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공사 멈춘 강남의 주상복합… 공기 지연에 '빚더미'
[편집자주]부동산 침체로 자금경색이 심화되며 중견·중소 건설업체들이 신탁사에 제공한 책임준공 확약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시공사 지위를 얻기 위해 무리한 계약 조건도 눈감고 사인했다가 부도 위기로 내몰린 곳이 한두 개가 아니다. 신용도가 낮은 시공사의 경우 대주단으로부터 신탁계약을 강요당하기도 했는데 책임준공 관리형 신탁은 일반 신탁 대비 보수가 높아 신탁사 입장에선 이만한 효자 상품이 없었다. 하지만 2021년 하반기 시작된 금리 인상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인건비가 폭등하며 시공사-신탁사 간의 계약 이행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책임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한 시공사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원리금 상환은 물론 공사 지연에 따른 법적 손해배상책임마저 이중으로 지게 됐다. 물론 이는 계약상 시공사가 동의한 내용이다. 집값이 오를 땐 공격적으로 사업을 늘려놓고 이제 와 책임을 회피하려는 건설업체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건설업계는 전쟁과 경기침체가 불가항력 요소인 만큼 사업 참여자인 대주단과 신탁사가 리스크(위험)를 분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 호황 땐 '동지' 불황 땐 '남남'… 건설 vs 금융·신탁 "네 탓" 공방
(2) [르포] 공사 멈춘 강남의 주상복합… 공기 지연에 '빚더미'
(3) 중소·중견건설업체 참여 사업 10곳 중 8곳 '노예계약'
지난 11월10일, 서울 서초구 '방배 신일해피트리' 아파트 공사현장. 높은 펜스로 둘러싸인 현장은 공사가 중단된 채 철근이 드러난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인근 상인들은 "동네 흉물이다" "강남 한복판 역세권에 내 땅도 아니지만 아깝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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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인 신일건설은 아파트 브랜드 '해피트리'로 이름을 알렸다. 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이하 '책준신탁') 계약으로 인한 채무 인수가 도산 원인으로 지목됐다. 주택시장 침체로 미분양이 발생하며 공사 중단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올 4월 청약을 진행한 울산 울주군의 '온양발리 신일해피트리 더루츠'(93가구)도 6명만 신청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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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차입형 토지신탁은 신탁사가 주도적으로 사업비를 조달한다. 관리형 토지신탁은 신탁사가 시행자가 되지만 사업비 조달을 위탁자나 시공사가 한다. 신탁사가 대주단에 책임준공 확약을 제공하고 금융회사들로 구성된 대주단은 신탁사의 신용을 담보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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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윤기 한국신용평가 금융·구조화평가본부 수석연구원은 "책준신탁의 경우 미준공과 미분양 리스크에 둘 다 노출되는 차입형 대비 위험 수준이 낮다 보니 자기자본 대비 과도한 수주가 이뤄졌다"며 "개별 건설업체 부도 등의 상황에서 신탁사 대응에 문제가 없지만 건설업 전반에 부실 위험이 커질 경우 신탁사로 전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책준신탁으로 인한 중견·중소 건설업체의 줄도산을 막으려면 정부가 종전 사업약정 개정에 개입해야 한다고 건설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전 금융권이 참여한 'PF 대주단 협약' 프로그램을 구성해 책준신탁의 책임준공 기간을 연장하고 1차 책임준공 기한이 도래해도 채무를 유예하는 등의 지원 방안에 동의를 유도하고 있다. 문제는 건설업계가 주장한 시공사의 책임 범위 축소는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고 대주단 구성원 일부가 비제도권인 대부업체 등으로 동의에 비협조적이다.
앞으로 신탁약정에서 불공정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법에 따라 계약 상대방에 현저하게 불리하거나 공정성을 잃은 계약 내용은 무효임에도 책준신탁에서 무조건적 책임준공 의무 등 불합리한 조항이 특약으로 존재한다"며 "이는 개발사업의 위험이 시공사에만 집중되도록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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