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 청년, 금성을 꿈꾸다
가장 피하고 싶은 실패는 ‘꿈꾸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럼에도 우주를 유영하는 이카로스를 꿈꾸며
미지의 소리 다음 원고를 모집합니다
다음 주제 : 내게 깊은 위안을 준 책
분량: 원고지 10장(2천 자) 안팎
마감: 2024년 10월27일(일) 밤 12시
발표: 제1537호
문의·접수 : leejw@hanien.co.kr
※ 응모시 메일 제목은 [미지의소리_이름] 기재, 메일 본문에 [핸드폰번호]를 반드시 기재 부탁드립니다.
원고료: 당선작 1편 10만원, 한겨레교육 마일리지 10만 점
※ 마일리지는 한겨레교육 모든 강의에 사용 가능합니다.
※ 마일리지 사용기한: 적립일에서 한 달 내
지난 당선작 : 내 인생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실패
어느 여름날, 밤하늘을 관측한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별을 관측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별자리 캠프’에 여름방학 때마다 참여했다. 봄철 길잡이는 처녀자리의 스피카고, 가을철 길잡이는 페가수스 사각형이고, 겨울철 길잡이는 오리온자리의 베텔게우스다. 계절마다 어떤 별자리는 지고 어떤 별자리는 떠오르는 것이 신기했다. 사실 별자리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지구가 공전하기 때문에 계절마다 볼 수 있는 별자리가 다르다. 나는 별이 가지는 환상을,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는 점을 좋아했다.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금성을 향해
그런데 이런 별보다도 더 보기 힘든 것이 있었다. 바로 비너스, 금성이다. 아름다움의 여신이라는 말에 걸맞게 금성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새벽이나 초저녁쯤에 간신히 수평선에서 볼 수 있다는 말만 캠프 선생님께 전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수업하는 도중 갑자기 나와 친구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수평선 쪽으로 망원경 초점을 맞추더니 우리에게 손짓했다. 그렇게 나는 금성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보던 흙빛의 금성 사진과 다르게 햇빛을 받은 금성은 무지갯빛으로 빛났다. 나는 그때부터 금성을 무지개 행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 무지개 행성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금성이 우주에 있어 지구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내게는 환상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 눈으로 무지개 행성을 봤을 때는 환상이 현실 공간으로 뛰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사람이 달의 뒷면에도 가보지 않은 현시점에서 금성에 간다는 건 얼토당토않은 얘기일 수도 있다. 금성은 태양과의 거리가 짧아 평균온도가 470도이고, 지구의 90배에 이르는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태양을 향해 날아올랐던 이카로스와 닮지 않았나. 나는 신기루 같은 무지개 행성인 금성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로스가 되고 싶었다. 금성은 내게 일종의 유토피아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사람도 자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 같다. 어느새 자란 나는 더 이상 고개를 들어 우주에 있는 금성을 보지 않게 됐다. 대신 적당히 고개를 기울이면 볼 수 있는 명동의 스카이트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야근 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명동의 모습을 보면서 현실을 자각했다. 사람은 금성에 닿을 수 없다. 금성에 가려고 한다면 이카로스처럼 날개의 밀랍이 녹아, 지구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반짝이는 저 수많은 빌딩 하나에 들어가고 싶었다. 한 50층쯤 올라가 세상을 본다면 내가 우주인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취업을 목전에 두니, 해야 할 일은 산더미같이 밀려 있었다. 수십 권의 자격증 문제집을 읽을 때, 나는 정해진 문제에 대답하는 어른이 됐다. 자기소개서를 몇 번이고 고쳐 쓰면서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에 나를 맞춰가야 했다. 금성에 가고 싶은 어른?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가 아닌데, 그저 나를 몽상가로 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선택지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다. 틀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나만의 길을 창조하는 사람이 되거나, 틀에서 조금도 빠져나오지 않는 사람이 되거나였다. 성공한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지구를 탈출해 우주에서 유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건 먼 미래였다. 지금 지구인 청년인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발붙이고 살 집과, 적어도 내 몸 하나는 건강하게 유지할 만한 재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이다!)라고 시니어들이 건네는 응원이 아니꼽게 들렸다.나는 꿈을 꾸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실패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다소 현실적이고 시니컬한 어른이 돼가는 와중에도, 나는 어느 순간 에스에프(SF)소설을 좋아하게 됐다. 원래부터 우주인이 되고 싶었던 가짜 지구인의 타는 목마름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테다. ‘이갑수, 이희영, 김초엽.’ 나와 같이 우주를 상상하는 이카로스들이 쓴 이야기를 읽으면서 심장이 뛰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사람이 마음에 깊이 간직한 꿈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우주를 곁에 뒀다. 일과가 끝나면 매일같이 하늘의 별을 보며 숨을 돌렸고, 우주를 배경으로 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보 작가라 더듬거리더라도 여러 단편작을 쓰면서 행복했다. 내가 쓴 이야기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한땀 한땀 이야기들을 모으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SF 작가가 되고, 또 금성을 배경으로 한 글을 쓰기 위해 금성에 여행을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꿈을 놓지 않으면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나는 여전히 취업 준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맞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꿈을 놓지는 않는다. 꿈은 동사라고 하지 않던가. 동사이기 때문에 정답이 없고 때론 이카로스처럼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꿈은 결국 나를 다시 날아오르게 하는 날개이자, 내 일부분이다. 내 일부분을 실패라고 여기는 생각들은 이제 벗어던지기로 마음먹었다. 무지개 행성인 금성, 멀리 있어도 진짜 있는 것이니까. 금성을 관측하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나는 멀리 있어도 진짜 존재하는 내 꿈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남진희 njinhee324@naver.com
선정하며―내 인생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실패
엠제트(MZ) 세대는 실패에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다. ‘한 번의 실패는 곧 나락’이라는 사회 분위기에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개인들의 성향이 더해져 생겨난 결과지만, 최근엔 이런 흐름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대학가의 실패 기념 주간 행사가 대표적이다. 이 기간에 성균관대 학생들은 자신의 실패 경험을 나뭇잎에 적어 ‘실패 나무’에 붙인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망한 과제’를 자랑하고, ‘실패 사진’을 공개한다. 카이스트에는 교수가 소장인 실패연구소까지 있다. 실패를 ‘과정’ 또는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실패를 통해 배우려는 문화를 앞장서 만들어보겠다는 MZ의 소망이 반영된 결과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보다는 ‘오히려 좋아’나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와 같은 밈이 대세인 걸 보면 실패에 대한 감수성이 바뀐 건 분명해 보인다.
‘미지의 소리’ 7회차 주제는 ‘내 인생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실패’다. 선정작을 쓴 남진희씨는 “꿈을 꾸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실패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 사연을 털어놓는다. 어릴 적부터 밤하늘 별을 관측하는 걸 좋아했던 그는 금성을 무지개 행성으로 여기며 금성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로스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금성에 가고 싶은 어른’은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다소 현실적이고 시니컬한 어른이 돼가는 와중에” 에스에프(SF) 소설을 좋아하게 되고 우주를 배경으로 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카로스의 꿈은 내 일부분”이며 “내 일부분을 실패라고 여기는 생각들은 이제 벗어던지기로” 한다.
생각해보면,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는 불가능한 꿈에 도전한 실패의 스토리다. 하늘을 날거나, 달 표면에 착륙하거나,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은 애초 불가능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들이다. “사랑이 깨어나는 곳에 어두운 폭군인 자아가 죽는다”는 프로이트의 문장을 가슴에 새기며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가진 ‘새로운 인간’을 꿈꿨던 체 게바라 역시 불가능한 꿈에 도전한 실패자다. 그 실패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장 폴 사르트르)이라고, “인류보다 좀더 진화한 인간”(시인 이산하)이라고 부른다.
김창석 한겨레엔 교육부문 대표·한겨레교육 미디어아카데미 강사
*미지의 소리: MZ는 어떻다, 뭐가 다르다… 이런 구구절절한 제삼자의 평가는 이제 그만해주세요. MZ 당사자가 말하는 MZ. 4주마다 글을 공모해 심사 뒤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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