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이 청년 연극배우는 훗날 대한민국 최고의 악당이 됩니다
(Feel터뷰!) 디즈니플러스 '조명가게'의 김희원 감독을 만나다
12월 20일 <조명가게>로 첫 연출 데뷔를 한 김희원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7년 영화 <1번가의 기적>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 드라마, 연극을 오가며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쌓았던 김희원이 갑자기 연출자로 변신했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은 이상할 게 없다는 눈치다. 배우일 때도 연출자로서의 시선과 통찰력을 선보였기에 언제 해도 할 것이란 분위기가 팽배했다는 소문이다.
뮤지컬 <빨래>의 제작자였던 경력을 인정받은 김희원은 공교롭게도 몇 해 전 호러 단편을 연출하려 했던 찰나였다고 한다. 마침 강풀 작가의 부름을 받고 <조명가게> 연출을 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우연이지만 단편도 비슷한 장르라 운명처럼 다가왔다며 말을 이었다. 강풀 작가와는 <무빙>의 교사 최일환을 맡으며 인연을 쌓았던 만큼 재미에 중점 둔 서사 풀이에 중점 둔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탄생한 강풀 작가와 김희원 감독의 시너지는 역대급 파급력을 생성하게 되었다.
다음은 <무빙>에 이은 강풀 유니버스에 참여한 김희원 감독과의 이야기를 정리한 글이다.
첫연출작 공황 비슷한게 오더라..
-<무빙>에서는 배우로 참여했고 이어 <조명가게>는 연출로 참여하게 되었다. 첫 연출작을 공개한 소감이 궁금하다.
“공식적인 프리 프로덕션 기간은 6개월인데 혼자 준비한 기간까지 합치면 총 9개월을 보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다 쏟아부은 적이 없었다. 촬영하고 편집하고 마무리해 10월 12일에 디즈니 쪽에 넘겼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공황 비슷한 게 살짝 오더라. 가만히 있기 어려웠다. 엄청 고민이 많았지만 해보자 싶었다. 수락하고 나서도 ‘그만둔다고 말할까’, ‘망치면 어떠냐’ 마음이 갈팡질팡 거렸다. 시작하기까지 두 달은 더 고민했던 것 같다. 일단 작품이 어려웠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인생 생각도 많이 들었다. 가만히 배우만 하면 좋을 텐데.. 괜한 도전으로 불안을 자초하나 싶었다. (웃음)”
-강풀 작가에게 <조명가게> 연출을 제안한 이유를 물어봤나.
“저도 모른다. 그냥 제 추측인데.. <무빙> 때 여러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제가 맡은 ‘최일환’이란 인물은 초능력 없이 초능력자와 싸운다. 목숨 걸고 싸우려면 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교사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사랑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인물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신을 넣어 달라고 제안한 적 있었다. 그때 강풀 작가가 설득당했다고 하더라. 제 역할 하나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를 보는 눈을 작가 입장에서는 꽤 인상적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배우 경력은 20년 가까이 되지만 연출자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결과물을 내놓을 때 마음가짐이 달랐겠다.
“학교 다닐 때도 연출에 관심은 계속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투자해야 준비도 할 수 있으니 엄두가 나지 않지 않았다. 언젠가는 꼭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살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님을 배웠던 거다. 배우로 참여할 때는 ‘아 끝났네’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시원함이 있었다. 감독이 되고 보니 공개된 다음에도 걱정이 더 많아졌다. 지금도 시청자들이 잘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안정을 찾아가기 쉽지 않다. 두 직업군의 차이점을 확실히 배웠다”
배우과 감독의 다른 책임 느껴
-오랜 경력과 친분도 있어 누굴 캐스팅해야 하나, 어려움이 따랐을 텐데.
“캐스팅 회의를 처음 해봤다. 정말 여러 배우가 있었다. 칠판에 배우 이름이 쫙 나열되어 있었다. 속으로 ‘나도 저렇게 쓰여있었겠구나’ 싶었고 (웃음) 배우의 장단점을 설명하는데 또 속으로 ‘나도 저렇게 평가받았겠구나’ 생각했다. 회의가 다 끝나니까 다들 저만 쳐다보더라. ‘생각한 배우가 있냐’는 거였다. 당황스러웠지만 이미지에 맞는 배우로 캐스팅했다.
물론 같이 못 한 배우도 있다. 연출이 처음이다 보니 함께 (하고는 싶었는데) 각자 스케줄 상황도 있고 하니 거절하더라. 그때 또 ‘나도 거절 많이 했지’하면서 ‘감독님이 서운했겠네’ 생각했다. 예전 생각이 오버랩되었다. (웃음) 거절한 이유는 사실 타당했다 이미 2개를 촬영 중인데 또 하나 하자고 하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정중하고 예의 있게 거절했었다. 그렇지만 감독님들은 서운해하셨다. 감독이 되고 보니, 저도 살짝 서운하다. (웃음) 그래서인지 배우의 거절 부분은 이해가 빨랐다”
-현장에서 감독이 연기 포인트를 직접 시연하기도 한다. 배우 출신인 게 장점으로 작용했나.
“출연 배우의 연기 칭찬이 더 기분 좋고 뿌듯해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액션’하고 모니터를 보면서도 연기를 잘하면 꼭 제가 잘한 것 같아 뿌듯했다. 함께 보고 있는 스크립터나 편집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누가 봐도 잘하는 컷은 비슷하다. 다만 잘한다고 캐스팅했는데 못하면 내가 다 부끄럽더라. (웃음) 그렇다고 연기 시연은 함부로 할 수 없어 조심스러웠다. 나를 따라 하면 망하는 지름길인데 그래서 뭉뚱그려서 설명했고 배우 본인에게 전적으로 위임했다”
-반대로 배우 출신 감독이라 힘든 점도 있을 법하다.
“4화 마지막 롱테이크 장면의 경우 배우들은 실제 2시간 정도 걸렸는데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사전에 카메라 워킹부터 여러 동선 체크하느라 고생했다. 세트를 부수고 잘라 가면서 찍어야 했다. 그 동선을 시뮬레이션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우연인 듯 포장해 흥이 차올라서 연기를 하게끔 노력했다. 의도된 포인트라면 배우가 ‘편하게 연기했다’고 말해주면 기쁘다. 준비가 다 되면 배우를 부르니 효율적으로 촬영하게 되는 거다. 대기만 하다가 가야 하면 힘 빠진다. ‘배우가 싫어하는 걸 딱 아는 감독’이라고 말할 때 뿌듯하다”
-배우마다 디렉팅이 달랐나.
“배우마다 성향이 다 다르니까.. (웃음) 세심하게 디렉팅 해주는 감독이 좋은 배우, 그냥 배우를 믿어주는 감독이 좋은 배우도 있다. 오랜 배우 생활을 통해 스타일이 대충 파악이 되었고 걱정해 주는 배우는 세심하게 신경 써서 디렉팅 했다. 그런데 꼭 걱정해 주면 그대로 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배우가 있다. (웃음)
정은 누나 같은 경우 ‘전구를 잘 전달해 주세요’하면 필사적으로 전구를 주려고 디자인해 온다. 현주와 엄마 서사는 대본 보면서도 울고 찍으면서도 울고 공개되고서도 울었던 장면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울겠구나 싶은 서사다. 그때는 ‘(전구를 어떻게든) 주고, (전구를 어떻게든) 받지 마’라고 짧게 디렉팅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 나 갈게’라는 대사가 가장 슬펐다. 지훈이의 경우 잔소리하는 걸 싫어해서 ‘움직이지 말고 표현해’라고 짧은 디렉팅을 해주면 원영만의 포인트가 산다”
각 화 마다 장르 달라, 찾는 재미
-장르가 달라진다. 연출 포인트가 있다면.
“평상시에도 공부를 해왔지만 한계에 부딪힐 때는 기술적으로 떨어질 때다. 카메라 렌즈부터 구도 등도 잘 모르고 부족해서 촬영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배워갔다. 이런 뉘앙스를 내고 싶으면 어떤 앵글로 찍어야 하는지, 조명 디테일은 뭘 써야 할지를 내내 도움받으면서 좋은 방법을 만들어 나갔다.
그런데 촬영 한 달 남기고 울면서 못 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도 입봉이라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번아웃이 온 거다. 저도 저지만 그 친구가 여기서 그만두게 되면 제 평생의 짐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울렁증이 한 번 오면 로저 디킨스(영국의 유명한 촬영 감독)가 와도 너보다 못 찍는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다독였다. 큰 위기가 찾아왔었지만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앞서 말한 시간의 효율성이 기술적으로도 반영된 거 같다.
“컬러로 찍고 흑백 전환하는 건 아예 다른 방식이라 그에 맞는 흑백 촬영을 준비했다. 일단 컷을 많이 하지 않는 게 목표였다. 12시간 동안 찍는다고 가정하면 카메라 조명 세팅 시간이 30분 정도라 어느 정도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하루에 짜온 콘티를 담아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시간을 아껴야 좋은 퀄리티가 나온다는 생각으로 한 셋업에 많이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카메라 무빙을 주어서 커트를 나누고 뉘앙스를 담아내자는 아이디어였다.
작가와 연출의 영역이 있지 않나. 시나리오에는 ‘다급하게 병원에 뛰어갔다’라고 쓰여 있어도 ‘다급함’이란 가치관이 다르다. 그 부분을 영상으로 표현해 주는 게 연출의 몫이라고 봤다. 가만히 있더라도 뉘앙스로 다급해 보일 수 있고, 느려 보여도 다급히 보이도록 촬영할 수도 있다. 가치관에 아이디어를 반영했다”
-초반 부분은 호러 장르의 성격이 짙다. 점프 스퀘어 없이 놀라게 하면서 공포심을 유발한다. 계속해서 호기심을 부르는 특별한 연출 방법이 있었을 거 같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공포를 목표로 했는데 물리적인 공포는 피하고자 했다. 동양과 서양의 공포 정서가 다르듯이. 공포라는 심리상태로 물리적 가해를 받느냐, 분위기를 조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공통점은 ‘저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시청자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도록 해야 한다가 첫 번째 포인트였다. 친절하게 설명하면 후반부를 예상하니까 재미없고 질질 끌면 지친다. 얼마만큼의 임팩트를 주어야 하냐가 관건이다. 궁금증을 한껏 유발해서 나중에는 그게 다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는 쾌감이다. 집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대답일 때야 수긍하게 되는 카타르시스다”
-4화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각각 장르적 특성이 살아 있는 느낌인데 의도된 설정인가.
“맞다. 최고의 숙제였다. 1-4화까지 버스만 4번 내린다. 비가 오는 설정도 그 시간에 갇힌 상황인 거다. 원래는 11시 57분에 내리는 시간까지 계산되어 있었는데 편집했다. 예술 영화도 아니고 심오한 부분은 편집했더니 이게 또 심심해지더라.(웃음) 기승전결을 따라가는 루트가 아니라서 지루함을 달랠 방편으로 화마다 장르를 달리했다. 1화는 스탠딩 카메라로 정직하게 찍으면서 스릴과 미스터리를 주어 서스펜스를 유발했다. 2화는 카메라 무빙을 줘서 호러 장르를 부여했다. 3화는 형사가 나오니까 활극으로 설정하고 핸드헬드로 찍었다. 4화는 롱테이크로 보여주자고 작심했다”
'무빙' 고윤정, 박정민 나도 몰랐다
-디즈니+라는 글로벌 플랫폼에 공개되는 부담감 속에서 특별히 중점 둔 부분이 있을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정서’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글로벌 OTT로 공개되는 만큼 한국적인 부분에 신경 썼다. 한국 악기로 효과음, 음악을 디자인했고, 한국의 장례 문화인 염습과 병원 문화, 한국의 골목길, 아파트, 태명,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도 포함이다. 노래는 가사를 살펴보면 상황과 연결되는데 음악은 만국 공통어니까 해외에서도 찾아보겠다고 생각했다”
-연출의 롤 모델이나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알려달라.
“너무 많지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 놀랐다. 만듦새에 디테일을 보면 생각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걸 느꼈다. 결론은 천재인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봉준호 감독의 디렉팅으로 연기하면 저도 역할을 할 수 있나 상상했다. 저 장면은 누구의 디테일인지, 아이디어인지 그저 엄청나다는 말, ‘감히’라는 생각을 했다”
-박정민, 고윤정 배우가 등장하는 마지막 쿠키영상으로 들썩인다. 강풀 작가에게 들은 바가 있나.
“<무빙> 시즌2나 <조명가게> 시즌2의 연결 다리인지는 강풀 작가만이 알 거 같다. <어게인>, <히든> 등이 연결되는 거로 알지만 작가의 영역은 저도 모른다. 쿠키 영상 대본은 가장 나중에 주었다. 그때 <무빙>의 영탁이구나 깨닫기도 했다”
-첫 연출을 통해 얻은 것과 연출자 김희원에 대해 평가를 해본다면.
“배운 게 너무 많다. 콘티를 정확하게 짜면 찍을 시간을 번다는 게 핵심이다. 시간을 많이 벌면 퀄리티도 높아지고 다양한 시도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광대로 재미있게 연기하든, 감독으로 연출을 하든 문화예술인은 똑같다. 보는 분들이 작품을 보고 즐거움을 찾고, 일상의 활력을 느끼셨다면 문화가 주는 힘인 전달된 거다. 배우나 연출자나 모두 좋다”
-<조명가게> 시즌2 연출 계획이나, 차기작 진행 상황이 궁금하다.
“연출 제안이 꽤 왔지만 대본을 본다거나 미래를 추진할 만한 여력이 지금은 없다. <조명가게> 시즌2는 흥행에 달려있을 텐데 아직 어떤 말도 나온 게 없다. (웃음)”
글: 장혜령
사진: 월트디즈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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