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앞에 당당한, 그녀는 예뻤다

4월이 옵니다. 미적미적 버티던 겨울도 봄에 자리를 내어줄 것입니다. 계절에서도 세대교체가 일어납니다. 꽁꽁 언 겨울은 봄의 생명을 이길 수 없습니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나물입니다. 언제 당도했는지 논두렁에는 쑥, 달래, 냉이 등이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내밉니다. 쑥 캐러 갈 시간입니다. 겨울을 이긴 여린 잎을 캐 된장을 풀어 심심하게 끓이면 쌉싸름한 맛이 눈부십니다. 아침상에 쑥국을 올리면 비로소 봄이 우리 집에도 찾아옵니다.

윤용, ‘나물캐는 여인’, 종이에 연한 색, 27.6×21.2㎝, 간송미술관

윤용(尹愹,1708~1740)의 ‘나물캐는 여인’은 이맘때 보면 딱 좋은 작품입니다. 40여 년을 본 작품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뒤통수까지 예쁘다더니 그 말이 맞습니다. 호미에 망태기를 든 아낙네는 얼굴 대신 뒤통수를 보여줍니다. 머리에는 수건을 쓰고 소매는 팔꿈치까지 걷어붙였습니다. 걸리적거리는 치맛자락은 허리춤에 쑤셔넣고 속바지는 무릎까지 끌어올려 질끈 묶었습니다. 그 바람에 튼실한 장딴지가 건강하게 드러납니다. 짚신은 벗겨지지 않게 들메끈으로 묶은 것이 꼭 샌들을 신은 것 같습니다. 그녀처럼 장딴지가 두꺼워 치마를 입지 못했던 젊은 시절에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20대부터 하이힐 대신 ‘여포화(여자를 포기한 신발)’를 신으면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그림의 영향이 큽니다.

‘사녀도’, ‘미인도’의 여인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에서 정면 대신 뒷모습을 그린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는 더더욱 희귀합니다. 남성들이 그린 여성의 모습은 흔히 의상과 헤어스타일이 돋보이는 사녀도(仕女圖)가 많습니다. 사녀도는 왕비나 궁녀 혹은 상류층 부녀자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요즘 같으면 영화배우나 모델을 그린 그림과 유사할 것입니다. 사녀도는 화려한 색채와 잘 꾸민 모습에서 보기는 좋지만 그 안에서 인물의 개성이나 실재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합니다. 성형미인들처럼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습니다. 사녀도는 조선 후기에 기생을 모델로 그린 미인도로 전환됩니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대표적입니다. 사녀도 혹은 미인도는 아름다운 여인을 드러내기 위해 그린 그림이니만큼 곱게 단장한 얼굴을 강조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물캐는 여인’은 뒷모습입니다. 의상 또한 거의 무채색입니다. 그림 속 아낙의 모습은 사녀도나 미인도를 목적으로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봄날에 나물 캐기 위해 나선 아낙네의 실제 모습을 보고 그린 작품입니다. 그래서 현장감이 더 느껴집니다. 특히 옆으로 세워 꽉 잡은 호미는 금세라도 앞으로 걸어가 나물을 캘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저 호미 날이 밑으로 처져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생동감은 사라지고 아낙네가 할 일 없이 멀뚱히 서서 들판을 바라보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윤용은 고산 윤선도의 후손입니다. 특히 조부인 윤두서에서 부친인 윤덕희로 이어진 그림재주를 물려받아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젊은 시절에 병을 얻어 33세로 요절했습니다. 82세까지 장수한 아버지 윤덕희는 26년 동안이나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해남의 녹우당에는 그의 후손들이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요즘도 그림 속 그녀처럼 일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호미를 들고 달래와 냉이를 캐는 대신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며 일한다는 것이 차이점일 뿐입니다. 날마다 출근하면서 무슨 옷을 입을까, 머리 모양은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화장하지 않은 얼굴도 예쁩니다. 무채색 옷을 입고 굵은 장딴지를 드러내도 아름다운 ‘나물캐는 여인’처럼 자신의 일에 당당한 사람은 맨얼굴도 예쁩니다. 아니 뒤통수도 예쁩니다. 그러니 자신있게 뚜벅뚜벅 걸어나가기를.

조정육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