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일이 만난 사람 기획특집]오기선요셉장학회 필리핀 성지순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어려움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외롭고 가련한 고아들을/불쌍히 여기시어,/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주님을 믿으며/꿋꿋하게 살아가도록 해 주소서./또한 우리 모두/비록 작은 것이라도/서로 나눌 줄 아는/넉넉한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시고/외로움으로/사랑을 목말라하는 고아들을/위로와 사랑으로 감싸주게 해 주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필리핀은 인구 약 1억 2000만 명 가운데 80%가 가톨릭 신자이자 동양 최대의 가톨릭 국가이다.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배 영향을 크게 받은 나라이고, 7000 여 개의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인종도 에스파냐, 중국, 미국 혼혈계와 토착민으로 이루어져 있다. 필리핀의 가톨릭은 1565년 스페인이 세부섬을 정복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필리핀이 가톨릭 교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가톨릭 신앙이 필리핀의 고유문화와 어우러지면서 필리핀만의 특징을 갖게 되었다.

필리핀 중남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세부는 1512년 포르투갈의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처음으로 도착해 발견한 곳이다. 마젤란이 이 섬에 상륙하여 통치자와 족장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 이후 마젤란은 세부섬 가까이 있는 막탄섬에서 살해되었고, 세부시티에는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유물들이 있다. 북쪽으로는 비사얀해, 서쪽으로는 타논 해협, 남동쪽으로는 보홀 해협, 동쪽으로는 카모테스 해에 면해 있다 보니 비사얀 세부의 중심지로 음악, 의상, 느긋한 생활방식 등에 스페인의 전통이 깊이 남아 있다. 연속되는 낮은 화산성 구릉들을 사이에 두고 양분되며 상업적 사탕수수 재배지인 북단의 보고 평원을 제외하면 평지가 거의 없다. 항만시설이 거의 없고 주거지는 농경에 바탕을 둔 수많은 소규모 촌락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제조업은 주로 식품가공에 제한되어 있다.

필리핀 세부 막탄 섬의 카달루페 카루나산 중턱 성모마리아 대성당에 위치한 성모발현지이자 순례지이다.



세부 과달루페에 있는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과달루페 대교구 성지로, 이곳에는 세부시와 주의 수호성인인 과달루페 성모의 기적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세부 사람들의 과달루페 성모 신앙은 1880년부터이다. 성모상은 콜레라 전염병에 도움을 주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폭격과 화재에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고, 일본군 습격 때마다 산 언덕을 뛰어다니는 여인의 환영이 과달루페 성모라고 믿으며 신앙심은 더욱 깊어져 갔다.





필리핀 최초의 세례가 이루어진 장소이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세계 일주를 하던 중, 1521년 필리핀 세부에 도착해 제작을 지시한 3m 높이의 십자가이다. 필리핀 최초로 세례를 받은 세부의 추장 ‘라자 후마본’과 그 일족의 세례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예배당(팔각정) 천장에는 당시 왕족과 세부 시민의 세례 의식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기 예수'를 의미하는 산토니뇨(Sto. Nino)상이 수호신으로 보관되어 있는 성당으로 1500년대 스페인 총독인 레가스피에 의해 건축된 필리핀 최초의 성당이다. 194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현지인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성당이다. 매년 1월 셋째 주 일요일에 개최되는 세부 최대의 축제인 시눌룩 축제의 장소이기도 하다.




세부 막탄 섬 항구 옆에 위치한 산 페드로 요새는 마젤란이 막탄의 지도자인 라푸라푸에게 피살당하고, 그의 부하들이 스페인으로 돌아간 후 44년 뒤 원정군이 돌아와서 이슬람 등 외부 해적 세력의 침입을 막기 위해 1738년 경 (스페인 통치 시절)에 건축되었다. 이후 미국 식민지 시절에는 미군의 군 막사로 이용되었으며, 일본 식민지 시절에는 필리핀 포로군 수용소로도 이용되었다. 산 페드로 요새 내부에는 세부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도 마련되어 있다.

세부 라푸라푸에 위치한 마젤란 성지(Magellan Shrine)는 유럽에서 처음 필리핀에 온 포르투갈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을 기념하는 곳으로, 막탄 전투에서 사망한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근처에는 마젤란을 이긴 원주민 족장 라푸라푸의 동상도 있는데 검과 방패를 든 긴 머리의 근육질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그의 군대는 막탄 전투에서 스페인 침입자들을 격파했고, 라푸라푸는 식민 지배에 저항한 첫 번째 필리핀 원주민으로 여겨지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마젤란은 가톨릭 국가에 기독교를 가져온 것에 존경을 표하기도 하지만 식민지 개척자이자 국가적 영웅을 격파한 적이기도 하다.

루손섬 남서부에 있는 필리핀의 수도이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항만으로 일컬어지는 마닐라만(灣)에 임한 항구도시로 시가지는 파시그 강을 끼고 남북으로 펼쳐진다. 북쪽에는 비옥한 중부 루손 평야를, 남쪽에 남부 루손의 화산성 저지를 끼고 있다. 1571년 에스파냐 총독 레가스피가 점령한 이후 에스파냐의 식민지 지배의 근거지가 되었고, 그 후 19세기 중엽까지 마닐라의 '동양의 진주'로서 에스파냐의 대 아시아무역 거점이 되고 극동에서의 가톨릭 권력의 중추가 되기도 하였다.




마닐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은 스페인이 필리핀 제도를 점령했을 때 발전했다. 인트라무로스는 300년 이상 필리핀에서 스페인 지배의 중심지였다. 성벽 안에 있는 이 도시는 요새 시설로 둘러싸여 있는 주택과 교회, 학교들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의 이름은 '성벽 안쪽'을 의미하는 라틴어 '인트라(intra)무로스(muros)'에서 유래했다.



필리핀 마닐라의 인트라무노스(성벽도시) 내 로마광장에 있는 대주교좌성당이다. 가톨릭 포교의 중심지로서 에스파냐 식민지배시대인 1581년에 처음 건축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재건되었다.
처음에는 니파(nipa) 야자나무와 대나무로 지었는데 태풍과 화재로 부서져, 1592년 석재로 다시 지었으나 1600년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세 번째 건물은 1614년에 완공한 것으로 3개의 본당과 7개의 예배당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645년 마닐라를 휩쓴 지진으로 다시 무너졌다.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스페인 풍으로 설계한 최초의 유럽식 석조건물이다. 마닐라시 인트라무로스 내에 위치한다. 스페인의 점령 시대인 1587년에 착공하여 1607년에 완성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인트라무로스(Intramuros)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이 곳만은 남아있었다. 또 건축된 이래로 여러 차례의 대진에도 파괴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기적의 교회'라고 불린다. 필리핀에 있는 세 개의 다른 교회와 함께 '필리핀의 바로크식 성당'으로 1993년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어거스틴 성당 안쪽 마당에는 1973년에 세워진 성 어거스틴 박물관이 있다. 본래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서 성당의 역사와 필리핀 가톨릭의 역사를 소개하는 자료와 소장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과거 성당을 장식했던 프레스코화, 유화, 성가대석, 예배복 등 성당과 관련된 17~18세기의 다양하고 진귀한 골동품이 전시되어있다.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성당으로 기적의 블랙 나자렛(Black Nazarene)이 모셔져 있는 성당이다. 블랙 나자렛은 1606년 멕시코의 한 조각가가 만든 예수상을 필리핀으로 운반하던 도중 배에 화재가 나 예수의 얼굴이 검게 변한 데서 그 명칭이 유래했다. 여기서 나자렛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란 동네인 나자렛에서 비롯된 말로 나자렛 출신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 조각상은 마닐라에 들어온 후에도 수 차례의 지진과 화재,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 피해를 입었지만 훼손되지 않고 보전되어 기적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필리핀 사람들은 이 성상에 손을 대면 병이 치유되고 기적을 경험한다고 믿고 있다. 특히 매년 1월 9일에 블랙 나자렛을 선두로 시내 순례를 하는 축제를 하며 참가 인원이 필리핀 축제 중 가장 많기로 유명하다.



필리핀 마닐라 대교구에 속한 본당으로 430년 정도 되었다. 마닐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이며, 특히 유아세례와 혼배가 많이 이루어지는 본당이다. 말라떼 성당(Our Lady of Remedies Catholic Church)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리를 따르는 수도회의 선교사들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1588년부터 1624년까지 건설된 성당이다. 이후 지진과 태풍, 전쟁 등을 거치며 여러 번 파괴되었다가 1680년 석조 건물로 재건축을 거치고, 1762년 구조를 바꾸어 영국군의 기지로도 사용되었다. 일본의 필리핀 점령기에는 벽을 제외한 모든 구조물이 불타기도 하였다. 지금의 모습은 1950년에 재건축을 하면서 갖추어졌다.


김정수 신부는 아침미사 강론에서 “순교자들 은혜에 감사드리고,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린다”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자”고 말했다.

필리핀 마닐라 시내의 인트라무스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리잘공원은 독립운동가이자 의사, 언론인, 교육자였던 호세 리잘(Jose Rizal, 1861~1896)이 처형되었던 장소이다. 리잘은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필리핀의 독립을 주장하며 '필리핀 민족 동맹'을 결성하였다. 시민 불복종 운동, 자치운동을 앞세워 평화적 혁명 운동을 진행하였으나 스페인 총독부에 의해 내란 음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공개 총살형을 당했다. 그의 죽음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독립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리잘은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가 죽은 12월 30일은 필리핀의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리잘의 모습은 필리핀 1페소 동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공원 한쪽에 리잘의 처형 장면을 재현한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그의 유골이 안치된 기념비 앞에 24시간 4교대로 정부군 의장대 경비가 서 있다.

‘안녕히, 사랑하는 조국, 태양의 총애를 받는 땅이여, 동방 해상의 진주, 우리의 잃어버린 에덴동산이여! 나는 기쁘게 이 슬프고 우울한 삶을 그대에게 바치노니, 만일 그것이 더 빛나고, 더 신선하고, 더 꽃다웠을지라도, 나는 오직 그대의 안녕을 위해 그것을 바쳤으리라’
내부에 중국 정원을 비롯한 각종 테마 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필리핀 한국 우정의 탑도 있다. 공원 한쪽에 자리한 이 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필리핀 지역에 강제 동원되어 희생한 한국인들을 추모하고 만들어졌다. 한국과 필리핀 수교 60주년을 기념하고자 2010년에 세워졌으며 '추도와 평화 기원의 탑'으로 이름 붙었다.



필리핀 인트라무로스(Intramuros) 북서쪽에 위치한다. 에스파냐 초대 필리핀 총독인 레스가스(Miguel Lopez de Legazpi)를 위해 지어진 방어 요새이다. 에스파냐 군대의 본부였고 호세 리잘(Jose Rizal)이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되었던 곳이다. 파시그강(Pasig River)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이며, 일본군 점령기 동안 수 많은 필리핀인들이 이 곳에 수감되었다가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었던 많은 부분을 1950년대에 복구해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특히 요새 입구의 성벽을 정교하게 복원하였다. 스페인 시대에는 필리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고, 오직 부역자들만이 낮 동안 성 안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다 저녁에 성문 밖으로 쫓겨나곤 하였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약 40㎞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성 김대건 신부와 가경자(복자 전 단계, 시복 후계자) 최양업(토마스) 신부가 신학생 시절 마카오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마카오 신학교에서 필리핀으로 피신해 약 7개월간 머물렀던 곳이다. 신학생 최양업과 김대건은 1839년 4월 19일부터 11월 26일까지 필리핀에서 생활했으며, 그들은 스승인 칼르리, 데플레슈, 리브와 신부와 코친차이나(베트남 남부지역) 출신 신학생 3명과 함께 그해 4월 7일 마카오를 출항해 13일간의 항해 끝에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했다. 최양업과 김대건 필리핀살이는 마닐라와 롤롬보이 시절로 구분할 수 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중국 마카오에서 신학 공부를 하다가 중국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필리핀 마닐라로 와서 성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원에서 신학 공부를 계속하던 곳이다. 그 당시 농장이었던 이 자리를 발굴하기 위해 저의 대부 오기선 신부님은 오랫동안, 17차례나 이곳에 와서 조사하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증언도 듣고 철저히 조사하여 이 자리를 성지로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는 한국 천주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사에서도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다. 202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될 만큼 그 업적과 정신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김대건 신부는 충남 당진의 솔뫼성지에서 독실한 천주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부터 아버지까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순교자의 가문'이었다.
* 마카오 유학: 15세의 나이에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프랑스 신부들의 인도로 마카오로 건너가 서구 학문과 신학을 공부했다.
* 최초의 신부: 1845년 상하이 금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신품 성사를 받아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신부가 되었다.
* 귀국과 활동: 사제가 된 후 라파엘호를 타고 서해를 건너 귀국하여, 비밀리에 포교 활동을 펼치고 선교사들의 입국 통로를 개척했다.

김대건 신부는 선교사들을 위한 해로를 취재하던 중 체포되었다. 당시 조선 조정은 그의 박학다식함과 외국어 실력에 감탄하여 회유하려 했으나, 그는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 새남터 순교: 1846년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25세의 젊은 나이에 군문효수형(군대에서 목을 베어 매달던 형벌)으로 순교했다.
* 마지막 편지: 옥중에서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부디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며 주님께서 우리를 가련히 여기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라는 절절한 당부가 담겨 있다.

김대건 신부는 단순한 종교인을 넘어, 근대적 사고를 지닌 지식인이기도 했다. 언어의 천재로서 라틴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에 능통하여 동서양 문화의 가교 역할을 했다. 그는 한국 지명을 라틴어로 표기한 '조선전도'를 제작하여 서구 사회에 조선을 알렸고, 독도가 한국 땅임을 명기했다. 또 신분제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을 실천했다.

2021년, 유네스코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를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했다. 이는 그가 남긴 '인류애'와 '평등 정신', 그리고 교육과 학술에 기여한 공로가 특정 종교를 넘어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대건 신부와 관련된 유적지로 당진 솔뫼성지와 경기도 안성 미리내성지 등이 있다.

천주교 수원교구의 성 안드레아 수녀회에서 2002년 8월에 인수한 한국인 수녀님들이 운영하고 있는 성당이다. 이 성당은 실제로 김대건 신부님이 머무셨다는 성지로 요세피나 원장 수녀를 비롯한 한국인 수녀님과 필리핀 수녀님이 계신다. 롤롬보이 본당에는 수녀님들이 머무는 공간과 침묵 기도를 위한 장소, 봉헌소, 7층탑, 필리핀으로 성지순례 오시는 분들을 위한 피정의 집도 있다.



이 곳에서 5분 거리에 떨어진 곳에 김대건 신부를 주보로 모시고 있는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이 있다.


맥도날드 사거리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새로 지은 성당은 필리핀 신부님이 김대건 신부님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음성에 있는 꽃동네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필리핀 마닐라 타그기(Taguig)시티의 보육원인 '사랑의 집'은 1996년 봉헌되어 현재까지 30년 동안 155명의 아이들이 거쳐 갔다. 현재는 예수의 꽃동네형제회 심효보 안드레아 수사가 올해로 16년째 26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사랑의 집에 온 아이들은 부모가 없거나 오갈 데가 없어 거리에서 노숙과 구걸을 하며 끼니를 때우며 살았다. 힘든 어린 시절을 겪은 아이들은 안드레아 수사의 보살핌 속에 살아가고 있다. 심효보 안드레아 수사는 21살 때 여느 대학생처럼 대학 생활을 즐기며 군 입대를 앞둔 무렵,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 받아 삶아 6개월 밖에 안 남았다는 시한부를 선고 받는다. 눈앞에 닥쳐온 죽음을 느끼며 옆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며 무섭고 두려웠던 그는 매일 신에게 기도했다.
"만약 한 번 더 삶이 주어진다면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던 것인지 기적처럼 두 번째 삶을 얻은 그는 '안드레아'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고 오늘을 산다.

안드레아 신부는 “사랑의집은 올해 12월 설립 30주년을 맞게 된다”며 “부모 없는 아이들이 밖에서 마약과 폭력에 노출돼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이 곳 사랑의 집에 와서 보살핌을 받고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는 모습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루손섬 남부 라구나주(州) 카빈티(Cavinti)의 카빈티강에 있는 폭포이다. 마그다피오 폭포(Magdapio Falls)라고도 한다. 소도시인 팍상한은 국유지에 위치하여 높이는 91m이다. 주도(州都)인 산타크루스에서 가까우며, 마닐라에서 남동쪽으로 100㎞ 떨어져 있다. 900m 아래쪽에 있는 탈라히브 폭포(Talahib Falls)에서 배를 타고 깊은 계곡을 지나 한 시간 정도 가면 나온다. 폭포 바로 뒤쪽에 있는 악마의 얼굴 모습을 한 악마동굴(Devil’s Cave)에 들어가면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진다.


오기선 요셉장학회 이름으로 필리핀 세부와 마닐라 성지와 김대건 신부 피난 성지 롤롬보이 성당 순례를 안전하게 마침에 감사드리고, 순례자들이 내주신 미사 예물로 김대건신부 성지 롤롬보이와 마닐라 꽃동네 사랑의집 아이들에게 치약, 칫솔, 세면비누 등을 전달하고 오기선요셉장학회 이름으로 후원금을 기탁하고 올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제 대부 신부님인 오기선 요셉 신부님이 성인품에 오르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저의 꿈이다.

오기선요셉장학회원들께서 이번 순례에 많은 도움을 주셔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외롭고 어려운 고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며, 공부하기를 원하는 고아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많은 은인들의 후원과 사랑을 부탁드린다.
필리핀 세부, 마닐라, 롤롬보이에서 한성일 편집위원(이사) hansung007@
Copyright © 중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