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와 전면전’ 불가피…힘 붙은 한, 윤과 파워게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0·16 재보궐선거라는 ‘예비고사’를 무사히 통과했다.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에서 승리해 당의 텃밭을 지켰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야권에 참패하며 모양새를 구긴 때와는 달랐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이 후보 단일화로 나오자 6번이나 부산 방문을 하는 등 공을 들인 끝에 이룬 성과다. 친한계(친 한동훈계)가 ‘이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승부도 해볼 만하다’고 장담할 정도로 사기도 올랐다. 하지만 선거 이후 그에게는 절체절명의 승부가 하나 더 남아 있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와의 정면 대결이다. 이제는 상대를 밀어내지 않으면 자신이 밀려나야 하는 권력 게임이 돼버렸다. 과연 이 싸움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가.
여의도 정가는 재보선 다음날인 지난 10월 17일 아침, 유독 한 대표의 일성을 주목했다. 재보선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한 대표가 한 걸음 전진할지, 아니면 한 걸음 양보할지 엇갈린 예측이 나왔다. 이날 최고위원 회의에서 한 대표는 예상 밖으로 김 여사와 관련해 인적 쇄신, 대외활동 중단 외에 ‘의혹 규명 절차 필요’라는 강경 카드를 꺼냈다.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아침에는 검찰이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앞서 한 대표는 재보선 과정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을 검찰에 요구했다. 검찰 불기소는 한 대표의 요구와는 거리가 있는 결정이다.
한 대표, ‘김건희 결단’ 해야 할 순간 와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은 재보선을 전후해 눈덩이처럼 커졌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총선 개입 의혹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가 공개한, ‘무식한 우리 오빠’ 등을 운운한 김 여사와 카카오톡 대화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명씨는 추가 공개를 벼르고 있다. 한 대표는 이번 선거를 ‘구태 정치 쇄신과 변화의 명령’으로 규정한 후 명씨 논란과 관련해 “사법절차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민주당은 10월 17일 아침 앞서 두 번이나 국회 본회의 재의결에서 부결된 김건희 특검법을 재발의했다. 이번 특검법에는 수사 대상에 명씨 관련 의혹을 추가했다. 기존 특검법에서는 수사 대상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명품가방 수수 의혹 등 8가지였는데 여기에 명씨 관련 의혹, 검찰의 김 여사 봐주기 의혹, 김 여사 선거 공천 개입 의혹이 더해져 총 13가지로 늘어났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오는 이유다. 친한파에 속하는 한 관계자는 “용산 대통령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 재보선이 한 대표의 정치 인생에서 분기점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정치평론가)는 “김 여사 이슈는 이미 한 대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돼버렸다”며 “한 대표가 어떻게든 결단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김건희 쓰나미’와 ‘명태균 쓰나미’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여권 권력의 무게추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여의도 국민의힘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보선을 계기로 윤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용산 대통령실이 차기 예비 대권주자인 한 대표에게 권력의 열쇠를 순순히 물려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지금은 한 대표·김 여사의 힘이 양립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명씨가 얽힌 김 여사 의혹이 너무 커져버렸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명씨를 둘러싼 한 대표·김 여사 권력투쟁 양상이 예사롭지 않다고 설명했다. 홍 소장은 “무협지로 비유하자면 강호 고수들이 최소한의 도의를 지켜가며 대결을 벌여야 하는데, 그 대결의 수준과 질이 많이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보수 측에서는 이 싸움을 말릴 리더도, 킹 메이커도 보이지 않는 점이 뼈아프다. 홍 소장은 “누가 이겨도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서 당의 명운조차 위태로울 정도”라고 말했다. 설혹 한 대표가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레임덕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그 과정에서 온갖 추문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명씨 같은 인사들이 김 여사를 끼고 각종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나온 이상, 폭로의 끝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씨 사건을 두고 당내 한 인사는 “어떻게 당이 2류도 아닌 3류, 4류의 입을 쳐다봐야 하는 상황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벌써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친윤계와 친한계의 암투가 시작됐다. 친윤계인 권성동 의원은 10월 17일 “전통적으로 우리 당의 텃밭”이라며 금정구청장 선거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런 목소리는 그리 크게 나오지 않고 있다. 한 인사의 표현처럼 “그 많던 친윤계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주윤야한’(낮에는 친윤, 밤에는 친한)이 ‘주한야윤’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친윤계와 친한계의 본격적인 대결은 조만간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독대하고 난 뒤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 대표가 김 여사 사건과 관련해 내건 3가지 조건을 하나로 묶어 대통령실에서 ‘제2부속실 신설’ 수준으로 마무리할 가능성이 있다. 김 교수는 “아마 용산은 이 수준으로 마무리하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러면 한 대표와 김 여사의 대결은 전면전으로 격화된다. 나머지 다른 가능성은 딱 한 가지 남아 있다. 한 대표가 김 여사와의 전면전 대신 장기전을 선택하는 길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한 대표의 정치 스타일은 지금까지 늘 치고 빠지는 방식을 구사해왔다”면서 “시간이 흐르면 자동으로 본인에게 유리해지는 국면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둘러 전면전으로 확대하는 방식을 상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전당대회 국면에서 한 대표는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3자 추천 특검’이라는 획기적인 제안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전대 승리 후 이 주장은 쑥 들어가고, 야권의 3자 추천 특검법을 여러 이유를 들어 정면으로 반대했다. 다만 재보선 결과 후 김 여사 관련해 ‘의혹 규명 절차’를 추가한 것이 다를 뿐이다. 엄 소장의 예견에는 전제가 있다. 한 대표가 내건 3가지 조건 중 윤 대통령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플랜B를 내놓는 것이다. 엄 소장은 “한 대표가 앞장서서 김 여사 특검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 무리”라면서 “한 대표의 요구는 야권의 특검 추진을 누그러뜨리는 대안을 윤 대통령이 얼른 내놓으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권력 싸움 열쇠는 윤 대통령이 쥐고 있어
3가지 조건을 내놓고 플랜B 정도에서 국민을 설득하려는 한 대표와 어떻게든 김 여사를 보호하고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윤 대통령 사이에 힘겨루기가 이미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권성동 의원은 10월 17일 “친한(계)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이라며 공개적인 비판보다 설득을 주문했다. 그렇지만 한 대표가 과연 윤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결국 권력 싸움의 열쇠는 윤 대통령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보수층의 생각이다. 이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같은 보수 성향 언론은 김 여사 의혹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윤 대통령에게 ‘국가냐, 아내냐’라는 선택을 요구하는 칼럼이 실리기도 했다. 홍 소장은 “원래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보수층의 의중은 한 대표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붙어 승리하고, 추후에 김 여사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명씨 사건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국면은 급변했다”고 해석했다. 오는 11월 이 대표의 1심 판결이 나오기 전에 김 여사의 의혹이 너무 커져버리자, ‘선(先)이재명, 후(後)김건희’의 순서가 ‘선김건희, 후이재명’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엄 소장은 “보수층은 대부분 전면전을 원하지 않는다”며 “지금은 윤 대통령도 돕고, 한 대표에게 주도권을 주는 일정 부분의 권력 분립을 바랄 것”이라고 해석했다. 때문에 적절한 수준에서 보수층을 납득시킬 수 있는 의혹 해명 수순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나마 보수층에서는 김 여사 의혹 파장을 잠시나마 피해나갈 수 있는 11월 정치 국면을 기대하고 있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이 김 여사 의혹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엄 소장은 “이번 재보선을 보면 호남 두 지역(전남 영광·곡성)에서 승리한 이 대표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면서 “결국 11월 1심 판결도 이 대표의 입지를 변화시킬 만큼의 파괴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여야 정치 지형이 큰 변화 없이 한 대표 대 이 대표의 대결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재보선에서 한 대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일전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각종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대표의 적수로는 검사 출신인 한 대표가 적합하다는 점을 텃밭인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에서 보수층에게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한 대표는 자동으로 김 여사를 누르고 여권의 권력을 움켜쥘 기회를 갖게 됐다. 김 교수는 “이번 재보선에서 이 대표와 한 대표가 서로 텃밭 싸움에서 승리하고, 중원에서 정면으로 붙을 수 있음을 과시했다”면서 “서로가 상대편의 존재가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적대적 공생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적수로 한 대표가 적당하고, 한 대표의 적수로 이 대표가 알맞은 상황으로 여길 수 있는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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