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기업은행의 최근 행보를 보면, 단순한 연승 이상의 의미가 느껴진다. 15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GS칼텍스와의 경기는 ‘5연승’이라는 숫자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이 승리는 중위권 순위표 한 줄을 지킨 정도가 아니라, 시즌 전체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준 한 판이었다.

시즌 초반 IBK기업은행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개막 직후 1승 8패, 최하위까지 떨어졌던 팀이다. 전력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어딘가 맞물리지 않는 느낌이 강했다. 공격은 따로 놀았고, 리시브는 흔들렸으며, 중요한 순간마다 팀 전체가 동시에 주저앉는 장면이 반복됐다. 결국 변화가 필요했고, 그 변화의 중심에 여오현 감독대행이 있었다.
여오현 대행 체제 이후 IBK기업은행은 전혀 다른 팀이 됐다. 13경기에서 10승 3패. 단순히 운이 따랐다고 보기엔 경기 내용이 너무 분명하다. 선수들의 표정이 달라졌고, 코트 위에서의 움직임도 한결 단순해졌다. “될 수 있는 플레이를 확실히 하자”는 메시지가 팀 전체에 스며든 느낌이다. 이번 GS칼텍스전은 그 변화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 경기였다.

경기 초반부터 흐름은 팽팽했다. GS칼텍스도 이 경기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승점 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이 경기는 사실상 ‘승점 6짜리’ 맞대결이었다. 이기면 4위 경쟁에서 유리해지고, 지면 추격을 허용한다. 이런 경기에서 보통은 에이스의 화력이 승부를 가르기 마련이다. 실제로 GS칼텍스의 지젤 실바는 이날 35점을 퍼부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숫자만 보면 경기를 지배한 선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배구는 개인 종목이 아니다. IBK기업은행은 실바의 화력을 ‘한 명의 힘’으로 받아들였고, 그에 맞춰 팀 전체로 대응했다. 블로킹에서 9-3으로 앞선 수치가 이를 잘 보여준다. 빅토리아를 중심으로 한 전위 라인은 실바의 타점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편하게 때리게 두지 않았다. 공격 성공률이 비슷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갈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빅토리아의 23점은 단순한 득점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나오는 퀵오픈, 상대 리시브가 흔들릴 때 정확하게 꽂히는 공격은 팀에 안정감을 줬다. 여기에 육서영, 최정민, 이주아까지 고르게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면서 GS칼텍스의 블로킹과 수비를 분산시켰다. 누군가 한 명이 막히면 다른 쪽에서 바로 점수가 나오는 구조였다. 이는 세터 박은서의 역할이 컸다. 토스가 눈에 띄게 과하지 않았고, 욕심도 없었다. 단순하지만 정확한 선택이 반복되면서 공격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경기의 백미는 역시 4세트였다. 초반 11-3까지 앞서 나갔을 때만 해도 IBK기업은행의 완승처럼 보였다. 그러나 GS칼텍스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실바의 강서브를 앞세워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며 21-19 역전까지 만들어냈다. 이 지점에서 시즌 초반의 IBK기업은행이었다면 흔들렸을 가능성이 크다. 리시브가 무너지고, 공격 선택이 급해지면서 흐름을 완전히 넘겨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날의 IBK기업은행은 달랐다. 이주아가 실바의 후위 공격을 가로막으며 흐름을 끊었고, 박은서의 서브 에이스가 다시 한 번 분위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마지막은 육서영의 오픈 공격이었다. 과감했지만 무모하지 않았고, 망설임도 없었다. 이 장면 하나로 이번 경기의 성격이 설명된다. 지금의 IBK기업은행은 중요한 순간에 도망치지 않는 팀이다.
반면 GS칼텍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실바의 35점은 분명 대단했지만, 리시브 라인의 불안과 세터 운영의 기복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특히 세트마다 리듬이 끊기는 모습은 중위권 싸움에서 치명적이다. 이영택 감독이 경기 전 지적했던 ‘승부처에서의 집중력’ 문제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개인 능력으로는 버텼지만, 팀으로 정리되지 못했다.

이번 승리로 IBK기업은행은 승점 35, 11승 11패를 만들며 4위를 지켜냈다. 동시에 3위 흥국생명과의 격차를 승점 4로 좁혔다. 단순 계산만 해도 남은 일정에서 한 경기 결과에 따라 충분히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 특히 18일 예정된 흥국생명과의 맞대결은 사실상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흐름이라면, IBK기업은행이 더 이상 도전자가 아니라는 인식도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건 팀의 분위기다. 여오현 대행 체제에서 선수들은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움직인다. 빅토리아는 해결사 역할에 집중하고, 육서영은 연결과 마무리를 동시에 책임지며, 미들블로커들은 블로킹과 속공으로 팀의 중심을 잡아준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단하다. 이런 팀은 봄배구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IBK기업은행의 5연승은 우연이 아니다. 시즌 초반의 혼란을 지나, 이제는 ‘이길 줄 아는 팀’으로 변하고 있다. GS칼텍스전 승리는 그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증거다. 남은 일정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적어도 지금의 IBK기업은행은 더 이상 내려갈 팀이 아니다. 이제 질문은 하나다. 이 팀이 4위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진짜 봄배구의 주인공이 될 것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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