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포스트시즌 신데렐라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다.
디트로이트는 정규시즌 8/10일까지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이 0.2%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31승13패를 질주하면서 극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올라갔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심지어 디트로이트도 시즌 중반 주축 선수들을 트레이드하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디트로이트의 기적은 가을에도 이어지고 있다. 디트로이트는 정규시즌 86승76패로 아메리칸리그 6번시드를 따냈다. 리그에서 가장 낮은 순번이었다. 그런데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전력상 우위에 있던 휴스턴을 꺾었다. 휴스턴은 지난 7년간 월드시리즈 우승 2회, 월드시리즈 진출 4회를 비롯해 7년 연속 챔피언십시리즈까지 진출한 '가을의 강호'였다.
디트로이트가 휴스턴을 떨어뜨린 건 '대파란'이었다. 아무리 정규시즌 막판에 치고 나갔다고 해도 휴스턴의 탈락은 충격이었다. 2014년 이후 10년 만의 가을 야구에서 심상치 않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에이스' 타릭 스쿠벌이 있다.
반전
스쿠벌은 아마추어 때부터 기대주였다. 그러나 대학 시절 토미존 수술을 받으면서 공백기가 길었다. 2018년 복귀 후 성적도 19경기 8승2패 평균자책점 4.16에 그쳤다. 80이닝 56볼넷으로, 9이닝 당 볼넷 수가 무려 6.3개였다. 그러면서 평가가 떨어졌고, 2018년 드래프트에서도 순번이 크게 밀렸다. 훗날 스쿠벌의 대학 감독은 "다들 보는 눈이 없다"고 말했다.
2018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는 다름아닌 디트로이트가 갖고 있었다. 그 해 디트로이트는 전체 1순위로 오번 대학교 우투수 케이시 마이즈를 지명했다. 마이즈는 전체 1순위를 감안하면 매우 아쉬운 모습(통산 9승19패 4.36).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9라운드에서 스쿠벌을 데려오는 엄청난 행운을 가지게 된다.
스쿠벌은 2020년 단축 시즌에 데뷔했다. 당시엔 미완의 대기였다(8경기 1승5패 5.63). 탈삼진 능력은 좋았지만, 선발로서 완성도가 떨어졌다.
스쿠벌은 디트로이트가 리빌딩을 하면서 꾸준하게 기회를 받았다. 하지만 잦은 부상으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급기야 2022년 8월에는 팔꿈치 수술로 이탈했다. 유망주로서 지위도 사라졌기 때문에 반등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스쿠벌은 약 1년 만에 돌아왔다. 2023년 첫 등판이 7월5일이었다. 오클랜드를 상대로 4이닝 6K 노히트를 기록했다. 실전 감각을 찾는 과정에서 흔들리기도 했지만, 9월 아메리칸리그 이달의 투수로 선정됐다. 최종 7승3패 평균자책점 2.80으로 2023시즌을 마쳤다.
스쿠벌은 세부지표에서 더 강점이 두드러졌다. 9이닝 당 탈삼진 수 11.43개, 볼넷 수가 1.57개였다. 특히 투수가 직접 관여하는 항목으로 계산된 FIP(수비 배제 평균자책점)에서 7월 이후 선발 1위였다. 그러다 보니 2024시즌 다크호스로 지목됐다.
2023시즌 7월 이후 선발 FIP 순위
2.00 - 타릭 스쿠벌
2.49 - 콜 레긴스
2.61 - 타일러 글래스나우
2.62 - 스펜서 스트라이더
정점
올해 스쿠벌은 디트로이트의 1선발로 출발했다. 더 강력해진 구위를 앞세워 타자들을 쓰러뜨렸다. 첫 13경기 성적은 8승1패 평균자책점 1.92. 이닝 당 출루 허용률 0.89는 리그에서 가장 낮았다. 사람들은 잊혀질 뻔 했던 유망주의 이름을 다시 되새기기 시작했다.
스쿠벌은 데뷔 후 첫 풀타임 시즌이었다. 한 시즌 개인 최다 이닝이 2021년 149.1이닝이었다.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6월 중순 휴스턴과 애틀랜타 원정에서 6.1이닝 4실점, 4이닝 5실점(4자책)으로 부진했지만, 슬럼프를 길게 가져가진 않았다. 6월 마지막 필라델피아전을 7이닝 무실점으로 마친 데 이어, 마지막 16경기를 10승1패 평균자책점 2.29로 마무리했다. 내구성과 체력에 대한 걱정을 불식시키는 활약이었다.
스쿠벌은 18승4패 평균자책점 2.39로 시즌을 끝마쳤다. 192이닝 228삼진을 기록하면서 다승과 평균자책점, 탈삼진 부문 아메리칸리그 1위를 차지했다. 2011년 저스틴 벌랜더 이후 13년 만에 나온 트리플 크라운 투수였다(2020년 셰인 비버는 60경기 시즌 제외). 참고로 스쿠벌은 양 리그 통합 트리플 크라운도 노려볼 수 있었는데, 크리스 세일(애틀랜타)이 9월말 이후 허리 부상으로 등판을 가지지 못하면서 평균자책점 2.38을 유지했다.
스쿠벌의 피칭은 내용도 훌륭했다. 9이닝 당 두 자릿수 탈삼진(10.69개)과 또 한 번 9이닝 당 볼넷 수가 2개가 넘지 않았다(1.64개). FIP 역시 2.49로 리그 1위에 오름으로써, 작년 7월 이후 피칭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데뷔 첫 올스타 투수로 선정된 스쿠벌은 사이영상 후보 0순위다. 콜 레긴스와 세스 루고(이상 캔자스시티) 코빈 번스(볼티모어) 로건 길버트(시애틀)가 경쟁자로 언급되지만, 스쿠벌과 몇 수 차이가 난다.
올해 스쿠벌은 리그에서 적수가 없었다. 아니, 스쿠벌이 팔꿈치 수술에서 돌아온 작년 7월 이후, 스쿠벌의 적수는 메이저리그에 존재하지 않았다.
작년 7월 이후 투수 승리기여도
9.1 - 타릭 스쿠벌
8.0 - 잭 윌러
7.3 - 콜 레긴스
7.3 - 로건 웹
7.2 - 크리스 세일
6.7 - 딜런 시즈
변화
스쿠벌은 완전히 달라졌다. 성적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모두 바뀌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은 도전이 오늘날의 스쿠벌을 만들었다.
포심 구위는 원래 뛰어났다. 매년 최고 구속 99마일 이상 찍었다. 팔꿈치 수술 전 2020-22년 최고 구속 99.8마일, 지난해 최고 구속은 99.2마일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평균 구속과 최고 구속이 모두 2마일 정도 상승했다. 평균 96.8마일, 최고 101.7마일을 기록했다.
지난 겨울 스쿠벌은 "투구 시 팔에 무리가 가는 부분을 없앴다"고 밝혔다. 셋업 중 몸을 살짝 감는 동작을 제거해 키킹이 이전보다 매끄러워졌고, 그 과정에서 글러브와 손의 위치도 머리에서 떨어뜨렸다(이미지 참고). 이후 공을 던지기 직전 왼팔과 오른팔을 좀 더 수평에 가깝게 가져가면서 더 강하게 던질 수 있는 힘을 마련했다. 현지 분석도 달라진 투구폼을 주목했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보완한 투구폼이 추가 구속을 안겨주자 자신감이 붙었다. 스쿠벌은 누구를 상대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 공을 믿게 되면서 가장 든든한 동료가 생겼다. 이는 부상 복귀 후 스트라이크 존을 더 공격적으로 공략하게 된 배경이다.
스트라이크 / 초구 스트라이크 비중
2021 [Str%] 64.8 [1st%] 63.9
2022 [Str%] 66.7 [1st%] 64.9
2023 [Str%] 69.4 [1st%] 62.6
2024 [Str%] 69.3 [1st%] 68.7
주무기도 발전했다. 데뷔 때부터 즐겨던진 체인지업 그립을 개조했다. 부상 이전에는 서클 체인지업 그립이었는데, 지금은 투심/싱커에 가까운 그립으로 던진다.
이 체인지업은 최신 트렌드가 접목된 공이다. 실밥을 이용해 공의 궤적을 변경하는 'Seam Shifted Wake(SSW)' 현상이 가미됐다. 물리 법칙에 의해 더 큰 움직임을 주는 방식으로, 디트로이트는 스쿠벌이 이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손에 쥔 체인지업은 우타자 바깥쪽으로 더 빠져나가면서 결정구 역할을 해주고 있다.
수술 이전/이후 체인지업 변화
[구속] 82.9 → 85.7마일
[비중] 13.7 → 26.2%
[헛스윙%] 45.9 → 47.3%
가을
진화한 스쿠벌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와일드카드 시리즈 1차전이 스쿠벌의 가을 데뷔전이었다. 그 경기에서 만만치 않은 휴스턴을 상대로 6이닝 6K 무실점 승리를 올렸다. 에이스 맞대결에서 승리한 디트로이트는 기세를 몰아 2차전까지 잡았다.
스쿠벌의 두 번째 경기는 디비전시리즈 2차전이었다. 이번에는 팀이 1차전을 내준 뒤에 나온 등판이었다. 첫 번째 등판만큼이나 부담이 컸다. 설상가상 클리블랜드는 이번 시즌 스쿠벌에게 한 경기 최다 피안타 10개를 안겨준 팀이었다.
스쿠벌은 대담했다. 그리고 대단했다. 1차전 7득점으로 타격감이 올라온 클리블랜드 타선을 7이닝 8K 무실점으로 잠재웠다. 두 차례 실점 위기는 병살타로 벗어났다. 주자가 있어도 스쿠벌은 타자를 공격했고, 그 피칭에 클리블랜드 타자들은 압도됐다.
스쿠벌은 포스트시즌에서 13이닝 연속 무실점 피칭을 이어갔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포스트시즌 데뷔 첫 두 경기에서 각각 6이닝 이상, 무실점을 기록한 6번째 투수다(1905년 크리스티 매튜슨, 1980-81년 조 니크로, 1981년 데이브 리케티, 1991년 스티브 에이버리, 2016년 코리 클루버). 디트로이트 투수로는 처음으로, 저스틴 벌랜더와 맥스 슈어저도 하지 못했다. 스쿠벌은 이러한 피칭을 선보인 비결로, "포수 제이크 로저스 덕분"이라고 말했다.
디트로이트는 선발진이 불안정하다. 스쿠벌을 제외하면 정상적으로 나올 수 있는 선발 투수가 마땅치 않다. 이에 스쿠벌은 긴 이닝을 책임지면서 불펜에 휴식을 줘야하는 모습도 필요했다. 포스트시즌 첫 두 경기에서는 그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디트로이트는 스쿠벌이 버텨주면서 시리즈 2차전을 신승했다. 3,4차전은 홈구장 코메리카파크에서 치른다. 만약 5차전까지 가게 될 경우 스쿠벌이 또 나오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디트로이트의 야구가 계속 되는 한, 스쿠벌의 야구도 끝나지 않는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