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는 통역도 금값…추정 연봉 9억원 미즈하라 잇페이
“아내보다 쇼헤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죠”
오타니 쇼헤이의 미국 첫해다. 그러니까 2018년 2월의 일이다. 스프링캠프의 사진 한 장이 화제였다. 떠오르는 스타의 출근 장면이다. 일본의 한 매체가 이런 제목을 달았다. ‘오타니의 통근차는 200만 엔(약 2200만 원)짜리 한국산 세단.’
멋진 수퍼카가 아니었다. 23살 청년의 소박함이다. 몇몇 일본 팬들은 자존심도 상한다. 자동차 하면 일본 아닌가. 세계적인 브랜드도 여럿이다. 그걸 놔두고 한국 차라니…. 이를 본 우리 커뮤니티에도 불꽃이 튀긴다. ‘쏘나타가 어때서’ ‘폼 나는 중형차가 왜’ ‘오타니에게는 엄연히 외제 차’. 그런 댓글들이다.
그러나 오해다. 자기 차가 아니었다. 캠프 기간만 쓰려고 렌트한 것이다. 리스 계약 주체도 본인이 아닐 것이다. 사진을 보시라. 내리는 위치도 조수석 쪽이다. 당사자는 (일본, 미국 모두) 운전면허도 없던 시절이다.
운전석의 주인공은 에인절스 구단 스태프다. 통역 담당 일본인 직원, 미즈하라 잇페이라는 이름이다. 둘은 10살 차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5년째 동행을 이어간다.
일본 매스컴은 그를 ‘10도류’라고 부른다. 이도류의 5배쯤 된다. 그만큼 역할이 많다. 통역은 기본이다. 그 외에도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 한다. 운전, 보디 가드, 캐치볼 상대, 훈련 보조, 컨디션 체크, 미디어 관리, 말벗, 밥 친구, 로드 매니저….
결혼 4년 차다. 아직 신혼인 그의 고백이다. “아내보다 쇼헤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훨씬 많죠.”
클럽하우스 옆자리에 온 18살 까까머리
일본 홋카이도 태생이다. 6살 때 미국으로 떠났다. 일식 요리사인 아버지를 따라서다. 성장한 곳은 LA다. 당시는 노모 히데오가 뜨겁던 시절이다. 그 역시 MLB에 심취했다. 고교 때는 축구부, 농구부에서 뛰었다. 대학은 UC 리버사이드를 다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첫 직장이 뉴욕 양키스(2012년)다. 투수 오카지마 히데키의 통역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오카지마가) 피지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계약이 무산된 것이다. 결국 원래 소속팀인 (홋카이도) 니혼햄으로 복귀하게 됐다. 그러면서 미즈하라를 안고 갔다. 어릴 때 떠난 고향으로 돌아간 셈이다.
업무는 비슷하다. 외국인 선수 담당이다. 그 당시의 평가다. “(자기 선수에게) 연락이 오면 언제, 어디서든 곧바로 달려간다.” 선수는 물론, 그 가족들의 사소한 것까지 모두 챙겨준다. 그러면서 두루두루 호감을 얻었다. 다른 일본인 선수, 기자들에게도 호평 일색이다.
그렇게 새 직장에 익숙해질 무렵이다. 까까머리 신인 하나가 입단했다. 18살의 오타니다. 하필이면 외국인 선수 옆자리에 라커를 받았다. 미국에 대해, MLB에 대해. 유난히 궁금한 것이 많던 시절이다. 얘기를 전해주며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몇 년이 지났다. 2017년 말이다. 이도류가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 당연히 혼자는 어렵다.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옆자리 형에게 간곡하게 청한다. “같이 가면 좋겠어요.” 감히 누구 부탁이라고. 이미 월드 스타급이다. 레드 카펫이 펼쳐진 길 아닌가. 망설일 게 뭐 있겠나. 흔쾌히 OK다. 마침 잘 아는 동네다. LA로 가게 됐다.
통역 형 아버지가 일하는 식당의 단골 손님
대스타와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특별하다. 여기에 가족 여럿이 연관됐다면 더 그럴 것이다.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다. 미즈하라(水原) 집안이 그렇다. 통역하는 아들 잇페이(一平)의 아버지 에이마사(英政ㆍ63)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고교 시절 LA에서 유학했다. 이때 야구팀에서 활약했다. 7이닝에 삼진 17개를 잡아낼 정도로 대단한 투수였다. LA타임스에도 보도됐다는 자랑이다. 부상 탓에 일찍 공을 놨다. 이민 생활 때는 일식당 셰프였다.
지금 일하는 곳은 고급 이자카야(선술집)다. LA 인근 코스타메사라는 도시에 있다. 오타니의 집(애너하임)에서 차로 15분 거리다.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아들의 고객도 여기는 못 참는다. 자주 목격되는 단골집이다. 주방장 추천 메뉴를 즐기기도 하고, 한 아름 테이크아웃을 해가기도 한다.
벤클 한복판의 ‘오타니 일병 구하기’
아무리 주목받는 선수라도 그렇다. 초창기에는 힘들다. 동료들과 섞이기 어렵다.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다. 약간은 시샘하는 눈길도 느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이봐, 쇼헤이 군. 게임 좋아해? 이거 다운 받아서 한 번 해봐.” 통역 형이 권한다. 핸드폰 게임이다. 그런 거 많이 하면 시력에 안 좋은데…. 갸웃거리면서도 했다. 나중에 보니 다른 선수들이 많이 하는 앱이다. 함께 할 얘깃거리를 만들어서, 빨리 가까워지라는 깊은 뜻이었다. 덕분에 클럽하우스에서 어색함이 한결 줄었다.
가장 힘든 일은 미디어 관계다. 엄청 잘 나가는 스타 아닌가. 미국과 일본, 온갖 매체에서 무수한 요청이 쏟아질 것이다. 그걸 일일이 컨트롤하고, 대응하는 것도 통역의 일이다. 선수 이미지 상하지 않게, 섭섭하지 않게. 그러다 보면 욕받이 되기 십상이다.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안다’ ‘위세 부린다’ 등등. 불평불만이 비일비재다.
지난 2021년이다.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가 펼쳐졌다. AL 주자 중 한 명이 타타니였다. 블게주와 홈런 1, 2위를 다투던 때다. 그때 마스크를 쓴 포수가 미즈하라였다. 시즌 중에도 마찬가지다. 이도류의 특성상 루틴이 복잡하다. 다른 선수와 시간 맞추기도 어렵다. 때문에 캐치볼 파트너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럴 때면 ‘형’을 찾는다. 미즈하라가 글러브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다.
일상에도 깊숙이 관여한다. 훈련 시간, 강도, 신체 반응의 변화 등도 일일이 체크한다. 루틴 관리용 또는 보고용 데이터도 작성한다. 대외 활동 중에는 보디 가드 역할도 맡는다. 혹시 과한 (여성) 팬들로부터 보호가 필요할 경우도 생긴다.
작년 일이다. 시애틀전 때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마이크 트라웃의 머리에 날아온 위협구 때문이다. 격렬한 몸의 대화가 오간다. 양쪽 감독을 포함해 8명이 퇴장당했다. 이때 에인절스 덕아웃에서 빛의 속도로 달려 나온 사람이 있다. 미즈하라다. 전선 한복판에 갇힌 오타니를 필사적으로 구출(?)했다. 일본의 국민 영웅으로 등극한 순간이다.
홈구장 기립박수…통역도 스타가 될 수 있다
2년 전이다. 일본의 한 매체는 메이저리그 통역들의 연봉을 다뤘다. “스페인어 직원은 3만7000~3만9000 달러(약 4700만~5000만 원)인데 비해 일본어 경우는 7만5000 달러(약 9600만 원)에서 8만5000 달러(약 1억 800만 원) 정도다. 약 2배 수준이다.”
최고액 8만5000 달러는 양키스의 경우다. 여기에 원정 수당, 교통비가 따로 지급된다. 최대 15만 달러(약 1억9200만 원)까지도 올라간다. 이 매체는 “미즈하라도 양키스 통역 정도의 대우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더 인상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매체는 20만 달러(약 2억5500만 원) 정도로 본다. 통역에 대한 처우는 선수 계약서에 포함된다. 구단 예산으로 집행한다는 뜻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미즈하라는 거의 전참시를 찍는다. 개인적인 일상까지 커버한다. 이를테면 (로드) 매니저 역할이다. 온갖 생활에 필요한 것들(핸드폰 개통, 집 계약, 공과금, 관공서, 비자 문제 등등)도 돕는다. 게다가 말벗, 밥 친구, 가이드, 상담사 등도 자처한다.
착한 오타니는 늘 고맙다. 그걸 표현하고 싶다. 그래서 개인 비용으로 추가 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이전트(CAA)와 협의해 수입의 1~2%가량을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본 기자는 미즈하라의 총연봉을 “1억 엔(약 9억1000만 원) 정도는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포브스는 오타니의 올 수입이 6000만 달러 정도라고 보도했다.)
그 밖에도 여러 얘기가 돈다. ‘오타니가 차를 사줬다, 집도 사줬다’ 같은 말들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황은 없다. 한가지 밝혀진 것은 있다. 2018년 미즈하라가 결혼했을 때다. “어느 날 쇼헤이가 봉투 하나를 건네더라. 조그만 선물이라고. 열어보니 신혼여행 상품권이었다. 일체의 비용과 고가의 패키지가 포함된 것이었다.”
2021년 에인절스 구단은 올해의 프런트 직원상을 발표했다. 당연히(?) 통역 부문 수상자는 미즈하라였다.
올해 개막전 때다. 에인절 스타디움에 만원 관중이 몰렸다. 식전 행사로 감독, 선수, 프런트 소개가 이어진다. 장내 아나운서가 “잇페이 미즈하라”를 외친다. 그러자 커다란 환호성과 함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이 사실은 ESPN, FOX 뉴스에서도 흥미롭게 다뤘다.
‘통역도 스타가 될 수 있다.’ 오타니 쇼헤이와 미즈하라 잇페이가 쓰고 있는 스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