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저스의 변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SNS, FOX 뉴스 SNS

일본에서 인기 감독이 된 데이브 로버츠

그야말로 꿀이 뚝뚝 떨어진다. 요즘 일본 언론이 다저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

왜 아니겠나. 영웅 오타니 쇼헤이가 몸담은 팀이다. 그것도 10년짜리 계약이다. 그들의 표현대로 ‘평생 다저스맨’이 된 것이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다. NPB 최고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도 동행하게 됐다. 그 역시 12년짜리 계약이다.

지극한 관심은 당연하다. 다저스 소식 하나하나가 지상 중계된다. 마이너리그 투수(캔달 윌리엄스)의 사진 한 장에 열광한다. 많이 본 뉴스 랭킹에 오를 정도다. 물론 혼자가 아니다. 이도류와 함께 찍은 투 샷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인기도 하늘을 찌른다. 어머니가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강호 다저스를 이끄는 명장으로 소개된다. VVIP의 영입 과정에서도 화제가 됐다. 만났다는 사실을 공개해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비밀 유지 협약을 어겼다는 이유다.

하지만 일본 매체들은 호평 일색이었다. ‘여러 구단의 많은 관계자 중에 유일하게 (만남을) 숨기지 않았다. 일본인 특유의 정직함이 DNA에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었다. 심지어 호칭도 따진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쇼헤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성(姓)이 아닌 이름으로 친근함을 과시했다는 의미다.

야마모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세부적인 계약 내용이 알려지며 호응이 뜨겁다. 여기에 따르면 전담 통역, 트레이너, 물리치료사를 따로 고용한다. 원정 호텔에서는 스위트 룸을 잡아준다. 일본을 5회 왕복할 수 있는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매년 지급한다. 심지어 일본 음식을 항상 충분히 제공한다는 조건도 포함됐다. 친절하고, 세심한 배려라며 흡족한 모습이다.

LA 다저스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오타니 쇼헤이. 야후스포츠 SNS

일본을 향한 다저스의 ‘쇼 비즈니스’

물론 일방적인 투자는 없다. 다저스 쪽 계산기도 바쁘다. 거액을 들여 영입한 만큼 확실한 마케팅 효과를 기대한다. ‘쇼(헤이) 타임’을 완성해 줄 ‘쇼(SHO) 비즈니스’를 구상 중이다.

직접적인 것은 구장 광고다. 에인절 스타디움에 있던 것들이 상당수 이동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위치나 사이즈에 따라 다양한 가격대로 구성됐다. 대략 합산하면 경기당 100~200만 달러 정도로 평가된다. 이것만 연간 8000만~1억 6000만 달러에 이른다. 우리 돈으로 약 1050억 원~2100억 원이다.

여기에 관련 상품도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오타니 이름이 적힌 다저스 유니폼은 출시 48시간 판매량에서 역대 1위로 기록됐다. NFL(풋볼), NBA(농구) 같은 인기 종목을 망라해도 유례가 없을 정도다. 리오넬 메시가 MLS로 이적(인터 마이애미)할 당시의 주문량을 갱신했다.

일본 현지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미 많은 팬들이 ‘17번 다저스’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매장 역시 연일 붐비고 있다.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는 얘기다. 모자나 각종 기념품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오타니의 이적은 일본 증권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그를 광고 모델로 쓰거나 후원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화장품 브랜드 코세가 2.9%, 시계 회사 세이코 그룹은 2.6%, 은행 미쓰비시 UFJ는 1.9%의 오름세를 나타냈다. (발표 당일 기준)

간사이대학 경제학부 미야모토 가쓰히로 명예교수는 오타니의 다저스 이적으로 인한 경제 효과가 643억 엔(약 5825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LA 다저스 SNS

불편한 다저스의 ‘일본해’ 표기

일본에서는 벌써 개막전 유치 얘기도 나온다. 올해 파드리스가 고척 돔에서 치르는 첫 경기가 부러웠던 것 같다. 내년(2025년)에는 다저스가 도쿄 돔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특히 오타니가 재활을 마치고 이도류를 재개하는 시점이어서, 더욱 기대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우리에게는 불편한 소식도 있다. 지진 피해 지역에 구호금을 전달하는 과정의 일이다. 다저스는 오타니와 함께 1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성명을 통해 “다저스는 피해 복구 노력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생존자들을 조기 발견하기 위한 활동과 재해 지역의 회복을 돕기 위한 기부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여기에 일본해(Sea of Japan)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일본어 원문에는 공식 명칭인 ‘레이와 6년 노토반도 지진(令和6年能登半島地震)’이라고 돼 있다. 그런데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 ‘일본해 지진’이라고 바뀐 것이다.

우리에게는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저스는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기업이다. 특히 다수의 한국 선수들이 활약한 바 있다. 박찬호와 류현진을 위시해 최희섭, 서재응이 몸을 담았다. 국내 팬들은 ‘국저스’라고 부를 정도로 애착이 크다. 때문에 이런 부적절한 표기가 더 실망스럽다는 여론이다.

일본해(Sea of Japan)라는 표기가 나온 다저스의 영문 성명 LA 다저스 SNS

한일전이 될 NL 서부지구 라이벌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는 올 시즌 관심의 초점이다. 이제까지는 다저스의 독주나 다름없었다. 최근 11년간 10번이나 디비전 타이틀을 가져갔다. 게다가 올해는 전력이 더 강해졌다. FA 최대어 2명을 영입한 탓이다. 오타니와 야마모토다.

그렇다고 호락호락할 리 없다. 승부의 세계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다저스를 견제하는 지구 라이벌은 4팀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콜로라도 로키스다.

이 중 2팀에 한국 선수들이 포진했다. 자이언츠의 이정후와 파드리스의 김하성, 고우석이다. 우리에게는 피아 구분이 확실한 구도다. 상당수 게임은 한일전 매치업이 성립된다. 다저스-자이언츠, 다저스-파드리스는 각각 13게임씩을 치르는 일정이다.

가뜩이나 치열한 경쟁에 흥미 요소가 추가되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 팬들이 ‘비트 엘에이(Beat LA)’를 외치게 될 상황이다.

단, 하나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여전히 구직 활동 중인 류현진의 변수다. 그가 만약 친정 팀으로 복귀하게 되면 ‘국저스’는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