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를 품은 영화 ‘세븐 베일즈’

김진호의 ‘음악과 삶’

캐나다의 애텀 이고이언 감독이 극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 <세븐 베일즈>가 지난 5월 14일 전국에서 개봉되었다.

미국 배우 어맨다 사이프리드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2023년에 제작된 후 나름의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 안에는 오페라 <살로메>의 한 장면이 통째로 들어가 있다.

영화 '세븐 베일즈(Seven Veils)'에서 주인공 재닌으로 분한 어맨다 사이프리드. 그녀는 오페라 연출가로, '살로메'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발생했던 사건들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살로메' 속 사건들에 연결하고 투영하며 고민한다. [사진 SEVEN VEILS official poster]

<살로메>(Salome)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의 첫 번째 오페라였다.

이 작곡가는 왈츠 작곡가들로 유명한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와는 어떤 관계도 없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그의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모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태생의 인물들이었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보다 한 세대 위의 사람들이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독일의 뮌헨에서 태어났고 빈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 활동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같은 이름을 가진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적 후배다.

1883년에 타계한 바그너는 여러 작곡가에게 다양한 음악적 영향력을 끼쳤다.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작곡가들을 바그네리안(Wagnerian)이라고 부른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동시대의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와 함께 가장 성공한 바그네리안이었다.

바그너와 바그네리안들은 서양 고전음악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첫째, 작품들의 연주 시간이 대체로 길어졌다.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은 연주 시간이 무려 5시간에 이른다. 말러는 연주 시간이 2시간가량 되는 교향곡들을 썼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연주 시간은 길어야 3시간이다. 18세기에 활동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교향곡들은 30분을 넘지 않았다.

둘째, 관현악곡을 연주하는 관현악단의 규모가 커졌다. 말러의 <8번 교향곡>은 ‘천인의 교향곡’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동원되는 연주자가 많다. 바그너의 작품 활동이 오케스트라 확장의 계기였다.

셋째, 화음들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더불어서 음악의 색채가 진하고 화려해졌다. 전문적인 용어로 ‘반음계주의’가 강화되었다고 평가되는데, 여기서 반음계주의의 영어는 ‘Chromaticisim’이고, 이것은 ‘색채주의’로 직역된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서양 화가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색을 그림에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색감을 현란하게 만들었는데, 비슷한 일이 바그네리안의 음악 작품들에서도 일어났다.

이런 식의 변화들과 함께 바그너와 바그네리안들은 낭만주의의 표현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그 끝은 음악적 화려함의 최대치였고, 감정의 과다한 고백 혹은 신경증적 자아의 극단적 노출이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잿더미 위의 유럽은 전전의 음악적 화려함을 감당할 수 없었다. 바그네리안들은 인류의 음악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강렬한 표현력을 보여주었던, 두 번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시대에 활동했다. 이 시대를 음악사가들은 후기 낭만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후기 낭만주의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말러와 달리 교향곡(Symphony)보다는 교향시(Symphonic Poem)를 많이 썼다.

추상적 성격의 엄격한 구성적 교향곡보다 좀 더 자유로운 구성을 보이는 교향시에는 대체로 표제가 붙으며, 교향곡이 3~5개 악장으로 구성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교향시는 대체로 하나의 악장으로 구성된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대표적인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웅장한 첫 부분의 팡파르만 들어도 많은 사람이 “아, 이거? 들어봤지!” 하며 호응할 것이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했던 <아이즈 와이드 셧>(1999)을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연출했던 미국의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첫 부분을 사용했다.

유명한 지휘자였기에 오케스트라를 잘 알았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구스타브 말러는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보이는 관현악곡을 많이 작곡했다.

슈트라우스의 지휘 장면은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 유대계 디아스포라였던 말러가 어둡고 내성적/내향적인 곡을 주로 작곡했다면, 정통 독일인(!)으로 여겨졌던, 거리낄 게 없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말러보다는 좀 더 외향적인 스타일이었다.

여러 교향시를 쓰고 성공 가도를 달렸던 슈트라우스가 1902년,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의 연극 공연을 본 후 그것을 오페라로 쓰기 시작했다.

오페라 <살로메>는 1905년 드레스덴의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매우 자극적인 장면들 때문에 한동안 잘 연주되지 않았다. ‘일곱 베일의 춤(Dance of the Seven Veils)’으로 알려진 장면이 특히 자극적이라고 평가되었다. 영화 <세븐 베일즈(Seven Veils)>는 이 장면의 제목에서 따왔다.

오페라 '살로메' 중 ‘일곱 베일의 춤(Dance of the Seven Veils)’의 한 장면. [사진 Opera Ballet Vlaanderen]

오페라 <살로메>에서 주인공 살로메는 계부인 헤롯 왕의 유혹을 받고 있다.
그녀는 계부의 유혹을 받아줄 수 없다. 그녀가 감옥에 갇혀 있는 예언자 요한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예수에게 세례를 주어 세례 요한으로 알려진 그를 그녀는 여러 번 구애하고 유혹하지만, 요한은 그녀를 부정적으로 보기에 구애를 거부한다.

요한을 가질 수 없어 실망한 살로메에게 헤롯 왕이 자기 앞에서 춤을 추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살로메는 왕과 왕비, 즉 그녀의 친모 앞에서 춤을 춘다. 왕비 헤로디아는 헤롯 왕이 죽인 동생의 아내였다. 살로메는 요염하고 격렬한 춤을 추면서 일곱 개의 베일을 하나씩 벗고 나체가 된다.

10분쯤 되는 이 춤의 장면에서 소프라노인 살로메는 노래하지 않고 춤만 춘다.

화려하고 격렬한 반음계적 음악은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오페라 <살로메>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으로, 이 부분만 따로 떼어서 연주되기도 한다.

춤추기를 끝낸 살로메는 왕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한다. 그녀는 요한의 잘린 목을 원한다!

폭군인 헤롯 왕조차 곤란해하지만, 살로메는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결국 왕은 요한의 목을 가져오라고 부하에게 명령한다. 병사가 지하의 감옥으로 내려가 요한의 목을 베는 동안 오케스트라는 최고의 스릴러 음향을 연주한다.

쿵! 잘린 목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음악은 클래식 음악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긴장감과 표현력을 보인다. 병사가 은쟁반에 요한의 목을 담아 가져오면, 살로메는 그 목을 들고서 관능적인 가사로 기괴하게 노래하다가 키스한다. 그 장면을 본 왕이 살로메를 죽이라고 명령하고 오페라는 끝이 난다.

1994년 4월,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단이 내한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살로메>를 공연했다.

필자도, 김영삼 전 대통령도 그 역사적 공연의 현장에 있었다.

필자는 ‘일곱 베일의 춤’을 그전부터 잘 알고 있었고, 한국의 무대에서, 특히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그 장면이 어떻게 연출될지를 무척 궁금해했다. 프랑스인들은 연주를 정말 잘했는데, 이 춤 장면에서 소프라노는 탈의하지 않았고, 춤도 매우 우아하게(!) 추었다.

필자는 이후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 이 오페라를 여러 번 보았는데, 프랑스와 독일의 가수들은 노출 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유럽의 오페라 공연은 꽤 자극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주인공들의 노출은 전혀 화제가 되지 않는다. 그게 뉴스가 되는 곳은 미국과 한국 같은 곳이다. 유럽의 자극적 오페라 연출을 ‘유로 쓰레기(Euro Trash)’라고 비난하는 미국인이 꽤 있다. 한국은 미국을 본받아서 그런지 오페라 공연에서는 대체로 노출을 자제하는 연출을 보여왔다.

살로메 이야기, 아니 헤롯 왕과 요한의 이야기는 성서에 적혀 있다. 성서 속 요한은 헤롯 왕이 형제를 죽인 것을 비난했고, 남편을 죽인 남자를 받아들인 헤로디아 왕비를 창녀로 비난했다.

요한은 당대 이스라엘인에게는 정치적 구심점이었고, 로마제국에 빌붙어 왕 노릇을 하는 헤롯에게는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를 반란의 우두머리였다. 성서 속 이야기에는 살로메라는 이름이 없다. 요한의 목을 원했던 이는 요한에게 비난받았던 왕비였고 그녀는 자신의 이름 없는 순진한 딸에게 요한의 목을 베라는 요구를 왕에게 하라고 꼬드겼으며 왕 역시 기꺼이 요한의 사형을 집행했다.

오늘날 여러 기독교 교회는 헤롯 왕이 요한의 목을 벤 날(대체로 8월 29일)을 축일 혹은 기념일로 지정해 기린다.

이름 없는 딸에게 살로메라는 이름을 준 이들은 후대의 역사가들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악마적이면서 매혹적인 요녀 캐릭터를 부여한 이는 오스카 와일드였다.

그의 연극에 강력한 표현력을 추가한 이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였다.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와 독일 작곡가 슈트라우스는 상술한 정치적 이야기를 세기말의 퇴폐적 탐미주의 기조 위의 변태적 치정극으로 바꿨다.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연주되는 오페라 <살로메>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최고의 스릴러 오페라다. 이 오페라의 몰아치는 강렬한 음향과 긴장의 연속에 버금가는 오페라는 웅장한 <엘렉트라>뿐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두 번째 오페라다.

영화 <세븐 베일즈>는 오페라 <살로메>의 ‘일곱 베일의 춤’ 장면을 통째로 보여준다. 주인공 어맨다 사이프리드는 영화에서 이 오페라의 연출자다. 그녀가 분한 인물은 오페라를 연출하면서 개인적 트라우마를 관객에게 보여주는데, 그 인물의 트라우마가 오페라 <살로메>속 이야기와 겹치는 것처럼 보인다. 어맨다 사이프리드의 열연이 엿보이는 영화다.

세븐 베일즈
감독
출연
린 그리핀,라이언 맥도날드,라네트 웨어,마야 미살제빅,아톰 에고이안,프레이저 애쉬,네이트 볼로틴,맥심 코트레이,아톰 에고이안,니브 피치먼,케빈 크리스트,애드리안 러브,노아 시갈,존 슬로스,닉 스파이서,아람 테르자키안,시몬 우들,마이클 다나,폴 사로시,데이빗 워른스비
평점

김진호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 경국대학교(구 안동대학교)의 음악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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