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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사이즈 본드카, 애스턴마틴 DBX 707

조회수 2023. 2. 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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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을 한 탓인가. 심박동이 요동치고 손바닥도 축축하다. 숨을 고르고 다시금 오른발에 힘을 준다. 피스톤 여덟 개가 격렬히 움직이며 울부짖는다. 우레와 같은 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운다. 딸깍. 레브 리미터에 닿기 전 금속 패들시프트를 당겨 기어를 올린다. 일순간 시야가 좁아지며 주변 모든 것이 형체를 잃고 빠르게 흐른다. '침착하자, 침착해.' 폭발적인 가속에 전율이 번진다.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다시 한 번 업시프트를 한다.

메르세데스-AMG에서 공급받은 V8 4.4L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은 9단 습식 듀얼클러치 변속기와 짝을 이룬다. 2600rpm부터 90.0kg·m가 넘는 강력한 토크를 내뿜고, 6000rpm에서 최고출력 707마력을 쏟아낸다(AMG 역사상, 그리고 애스턴마틴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 힘이 워낙 세다보니 가속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빠르며, 다기통이 만든 생동감 넘치는 엔진음은 계속해서 속도를 올리고 싶게끔 만든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3.3초, 최고시속은 310km에 이른다. 경쟁차인 포르쉐 카이엔 터보 GT, 람보르기니 우루스 퍼포만테와 0→100km/h 가속은 같지만, 최고속도가 더 높다. 다시 말해 지구에서 가장 빠른 SUV다. 전기자동차 몇 대가 모기같은 소리를 내며 추월하더라도 대번에 앞질러 코를 납작하게 눌러준다(내연기관 만세!).

잘 나가는 만큼 제동도 강하다. 브레이크 페달을 지긋이 눌러주자 세 자리 수를 가르키던 속도계 바늘이 빠르게 고개를 떨구며 두 자리 수를 바라본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세상이 순간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앞코가 고꾸라질 법한 급감속에도 차체 전체가 고르게 가라앉는다. 예측 가능성이 풍부한 제동 덕분에 자신감이 붙는다. 가속 페달을 짓이기며 재가속한다.

크고 무거운 차체와 다르게 예리한 움직임은 감탄을 자아낸다. 기본형인 DBX 대비 60mm 넓어진 휠 트랙, 탄탄한 하체, 재빠른 토크 분배 덕분에 1700mm에 달하는 큰 키와 2.2t이 넘는 중량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굽잇길을 잽싸게 통과한다. 언더스티어가 날 듯한 상황에서도 진행 방향을 벗어나지 않는다. 안쪽 바퀴에 제동을 걸고 바깥쪽 바퀴로 힘을 보내 차체를 안정적으로 튼다. 이런 방식으로 다음 굽잇길도 기민하게 빠져나온다. 거구의 SUV인데, 몸놀림은 스포츠카처럼 날래다.

드라이브 모드 스위치를 돌려 스포츠+를 GT로 바꾸고 메뉴얼 모드를 해제하니 주행 질감이 확 달라진다. 23인치에 달하는 거대한 휠과 편평비가 낮은 타이어를 끼웠는데도 승차감은 안락하다. 노면 요철을 최대한 흡수하며 나아간다. 존재감을 과시하던 엔진도 숨을 고르며 부드럽게 회전한다. 조금 전까지 포효하던 SUV가 맞나 싶을 만큼 움직임이 차분하다. 동승석, 뒷좌석에 앉은 이의 목소리도 잘 들린다. 조용하고 편안해서 그런지 ‘장거리 여행을 떠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앉은 자세가 높아서 그런지 시야는 탁 트였다. 허벅지, 엉덩이, 허리를 감싼 헤드레스트 일체형 버킷 시트는 만족스러운 착좌감을 제공한다. 질 좋은 가죽으로 마감한 인테리어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센터페시아 위쪽에 애스턴마틴 전매 특허인 버튼식 기어를 얹고 한 가운데 가로형 디스플레이를 집어넣었다. 메르세데스-벤츠 구형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옥의 티. 그래픽 디자인은 조잡하고 메뉴 레이아웃도 직관적이지 못하다. 터치 역시 지원하지 않는다(이럴수가…). 내비게이션, 라디오 등 각종 기능을 사용하려면 센터 콘솔 바로 앞에 있는 낯익은 다이얼을 돌리고 눌러줘야 한다. 냉난방은 버튼으로 켜고 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완성도 높은 익스테리어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느낀 아쉬움을 달래주고도 남는다. 엔진 열을 식히는 보닛 에어덕트, 기존 DBX보다 넓은 라디에이터 그릴, 탄소섬유로 마감한 사이드미러, 휠 내부에서 빛을 발하는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다운포스를 높이는 리어 스포일러, F1에서 영감을 받은 더블 데크 리어 디퓨저, 그 아래에 자리 잡은 네 개의 배기관 등등…. 차기 본드카로 써도 될 정도로 그 모양새가 강렬하다(바버라 브로콜리양(007 시리즈 제작자) 어떤가요?).

운동 성능 하나는 지금껏 몰아본 영국차 중 제일이다. 덩치와 다르게 가속은 재빠르고 거동은 침착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소음을 키워 흥을 돋울 수도 있다. 옆, 뒷사람이 피로를 호소한다면? 주행 모드를 바꿔 팽팽했던 긴장감을 풀어주면 그만이다. 균형 잡힌 움직임에 마음이 혹한다. 삶에 영감을 주는 슈퍼 SUV이자 A와 B 지점을 오가는 매력적인 이동수단이다. 트렁크도 넓어 부피가 큰 짐을 싣고 다닐 수 있다.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지금까지 이런 애스턴마틴은 없었다.


FOR AMG 역사상, 애스턴마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엔진

AGAINST 벤츠 구형 소프트웨어로 완성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터치를 지원하지 않는다


평점 9/10


가격 3억1700만원

엔진 V8 4.0L 트윈터보

출력 707마력

변속기 9단 자동

성능 0→100km/h 3.3초

연비 7.0km/L

탄소배출량 323g/km


문영재 사진 한종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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