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미소녀 게임으로 불리던 서브컬처 게임은 이제 명실상부한 모바일 게임 시장의 대세 장르로 자리 잡았습니다. 장르 특성 상 게임에 깊은 애정을 가진 유저들이 대다수고, 그런 유저들의 마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저 친화적인 운영을 보여주는 게임이 많은지라 오랜 기간 서비스하는 게임도 적지 않거든요. 게다가 그 열성적인 유저풀을 노리고 새로운 게임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서브컬처 게임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인아크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1월 5일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에버소울'도 그런 전장에 출사표를 던진 게임 중 하나입니다. 높은 퀄리티의 3D 그래픽, 현대로부터 먼 미래이자 정령들이 살아가는 정령계라는 세계관 설정, 전략적인 전투 시스템, 정령과 교감하는 인연 시스템 등을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메인 스토리는 물론 정령별 인연 스토리까지 모두 풀 음성을 지원한다는 점은 서브컬처 게임 후발주자로서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듯했죠.
하지만 직접 플레이해 본 에버소울은 기자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게임이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게임의 첫인상 자체는 좋았습니다. 시작 화면에서부터 볼 수 있는 높은 퀄리티의 캐릭터 일러스트, 일러스트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3D 캐릭터 애니메이션, 실력파 성우들이 담당한 캐릭터들의 목소리까지. 예쁜 게임이라는 감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게임을 더 진행하다 보면 어색한 부분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먼저, 서브컬처 게임을 하다 보면 '최애캐'가 하나쯤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성능이나 외형, 목소리, 스토리에서의 활약 등 여러 요소가 겹쳐 '최애캐'를 정하게 되는데, 일단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는 성능과 외형, 목소리 등 겉으로 보이는 것을 토대로 '밀어주고 싶은 캐릭터'를 정하는 일이 많습니다.
에버소울은 일단 이 '밀어주고 싶은 캐릭터'가 보이지 않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모두 굉장히 예쁘지만, 그 내면에서 에버소울만의 매력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없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어디서 본 듯한 외형과 설정을 갖다 붙인 느낌이 드는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고, 어떤 캐릭터를 딱 봤을 때 '끌린다'는 느낌을 주는 게 없었습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저는 에버소울 정령들의 특징인 '기원'이 캐릭터 디자인에서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으로 봅니다. 에버소울의 세계는 현대로부터 머나먼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정령들은 오래된 '유물'에서 태어난 존재들인데, 정령의 기반이 된 유물을 '기원'이라 부릅니다. 게임의 메인 스토리는 구원자가 되어 정령과 함께 정령계를 지키는 게 목표지만, 정령들이 자기 자신의 기원을 찾는 이야기 역시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그런 설정의 게임이라고 하면, 캐릭터의 기원을 유추할 정보를 외형이나 캐릭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 설정에 뿌려 두고, 스토리나 게임 플레이를 통해 그 기원이 무엇인지 천천히 풀어나가는 걸 생각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떤 반전이 있지는 않을지 기대하는 게 재미있죠.
그런데 에버소울은 정령의 외형에서는 무엇을 기원으로 하는지 알기 어려운 건 둘째 치고, 정령 선택창에서는 각 정령이 무엇을 기원으로 하고 있는지 써 놨습니다. 정령이 장착하는 전용 장비 '유물'은 정령들의 기원을 그대로 가져왔고요. 이건 마치 나인아크가 "이 정령의 기원은 이 유물입니다. 외우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캐릭터의 매력을 주입하고 있는 셈이죠.
심지어 태생 에픽 등급이 아닌 정령은 별도의 기원이 설정되지 않습니다. 이는 메인 스토리에서 알 수 있는 게임의 설정과도 모순됩니다. 스토리에서 유리아는 '정령들은 오랫동안 사용한 소중한 물건인 유물에 영혼이 깃들어 탄생한다'라고 설명하는데, 커먼 등급과 레어 등급의 정령은 그럼 무엇인 걸까요? 인위적으로 만든 양산형 정령인가 싶기도 한데, 스토리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만이 인공 정령이라는 설명이 나오니 그런 것도 아니죠. 플레이에서의 취급이 소모품이라고 해도, 그 설정까지 무너뜨려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정리하면, 게임이 특징으로 내세운 세계관과 캐릭터가 제대로 맞물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이 캐릭터의 매력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서브컬처 게임에서 그저 예쁘기만 한 캐릭터는 한 트럭, 아니 수십 트럭은 있습니다. 유저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려면 세심한 디테일이 필수인데, 에버소울의 캐릭터들은 그런 디테일이 부족합니다. 김철희 디렉터는 출시 전 인터뷰에서 캐릭터에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했는데, 그게 외형 그 자체에만 그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다음으로 이야기할 것은 메인 스토리와 인연 스토리 등 스토리에서 유저인 '구원자'와 정령의 대화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정령들이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구원자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정인 만큼, 구원자가 정령들과 이야기하는 부분은 더욱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에서 구원자와 정령의 대화 파트에서는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구원자가 생각하는 묘사만 나왔는데 거기에 답변하거나, 단일 선택지가 나와 구원자가 어떤 식으로 말했는지 알려주거나, 정령이 혼자 구원자의 말을 되묻고 대답하거나 하는 등 구원자가 하는 말을 표현하는 방식이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캐릭터 별 특징을 살리기 위한 건가 싶기도 했는데, 메피스토펠레스의 인연 스토리를 진행하던 도중 저 방식이 전부 나오는 걸 보고 이건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은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이 역시 캐릭터의 매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됩니다. 캐릭터와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은데, 매끄럽지 못한 대화 진행에 흐름이 끊기니 짜증이 나죠.
풀 더빙까지 했으니 스킵을 전제로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개발사의 사정이야 어찌됐든 지금은 스토리를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한 번 싹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마지막으로 전투입니다. 나인아크는 전략성이 강한 턴제 RPG '영웅의 군단'을 만들었던 이들이 제작했는데, 에버소울의 전투도 간단하면서도 나름의 전략성을 확보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에버소울의 전투는 5명의 정령으로 파티를 꾸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때 진형에 따라 전열, 후열의 정령이 받는 버프가 달라지고, 파티에 구성하는 정령의 타입에 따라 보너스가 붙습니다. 스테이지의 적과 그 배치를 보고, 이를 효율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정령을 진형에 따라 배치하는 것이 전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투 자체는 자동으로 진행되지만, 캐릭터별 '메인 스킬'의 사용 타이밍과 전황에 따른 '얼티밋 스킬'의 선택 사용으로 전략성을 높였습니다. 타이밍이나 순서에 맞춰 사용해야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정령이 가진 스킬 효과를 숙지해두는 것도 중요했죠.
진형의 선택과 정령의 배치, 전투에서의 메인 스킬, 얼티밋 스킬 사용에 신경 쓰면 현재 파티보다 전투력이 높은 스테이지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메인 화면의 방주 메뉴의 '레벨 동기화'를 통해 5명의 정령에만 재화를 몰아 육성하면 새로 얻은 정령을 즉시 전력으로 채용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전투에서 활용 가능한 캐릭터 풀을 늘려주고, 클리어하지 못하는 스테이지에서도 좀 더 고민할 거리를 만들어주거든요.


다만, 여기서도 캐릭터의 매력을 살려줄 만한 연출에서는 아쉬움이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화려하고 퀄리티도 높지만, 좀 더 디테일을 살려주면 하는 부분이 보였으니까요. 대표적으로 이벤트를 통해 추가 코스튬을 제공하는 아이돌 콘셉트의 정령 '미카'와 '시하'입니다. 이 둘은 세트로 파티에 편성했을 때 메인 스킬과 패시브 스킬, 얼티밋 스킬에 추가 보너스가 생기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전투에서는 이 둘을 함께 편성한다고 해서 스킬 연출이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두 캐릭터가 스킬을 함께 사용한다는 콘셉트로 함께 움직인다든지, 얼티밋 스킬 연출에서는 협동 공연을 펼치는 식으로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어요. 정말 효과만 바뀝니다.
또, 게임에는 미카와 시하 외에도 인연이 되는 정령을 묶어 버프를 주는 '소울 링크'가 있는데요, 이 역시 전투에 함께 편성했을 때 특수 대사가 나온다든지, 연출이 조금씩 변하는 건 없었습니다. 성능이 좋지 않더라도 연출이나 콘셉트가 마음에 들어서 빠져드는 경우도 있는 만큼, 이 부분도 좀 더 신경써줬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전투 자체의 재미는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죠.



에버소울은 아예 플레이도 못할 정도로 나쁜 게임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이 즐기고 있는 서브컬처 게임과 병행하거나, 그 게임을 놓고 이쪽에 집중해야 할 정도로 매력적인 게임도 아닙니다. 좋게 말하면 누가 하든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인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게임인 것이죠.
그래도 요새는 출시가 게임의 끝이 아닌 시작이 되는 시대입니다. 게임 자체의 기반은 튼튼하니, 서브컬처 게임으로서의 매력을 좀 더 가꿔나가면 될 일이죠. 김철희 디렉터도 전면에 나서 유저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는 것도 좋은 신호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에버소울이 나중에는 지나가던 사람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매력적인 게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