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여성이라서', '나이가 어려서' 같은, 도전하기 전에 들었던 걱정들을 이겨내고 끝내 성취감으로 바꾼 것입니다.
차별화된 시각은 꽤 괜찮은 수입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올해 6~7월 기준, 월 매출 1,000만 원가량. 순수익률은 매출의 70~80%입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이 길에 후회는 단 한 점도 없다고 말합니다.
후회보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취재진에게 드러냈습니다.
누군가는 ‘막노동’이라고 치부하는 일이 그에겐 ‘자부심’으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 “처음엔 두렵죠, 근데 도전 안 하면 제자리예요.”
아버지의 걱정과 만류도 있었지만, 연서 씨는 이 일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대학 다니던 딸이 학교 그만두고 높은데 올라가서 자기 키보다 훨씬 큰 방충망을 설치하는 일을 한다고 하니, 딸 걱정하는 아버지 마음이 십분 이해됐습니다.
어머니 역시 딸의 안전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녀의 거침 없는 도전을 응원했습니다.
“엄마는 항상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것도 해봐.’ ‘저것도 해 봐.’ ‘이것도 해봐.’ 저를 믿고 밀어주셔서 원동력을 많이 얻어요.”
어머니의 응원 덕분인지, 연서 씨의 사업은 이제 어느덧 자리를 잡게 되었고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연서 씨는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장밋빛 미래나 환상만을 좇은 건 아니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래도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혹여 이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과정에서 분명히 얻는 것이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전을 안 하면 솔직히 제 자리잖아요. 도전에 너무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경험들이고 나중에는 어느 방향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실행력을 바탕으로 꾸준하게만 한다면 뭐든지 다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집에 빚이 19억 원...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
박소정(35) 씨는 상황이 조금 더 급박했습니다.
30여 년 동안 직업전문학교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2020년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소정 씨는 아버지를 대신해 학교 운영을 떠맡게 됐습니다.
학과를 늘리며 사업을 확장하던 상태에서 아버지는 병환으로 사회적 활동이 힘들어졌고, 뒤이어 들이닥친 코로나19로 설상가상 수강생들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운영난은 점차 심해졌고 집안의 가장 역할을 맡게 된 소정 씨는 어머니와 다시 일어서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19억 원이란 큰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경주에서 직업학교 운영을 하다가(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제가 창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발등에 불 떨어진 그런 상황이었어요.”
소정 씨는 직업전문학교에서 쌓아둔 인적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본인이 직접 인테리어 사업을 해보기로 결심합니다.
각종 실내 건축 시공 분야에 일하는 직업전문학교 수료생에게 조언을 구하고 직접 현장에 가서 인테리어 사업에 필요한 작업을 배우기로 한 것입니다.
도배부터 시작해 시공 기술을 하나하나 배우면서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홀로서기에 도전했습니다.
■ “절망적이라고 생각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었어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없었습니다.
아니, 원망할 시간도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기 위해선 철거, 목공, 타일, 설비, 페인트, 바닥 시공 등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기울어진 가세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시간을 허투루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돈도 중요하지만, 저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창업을 준비할 때) 제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시간을 잘 보내면) 결국 더 큰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절망적이라고 생각해 봤자 크게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도전 실패할까 봐 두려울 수 있는데 그걸 깨고 가면 얻는 게 너무 많아요.”
소정 씨는 시간을 쪼개가며 매일 다른 현장을 수없이 돌았습니다.
현장에서 몸으로 기술을 익히고 가슴속 깊은 곳에 인테리어 사업에 대한 꿈을 점차 키워나갔습니다.
결국 올해 본인의 이름을 건 인테리어 회사를 서울에 차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소정 씨의 겉모습만 보고 의아해하는 시선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별을 뛰어넘는 '전문성'으로 승부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습니다.
■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두 청년에게 잘 어울리는 글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남들과 조금은 다른 길에서 답을 찾았던 두 청년.
각자 목표한 바를 이루는 것을 보면 모두 적극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결과인 듯합니다.
두 청년의 모든 행동 앞에는 거창하진 않지만 뚜렷한 목표의식과 단호한 결정이 있었고, 그 결정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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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경 기자 (vie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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