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몽골의 농업 협력이 이룬 역사적 성과로, 40년간 불가능했던 몽골의 벼 재배가 한국의 기술력으로 마침내 성공했다. 농촌진흥청 KOPIA(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 몽골센터의 오명규 소장과 연구진은 2년간의 집중적인 연구 끝에 2025년 9월, 한국 품종 '진부올벼'를 몽골 홉드도 볼강군 시험포장에서 성공적으로 수확하며 양국 농업 협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 몽골의 식량 안보 위기와 한국에 손 내민 배경
몽골은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사막이며, 겨울철 평균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극한의 대륙성 기후를 가진 나라다. 전형적인 유목 문화를 기반으로 고기와 밀을 주식으로 삼아왔지만, 최근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식단이 곡물 위주로 변화하며 쌀 소비량이 급증했다. 2024년 기준 몽골의 쌀 수입량은 약 4만 9,536톤으로, 수입액만 460억 원에 달하며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몽골 정부는 1981년부터 중국, 일본 등 여러 국가의 기술 지원을 받아 벼 재배를 시도했으나, 낮은 기온으로 인한 짧은 생육 기간과 알칼리성 토양, 전문가 부재, 재배 기술 부족 등으로 40여 년간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특히 몽골은 벼가 자라기에 매우 불리한 환경적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다. 여름철 평균기온이 38도까지 올라가지만 건조한 기후 특성상 벼 재배에 필수적인 물 관리가 어려웠고, pH가 높은 알칼리성 토양은 벼의 생육을 저해했다.
이에 몽골 정부는 '식량공급 및 안전보장 국가운동'을 추진하며 쌀을 포함한 19개 핵심 품목의 자급을 국가 목표로 설정했다. 사막에서의 벼 재배 성공 경험과 세계적인 K-벼 재배 기술을 보유한 한국에 2023년 공식적으로 벼 재배 시험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 KOPIA 몽골센터의 과학적 접근과 2년간의 도전
농촌진흥청은 몽골 정부의 요청을 받아 KOPIA 몽골센터를 통해 '몽골 적응 벼 재배기술 개발사업'을 본격 착수했다. KOPIA는 2009년부터 농촌진흥청이 주관하는 국제개발 협력사업으로, 개발도상국 현지에 센터를 설치하고 농업기술 전문가를 소장으로 파견해 국가별 맞춤형 농업기술을 개발·보급하는 사업이다.
오명규 소장이 이끄는 KOPIA 몽골센터는 2023년 먼저 '몽골 지역 환경 분석'을 실시했고, 2024년에는 '몽골 적합 벼품종 선발시험'을 거쳐 2025년 1월 홉드도 볼강군에 3,500㎡(약 1,000평) 규모의 시험포장을 조성했다.
연구팀은 몽골의 열악한 재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맞춤형 재배 기술을 적용했다. 우선 알칼리성(높은 pH) 토양을 벼 재배에 적합한 약산성 또는 중성으로 바꾸기 위해 산성용 질소(N), 인(P), 칼리(K) 비료를 투입했다. 낮은 기온을 고려해 비닐하우스에서 모를 기르는 육묘 기간을 일반적인 기간보다 훨씬 긴 40일로 늘렸고, 날씨가 따뜻해지는 6월에 모내기를 진행해 벼가 생육할 수 있는 최적의 온도 조건을 확보했다. 또한 늦게 심고 빨리 수확할 수 있는 극조생종 품종으로 한국 품종 3종(진부올벼, 진부벼, 아세미)과 중국 품종 1종을 시험 재배했다.
▶▶ 진부올벼, 몽골의 혹한을 이겨낸 기적의 품종
지난 9월 17일, 몽골 식량농업경공업부 잠발체렌 차관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장보고회가 열렸다. 시험 재배한 4개 품종 중 최종적으로 한국 품종 '진부올벼'가 낟알이 가장 잘 영글어 수확이 가능함을 직접 확인하며 몽골 최초의 벼 재배 성공을 축하했다.
진부올벼는 농촌진흥청이 1992년 육성한 극조생종 품종으로, 추위에 강하며 벼알이 짧고 둥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원래 한국의 강원도 진부 지역을 포함한 중북부 산간고냉지에서 재배하기 위해 개발된 품종으로, 출수기가 매우 빠르고 내냉성이 강해 저온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생육할 수 있다. 쌀이 맑고 깨끗하며 찰기가 많아 밥맛이 좋은 양질미 품종이기도 하다.
진부올벼의 수량은 10a(아르)당 약 500kg으로 추산됐으며, 이는 헥타르당 5~6톤의 쌀 생산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다른 시험 품종들은 이삭이 패지 않거나 낟알이 여물지 않고 벼의 균일성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로 수확이 어려웠던 것과 대조적인 성과였다.
▶▶ 몽골 정부와 현지 주민들의 뜨거운 반응
40년 만에 식량 자급자족의 꿈을 이루게 된 몽골 정부는 이번 성과를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환영했다. 잠발체렌 몽골 식량농업경공업부 차관은 "몽골 대통령이 제안한 '식량 공급 및 안전보장 국가 운동'의 목표에는 주요 19개 식품(쌀 포함)의 국내 수요를 전량 자급한다는 원칙이 명시되어 있다"며 "이번 재배 성공은 이러한 국가 목표 달성에 획기적인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이번에 재배에 성공한 '진부올벼'를 몽골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며 "양국의 관계기관들이 협력해 앞으로 쌀 생산을 위해 벼 재배 규모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도 "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성공적인 성과"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몽골에서 백미를 재배할 수 있을 줄 몰랐다", "맛보고 싶다, 파는 곳 주소를 남겨달라", "좋은 소식에 기쁘다"는 시민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몽골 국민들의 큰 자긍심과 관심은 단순히 새로운 작물 재배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식량 안보라는 국가적 과제 해결에 대한 희망을 반영한 것이다.
▶▶ 한국 농업기술의 우수성 입증과 사막 재배의 전례
이번 몽골에서의 벼 재배 성공은 한국 농업기술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사례가 됐다. 한국은 과거 아랍에미리트(UAE) 사막에서도 벼 재배에 성공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20년 농촌진흥청은 UAE 샤르자 사막지대에서 한국 품종 '아세미'를 시험 재배해 국내보다 1.5배 높은 수확량을 기록했다. 당시 연구팀은 1,800여㎡ 땅을 40cm씩 파내고 부직포를 깔아 물 빠짐을 최소화하며, 물을 공급하는 관을 땅속에 묻는 등 사막에 논을 만드는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였다.
이러한 사막·건조지대 벼 재배의 물·영양·열 관리 알고리즘 축적 경험이 몽골 프로젝트에도 중요한 노하우로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UAE는 고온 건조 환경이었던 반면, 몽골은 고위도 한랭·알칼리 토양이라는 전혀 다른 조건이었기에, 한국 연구진은 각각의 환경에 최적화된 맞춤형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 한-몽 농업 협력의 역사적 맥락
한국과 몽골의 농업 협력은 1990년 정식 수교 이후 꾸준히 발전해왔다. 2003년 10월 양국은 농업분야 협력약정(MOU)을 체결했고, 동몽골 개발프로젝트, 가축질병진단센터 설립, 시설채소 재배기술 전수 등 다양한 협력 사업을 추진해왔다. 특히 한국은 몽골의 사막화 방지를 위한 산림 협력 사업도 적극 전개해왔다. 2007년부터 시작된 한-몽 그린벨트 사업을 통해 몽골 내 사막화가 진전된 지역에 총 3,000헥타르 이상의 면적을 조림했고, 2021년에는 울란바토르 담부다르자 지역에 40헥타르 규모의 '한-몽 우호의 숲' 공원을 조성했다.
최근에는 한국농어촌공사와 농림축산식품부가 2024년부터 2028년까지 약 60억 원을 투입해 몽골 내에 연중 채소 생산이 가능한 스마트농업단지 9.6헥타르를 구축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몽골의 겨울철 평균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혹한으로 인해 채소 생산이 어려워 전체 소비량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다.
▶▶ K-농업 기술 수출의 새로운 장 열리다
이번 벼 재배 성공은 단순한 기술 이전을 넘어 한국 농업 관련 산업의 수출 확대라는 경제적 효과도 기대된다. 몽골에서 본격적으로 쌀 재배가 시작되면 저수지, 관개수로, 정미시설 등 기반 인프라 구축과 함께 농기계, 비료, 종자 등 국산 농업자재의 수출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이번 재배시험 과정에서 몽골은 벼 재배 기반시설이 매우 취약해 대부분의 농자재를 한국에서 가져와 사용해야 했고, 몽골에 제초제가 없어 잡초를 손으로 제거해야 할 정도였다. 이는 역으로 한국 농업 기업들에게 엄청난 시장 기회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농촌진흥청 김황용 기술협력국장은 "우리 기술로 몽골 농업 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각종 국산 농업 투입재의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2026년부터 대규모 확대 계획
몽골 정부는 올해 시험 재배 성공을 바탕으로 2026년부터 벼 재배 면적을 대규모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생산된 벼는 앞으로 종자로 사용될 계획이며, KOPIA 몽골센터는 이번 시험 성과를 토대로 '몽골 적응 벼 재배기술서'를 발간해 보급하고 몽골 내 벼 재배 표준기술 확립을 지원할 예정이다.
오명규 KOPIA 몽골센터 소장은 "올해 결과를 바탕으로 재배 기술을 표준화해서 몽골에 맞는 표준 재배 기술을 확립하고, 이를 재배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농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몽골 정부로부터 훈장과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 '밥'으로 맺어진 한-몽 진정한 우정
한국은 1950~60년대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해외 원조를 받아야 했던 나라였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만에 공적개발원조(ODA) 공여국으로 변모해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이제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22개국에 KOPIA 센터를 설치하고 농업기술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KOPIA 사업은 지난 15년간 협력국의 대상 작물과 가축의 생산성을 평균 30~40% 높이고 농가 소득 증대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면서 국제사회로부터도 주목받는 개발원조 모델이 됐다. 필리핀에서는 벼 우량종자 생산 및 보급을 통해 참여 농가 소득을 1.3배 높였고, 케냐에서는 양계농가 소득을 9.2배, 감자농가 소득을 3.2배 증가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 몽골 벼 재배 성공은 단순히 농업 기술 이전의 차원을 넘어 진정한 국제 협력의 모델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40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식량 안보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로 두 나라가 더욱 단단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한국의 농업 전문성과 몽골의 광활한 토지, 양국의 신뢰와 협력이 만들어낸 이 성공 스토리는 앞으로 더 많은 개발도상국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몽골 현지인들이 "몽골에서 백미를 재배할 수 있을 줄 몰랐다"며 놀라워하고, "맛보고 싶다"는 기대감을 나타내는 반응은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한 기술적 성과를 넘어 몽골 국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K-농업 기술이 세계 곳곳에서 식량 안보와 농업 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가운데, 한국과 몽골의 협력은 진정한 상생의 모델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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