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네거리에서]중동 리스크 앞에 드러난 대구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대구 산업 현장에 직접적인 파장을 미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국제 유가와 환율이 요동치고, 이는 지역 기업의 생산비 부담으로 이어진다. 멀게만 느껴졌던 국제 분쟁이 대구 산업단지의 생산라인과 서민경제까지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중동발 위기는 대구 경제가 외부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 구조인지 다시 보여주고 있다.
대구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지역 기업의 89.7%가 중동 사태에 따른 직·간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섬유업계의 부담이 크다. 중동 지역에 특화 제품을 수출하는 업체들은 물류 차질과 선적 지연으로 자금 회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염료와 원사 가격 상승, 환율 상승까지 겹치며 생산원가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수익성이 약한 중소 제조업체일수록 부담은 더욱 크다.
문제는 충격이 일부 업종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 유가 상승은 물류비와 전력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제조업 전반의 비용 증가로 확산된다. 자동차 부품과 기계, 금속가공 등 에너지 소비 비중이 높은 업종일수록 타격이 크다. 기업의 원가 부담이 커지면 투자와 생산이 위축되고 고용 둔화로 이어진다. 결국 소비까지 얼어붙으면서 지역 경제 전체가 연쇄적인 압박을 받게 된다.
대구는 제조업 기반이 강하지만 동시에 외부 변수에 민감한 구조를 안고 있다. 섬유·기계·자동차 부품 등 주력 산업은 원자재 가격과 환율 변화에 취약하다.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 구조에다 중소기업 비중이 높아 원가 상승분을 감당할 여력도 크지 않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거나 물류망이 흔들리면 생산 차질과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공급망 다변화와 비용 구조 개선이 미흡한 상황에서 외부 충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산업 현장의 위기는 민생경제로 이어진다. 기업의 생산비 부담은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연결되고, 기업 실적 악화는 신규 채용과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소비 심리가 얼어붙으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커질 수밖에 없다. 국제 정세 불안이 산업 현장을 넘어 지역 서민경제를 압박하는 구조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위기에 대응하려면 단기 지원과 구조 개선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우선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기업에 대한 긴급 경영안정자금과 금융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금융기관도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등 유연한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특정 국가와 원자재에 의존하는 공급망 구조를 개선하고 대체 수입선 확보와 물류 체계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 에너지 절감 설비와 디지털 생산관리 확산을 통해 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섬유 산업의 고도화 역시 시급하다. 대구 섬유 산업이 원가 경쟁 중심 구조에 머무르는 한 외부 충격에 반복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기능성 섬유와 친환경 소재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기업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만큼 지자체와 정부의 정책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중동 위기는 대구 산업의 구조적 약점을 다시 드러냈다. 국제 정세가 흔들릴 때마다 생산비 부담과 소비 위축에 휘청이는 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외부 충격을 탓하기보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산업 체질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같은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공급망과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하는 과감한 전환이 필요한 때다.
이규현 편집국 경제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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