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제의 인터뷰 “영어 몰라서…”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이다. 진땀 나는 막판이었다. 홈 팀의 추격이 거세다. 3점 차이를 거의 다 따라왔다. 자칫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다. (LA 다저스 – 필라델피아 필리스, NLDS 2차전)
9회 말 투 아웃이다. 스코어 4-3이 됐다. 여전히 칼 끝에 서 있다. 주자 2명이 1, 3루에서 위협한다. 원정 팀이 투수를 바꾼다. 사사키 로키(23)에게 공을 넘긴다.
‘뭐지? 이런 상황을 루키에게 맡긴다고? 에라 모르겠다인가?’ 그런 느낌이다.
시티즌스 뱅크 파크는 펄펄 끓어오른다. 4만 개(유료 관중 4만 5653명)의 함성에서 공포가 느껴진다. 일방적인 필리스 응원이다. 거친 외침도 많다. MLB에서 가장 뜨거운 곳의 필리건들이다.
하지만 열망은 금세 식었다. 루키가 공 2개로 끝내 버렸다.
경기 후 인터뷰 시간이다. 한 기자가 묻는다. “관중석에서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괜찮았나.”
일본인 마무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 영어라서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고 던질 수 있었다.” 미디어 룸이 빵 터진다. 머쓱한 지 본인도 웃는다.
이번 포스트시즌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광야를 떠돌던 야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다. 그리고 아수라장이던 다저스 불펜의 메시아로 재림했다.
그의 등장은 신비로움 자체다. 영어 실력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유창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닌가 보다. “그런데 말입니다”라는 멘트가 떠오른다. 미스터리 혹은 다큐멘터리 장르로 분류해야 한다.

전담 통역 없이 입단
지난 2월이다. 다저스의 봄 훈련이 시작됐다.
캠프에는 수많은 일본 기자들이 모였다. 100명이 훨씬 넘는 규모다.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같은 스타들에 눈길이 몰린다.
또 있다. 신입이다. 화제를 몰고 입단한 사사키 로키(23)다. 그의 첫 훈련 장면은 커다란 관심사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영어력(英語力)에 대한 기사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이런 제목이다.
‘佐々木朗希「彼の英語は大丈夫。感心した」同僚右腕が英語力絶賛 投内連係でグラスノーらと通訳なしで会話(사사키 로키 ‘그의 영어는 괜찮다. 감탄했다’ 동료 우완 투수가 영어 실력을 극찬, 글래스노우 등과 통역 없이 대화)’
기사는 이런 내용이다.
‘사사키의 훈련조에는 같은 에이전시 와서맨 소속의 (타일러) 글래스노우도 있었다. 그와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있어, 벌써 팀에 녹아드는 장면이었다.’
이런 대목도 있다.
‘2년 전 데뷔한 투수 (에밋) 시한은 야구와 일상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며, 사사키의 영어가 괜찮았고 밝혔다. 또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서 감탄했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신입이 공만 잘 던지는 게 아니다. 영어 실력도 출중하다. 일본 미디어는 이를 대서 특필했다.
맞다. 그러고 보니 특이한 부분이 있다. 그의 입단 조건이다.
다저스는 그를 위해 개인 스태프 3명을 고용했다. 지바 롯데 구단 출신의 직원들이다. 트레이너와 물리치료사, 영양사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일본 내에서는 말이 많았다. 어렵게 포스팅을 허락해 줬는데, 직원 3명까지 빼 갔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뜻밖이다. 정작 꼭 필요한 전담 통역은 없었다.

“스마트폰 번역 앱 깔았다”
지바 롯데 시절부터다. 그의 영어 실력에 대한 얘기가 많다.
웬만한 수준은 된다는 것이다. 외국인 선수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아무래도 미국행을 염두에 둔 탓이라는 말도 돌았다.
하지만 반대의 주장도 있다. 대단한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다. 자신도 인정한다. 슈칸 분슌이라는 매체와 인터뷰였다. 이렇게 말한다.
“미국에 진출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역시 언어 문제다. 영어 때문에 고민이 많다. 야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통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너무 부족하다.”
왜 아니겠나. 이런 얘기도 한다.
“일단 필사적으로 배우는 중이다. 당연히 스마트폰에 번역 앱도 깔았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 인종이나 문화, 매너 같은 부분에서는 피해야 할 말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도 조심스럽다.”
또 다른 미디어의 관찰기다. 닛칸 겐다이라는 매체는 이렇게 묘사한다.
‘오타니는 벌써 8년째다. 다른 선수와 대화가 자연스러운 것 같다. 야마모토는 그냥 단어 1~2개 정도로 소통하는 것 같고, 사사키는 그보다는 낫다. 짧은 문장(원 센텐스)으로 표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말하면서도 수줍어하는 느낌이다.’
물론 다저스에는 일본어 통역 직원이 있다. 2명이다. 윌 아이어튼(오타니 전담)과 소노다 요시히로(야마모토 전담)라는 인물이다. 기자들과 인터뷰 때는 윌 아이어튼이 사사키를 돕는다.
보통 때는 (지바 롯데에서) 함께 온 스태프의 지원을 받는다. 오쿠보라는 트레이너가 영어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착륙에 실패한 포심 패스트볼
오히려 현지의 평가가 너그럽다. LA타임스의 딜런 에르난데스는 후한 점수를 준다. 필리스 전 때의 인터뷰를 이렇게 얘기한다.
“정확한 뜻은 모르더라도, 분위기나 표정, 목소리 톤 같은 것으로 무슨 소리인지는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뭔가 심상치 않으면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기라도 했겠지. 그런데 (사사키) 로키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그 순간을 잘 받아넘겼다.”
그러면서 이렇게 칭찬한다.
“아마 그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알고 싶지도 않고, 상관도 없어. 아무래도 좋아.’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자세다. 시즌 초반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역시 장차 에이스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투수라고 본다.”
일본 시절에는 그랬다. 160㎞를 가볍게 넘겼다. 퍼펙트게임도 달성했다. 레이와의 괴물(令和の怪物)로 불렸다. 대중은 추앙했다. 엄청나고 대단한 인물로 여겨졌다. 떠받들고, 보호받는 존재가 된 것이다.
미국 진출 때도 마찬가지다. 거의 모든 구단이 줄을 섰다. ‘슈퍼 을’의 지위를 누렸다. ‘영어력’의 설화도 그 무렵 탄생했다. 유창하다. 통역도 필요 없을 정도다. 그런 목격담과 얘기가 떠돌았다.
하지만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차가운 현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실체가 드러난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그의 포심은 연착륙에 실패했다. 힘을 잃고, 한동안 헤매고 말았다. 제법 긴 혼란을 겪었다. 모진 풍파에 시달렸다. 이제야 겨우 정상을 회복했다. 거친 야유와 욕설이 쏟아지는 현실의 마운드에 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