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이 그리워.. 유배지서 만든 '조선판 미슐랭'[미식가의 세계]①
그의 일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하다. 그는 동인의 영수이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허엽의 3남으로 태어났다. 형들인 허성과 허봉도 당대의 인물들이며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누이는 그 유명한 여류 시인 허난설헌이다. 25세에 과거 급제하여 황해도도사, 삼척부사, 공주목사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가는 임지마다 기생을 데리고 다녀 수차례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탄핵되고 파직 당했으며, 심심치 않게 유배를 가기도 했다. 불교를 배척하던 시대에 관아에 불상을 모시고 예불을 올리다 벼슬에서 쫓겨나기도 했고, 양반가의 서출들과 가까이 지냈으며 심지어 천민출신 시인 유희경과도 교류하였다. 유교문화가 지배하던 당시에는 용납이 안 되는 행동이었다. 허균은 ‘호민론(豪民論)’에서 “천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오직 백성뿐, 정치의 목적은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또 ‘유재론(遺才論)’에서는 “서얼이라 해서 능력 있는 인재를 수용하지 않는 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개혁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뛰어난 문장가이자 사상가였으나 정치는 문외한
1610년에는 과거의 시험관이 되어 채점을 하면서 자신의 조카와 조카사위를 부정 합격시켰다는 혐의로 사헌부에서 탄핵 당했다. 그런 굴곡을 겪으면서도 허균은 꾸준히 승진하여 벼슬이 형조판서, 예조판서, 의정부좌참찬과 우참찬에 이른다. 게다가 그의 딸은 세자의 후궁까지 되었으니 광해군과 사돈이 된 셈이었다.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다고는 하나 더 큰 화를 자초할 인목대비 폐모론에 적극 찬성하였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역모와 흉서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리다 자신의 후견인격이었던 이이첨과도 관계가 악화된다. 결국 그는 “포악한 임금을 치러 하남 대장군 정모가 곧 온다…”는 내용의 남대문 벽서를 사주한 주범으로 지목되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된 것이었다.
허균의 일생을 되짚어보면 그는 뛰어난 문장가이자 사상가이기는 했으나 자유분방한 성품 탓에 정치에는 별로 자질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한 부족함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불행이 오늘날 그의 모든 과오를 덮을 수 있는 업적을 남기는 계기가 될 줄은 허균 자신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허균은 1611년 과거부정사건으로 인해 전라도 함열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조선 최초의 음식품평서라 할 수 있는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집필한다. 그의 문집인 ‘성소부부고’의 한 귀퉁이에 붙어있는 짧은 글이지만 그는 그것을 통해 조선최고의 미식가이자 음식평론가로 거듭난다. 마치 400년 후에 조선 땅에서 꽃을 피울 먹방, 쿡방 문화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의 음식에 대한 애정과 탁월한 미각은 천부적인데다 또 길러진 것이기도 했다. 허균은 도문대작의 서문에 “선친이 생존해 계실 적에는 사방에서 나는 별미를 예물로 바치는 자가 많아서 나는 어릴 때 온갖 진귀한 음식을 고루 먹을 수 있었다. 벼슬길에 나선 뒤로는 남북으로 전전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나는 별미를 모두 먹어볼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초당두부를 고안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의 아호가 초당이다.
도문대작은 전국 8도의 식품을 병이 지류(떡과 과자종류), 과실지류, 비주지류(고기류), 해수족지류(어패류), 소채지류, 서울의 시식 등으로 나누어 다양한 식품을 소개하고 있다. 내용 중에는 곰 발바닥과, 표범의 태, 사슴의 혀와 꼬리는 어디, 어느 고장 것이 맛있다는 소개까지 나와 있을 정도이다. 당시 자신이 접하는 음식이 변변치 못하니 기억을 더듬어 상상력과 글로라도 즐기겠다는 심사이다. 허균의 성정과 재능이 엿보이는 저술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도문대작을 통해 음식문화평론가로서 빛나는 지식과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허균의 음식에 대한 지식은 너무나 해박하다. 도문대작의 서문은 “먹는 것에 너무 사치하고 절약할 줄 모르는 세속의 현달한 자들에게 부귀영화는 이처럼 무상할 뿐이라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다.”고 마무리된다. 지금도 울림이 있는 구절이다.
강경록 (r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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