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바다]① 수온 상승에 바뀌는 식탁… “고등어 자리에 삼치가 들어왔다”
경매 참여한 10년차 수출업체 사장 “올해 고등어보단 삼치가 물 올랐다”
올해 상반기 국내산 고등어 작년 대비 4분의1가량 줄어
남해서 서식하던 ‘삼치’는 서해까지 서식 지역 넓혀
[편집자주] 바다가 끓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지난 50여 년간 한반도 해역의 연평균 표층수온이 약 1.4℃ 올랐다. 전 지구 평균 상승폭(0.5℃)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이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 황금어장을 이루던 동해는 옛이야기가 됐다. 동해에 서식하는 핵심 수산자원은 명태·고등어·오징어에서 삼치·방어·참치로 바뀌고 있다. 뜨거운 바다를 견디지 못한 양식어종은 집단 폐사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해양 생태계의 변화가 너무나도 빠르다. 지금 우리 바다의 변화를 추적하고, 미래 해양 생태계를 전망하고자 한다.
“으어이 으어이(경매 진행 추임사) 3만4000원에 XX번, 으어이 으어이 양십만원(20만원)에 XX번”
지난달 27일 오전 6시 부산 서구 공동어시장에 ‘땡땡땡’ 종이 울렸다. 경매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남색 유니폼에 ‘경매사’라고 써진 모자를 쓴 경매사 3명 앞으로 수산업자(조합원) 30명 정도가 도열했다. 경매에 참여한 수산업자들은 자신의 조합원 번호가 기재된 모자를 쓰고 있었다.
경매가 시작되자, 대장 경매사가 경매 호가를 불렀다. 나머지 2명의 경매사들은 “사장님”을 외치며 지금 어떤 물건을 몇 박스 분량으로 경매하는지 손으로 가리켰다. 경매사의 진행에 맞춰 수산업자들은 손가락 두세개를 흔들며 내보였다. 수신호로 희망 가격을 제시하는 행위였다. 혹여 자신의 손가락을 경매사들이 못 볼까 큰 동작으로 경매사의 시선을 끄는 업자들도 있었다. 경쟁업체들의 눈치를 봐가며 좋은 물건을 싼값에 확보하려는 열띤 현장이었다.
이날 공동어시장엔 생선 5만1000상자(약1000톤)가 들어왔다. 대부분 고등어, 삼치, 갈치, 전갱이였다.
“평년에는 9만상자 정도 들어왔는데, 어획량 감소로 경매 물량이 줄었다”고 한 수산업자가 말했다. 옆에 있던 수산업자는 “올해 여름에는 아주 땡쳤다. 고등어는 없고 해파리만 무지막지하게 잡혔어”라고 했다. 그는 “최근 태풍이 지나가면서 물갈이를 해줘서 수온이 좀 내려간 덕분에 상황이 좀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물갈이는 거센 바람이 불어 수온이 낮은 바다 깊은 물이 수면 쪽으로 올라오는 걸 말한다.
어획량 감소는 공동어시장 판매 실적에서도 바로 드러난다. 부산공동어시장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10월 3일까지 누적 생선 판매량은 8만2153톤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누적 판매량(9만8412톤)과 비교해 1만6000톤 넘게 줄었다.
고등어의 경우 크기에 따라 ▲공고 ▲공갈사 ▲갈사 ▲갈고 ▲갈소고 ▲소소고 ▲소고 등 7개로 분류한다고 한다. 소고가 가장 크다. 생선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급식용이나 양식장 사료용, 수출용으로 쓰이는 작은 크기의 공갈사·갈사 크기는 한 상자(22~24kg)당 2만5000원 내외에 낙찰됐다. 고급 일식집에 들어가는 소고 사이즈는 20만원대에 거래됐다.
경매를 마친 10년 차 생선 수출업체 사장 A씨는 “아직 고등어가 작년처럼 기름이 차 있는 A급이 아니다”라며 “내년 저장용으로는 쓰기 어렵다. 11월~12월쯤에 A급 고등어가 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고등어 대신 삼치는 최근 두 달 새 많이 나오고 있다”며 “어제는 삼천포 경매장에서 중국(수출)용으로 엄청 사들였다”고 말했다.
바다에서 조업하는 어민들도 “아직은 고등어의 물이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10년 차 선주라고 본인을 소개한 한 어민은 “올여름 잡힌 고등어는 전년 대비 절반가량 줄었다. 추석 이후부터 다시 조금 잡히고 있다”며 “요새도 더워 조업을 나갈 때 얼음을 가득 싣고 나간다. 생선의 신선도를 지키려면 얼음을 계속 끼얹어야 하는데, 날이 더워 빨리 녹아서 문제”라고 했다.
국민 어종 ‘고등어’가 한반도 해역에서 계속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고등어 어획량은 3만7594톤을 기록했다. 작년 상반기 어획량(4만9597톤)보다 25%가량 감소했다.
고등어가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다가 너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국내산 고등어의 서식 적정수온은 7~25℃ 사이다. 서식하기 가장 좋은 적정수온은 15℃ 내외라고 한다. 수과원 측은 여름철 서·남해에 이어 동해의 수온이 급등하면서 고등어가 우리 해역에서 다른 해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원래 고등어는 따뜻한 물에서 서식하는 난류성 어종이다. 과거 비교적 수온이 낮은 동해안에서 한류성 어종인 명태가 많이 잡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수온이 올라가면서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졌다. 명태의 자리는 고등어가 대체했다. 그랬던 고등어도 수온 변화로 어획량이 줄고 있는 중이다.
안주로 즐겨 먹는 오징어인 ‘살오징어’도 비슷한 상황이다. 살오징어의 서식 적정 수온은 12~18℃ 사이다. 여름철 우리 바다의 수온이 장기간 28℃ 이상을 유지하자 살 곳을 찾아 찬 바다로 이동하고 있다고 수과원은 설명했다.
수과원에 따르면 1968년부터 2022년까지 55년간 한국 해역의 연평균 표층수온은 약 1.36℃ 올랐다. 같은 기간 기록한 지구 평균 표층수온 상승폭(0.52℃)의 2.5배에 달한다. 특히 동해의 수온은 1.82℃나 올랐다. 서해(1.19℃)·남해(1.07℃) 수온 변화가 심했다.
박명숙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책임연구원 연구진에 따르면, 고위도의 차가운 해수와 중위도의 따뜻한 해수가 만나는 ‘강원도 원산만(동해)’ 해역은 바다의 폭염이라 불리는 ‘해양열파(수천km에 걸쳐 해면수온이 높아지는 현상)’의 세기와 지속시간이 남해나 서해에 비해 강하고, 길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고등어와 오징어가 사라진 대신 따뜻한 수온을 좋아하는 삼치류, 방어류, 전갱이류의 어획량이 늘고 있다. 특히 삼치는 30℃ 이상의 물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수과원 관계자는 “삼치는 28℃ 이상의 고수온에서도 잘 버티는 어종”이라며 “남해에서 많이 잡히던 삼치는 서해로 서식지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치 외에도 아열대성 해역에 사는 호박돔, 아홉동가리, 꼬치고기 등 새로운 어종들이 우리 바다로 들어오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 동해에선 아열대성 어종인 고래상어가 목격돼 이목을 끌기도 했다.
수과원 관계자는 “수온이 올라가며 아열대성 해역에서 사는 어종이 유입하고 있지만, 삼치·갈치·고등어 등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대중성 어종처럼 어획량이 아직 많지는 않다”면서 “수온이 올라가면서 해역에 사는 어종의 변화가 있어 이에 따른 연구를 지속해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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