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속에 팬들이 줄을 선 이유! 이재성이라는 선수

11월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 남측 매표소 앞.

한기가 감도는 칼바람이 부는 저녁이었지만,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경기장에 바로 들어가면 될 텐데도 많은 이들이 발길을 멈추고 줄에 섰다. 모바일 티켓으로도 입장이 가능했지만, 그럼에도 굳이 지류 티켓 교환 부스를 선택했다.

이재성 때문이었다.

센추리클럽 달성을 기념한 스페셜 지류 티켓이 발급된다는 소식에 팬들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재성의 가치와 상징성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나 역시 줄에 서서 스페셜 티켓을 손에 넣은 뒤, 생각에 잠겼다.

이재성(마인츠).

그를 한 문장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오래 고민한 끝에 내려본 결론은 이것이었다.

꾸준함과 헌신으로 팀을 살리는 조용한 핵심.

그동안 직접 만나보고 지켜본 그의 축구 인생이 바로 그 문장과 닮아 있었다.

#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K리그를 평정하다

2014년 시즌을 앞두고 전북 훈련장을 방문했다. 관계자는 나를 불러 말했다.

“이 기자, 저 친구 한번 잘 봐. 17번. 정말 물건이야.”

그 말대로 17번 이재성에게 눈이 갔다. 이미 브라질 전지훈련에서 8경기 3골·2도움을 기록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첫인상은 솔직히 말해 다소 의구심이 들었다. 당시 K리그는 더욱 거칠고 빠른 리그였고, 이재성의 피지컬은 그에 비해 약해 보였다. 강한 수비와 몸싸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전북이라는 ‘스타군단’ 속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이런 걱정들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재성은 첫 시즌부터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36경기 5골·5도움.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2015년 2골·9도움(44경기), 2016년 4골·17도움(48경기), 2017년 8골·10도움(28경기).

이재성은 전북을 넘어 K리그 전체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그를 유망주에서 스타로 끌어올린 가장 큰 힘은 '축구 지능'이다.

전술 이해도가 높고, 한 수 앞을 내다보는 플레이가 일품이다. 피지컬의 열세는 영리함과 창의성으로 극복했다. 여기에 왕성한 활동량이 더해졌다. 풀타임 기준 12~13km를 뛰는, 미드필더 중에서도 손꼽히는 ‘움직임의 미학’을 보여줬다. 압박·커버·간격 유지 등 팀에 보이지 않는 힘을 공급하는 선수였다.

사진출처=프로축구연맹

# 의외의 선택, 그러나 탁월한 선택 — 홀슈타인 킬

2018년 여름, 이재성은 뜻밖의 선택을 한다.

분데스리가1도 아닌, 분데스리가2의 홀슈타인 킬행. 규모가 크지 않은 팀이었고, 그들이 지불한 약 90만 유로는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였다.

당시 전북에서 약 8~9억 원 수준의 연봉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이재성은 연봉을 크게 낮추는 결정을 내렸다. 업계에서는 “절반 이상 줄였다”는 말까지 돌았다.

그 모든 이유는 단순했다. 유럽에 가고 싶었기 때문.

2018년 9월, 독일 킬에서 그를 만났을 때 직접 물었다.

“왜 편안한 환경과 보장된 연봉을 포기했나요?”

그는 잠시 웃더니 말했다.

“딱 한 가지였어요. 유럽에서 뛰고 싶었습니다. 불러주는 팀도 많지 않았지만, 저를 원한 팀이 킬이었어요. 그래서 왔어요.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이재성은 홀슈타인 킬에서 104경기 23골·25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상징’이 됐다. 승격 문턱에서 좌절되기는 했지만, 포칼 4강 진출 등 클럽 역사에 남을 활약을 펼쳤다.

이후 여러 팀의 러브콜 끝에 2021년 마인츠로 이적했고, 지금은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꾸준한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K리그 시절보다 더욱 간결하고 효율적인 플레이를 익혔다. 피지컬이 강한 유럽 무대에서는 볼을 끄는 순간 탈취당하기에, 원터치 패스와 오프 더 볼 움직임을 완성도 있게 끌어올렸다.

오늘날 그를 향해 나오는 평가.

“박지성급 활동량에 이청용급 센스”

이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 겸손한 영웅

이재성은 셀 수 없는 미담을 남겼다.

전북 시절, 최강희 감독은 선수들에게 가끔 짧은 휴가를 줬다. 대부분 집으로 향했지만, 클럽하우스에 남아 개인 훈련을 하는 선수 한 명이 있었다. 바로 이재성이었다.

“집이 멀어서 다녀오면 더 피곤해요. 운동하고 쉬는 게 더 좋아요.”

이 한마디가 그의 성실함을 설명해준다.
수상 소감도 늘 같았다.

“팀 동료들과 스태프들이 있었기에 받을 수 있는 상입니다.”

말뿐이 아니라 프런트와 스태프들에게 직접 선물을 챙기며 성의를 표현했다.
전북의 식사를 책임지는 ‘이모님들’에게도 그는 각별했다. 독일에서 뛰는 지금도 한국에 들르면 빠지지 않고 찾아가 인사를 드린다.

독일에서도 팬서비스는 변함이 없다. 경기장 밖에서 팬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이재성 관련해서는 이상하게도 ‘미담’만 들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대한축구협회

# 홍명보호의 핵심 키

이재성에게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15년 A대표팀 데뷔 이후 10년 동안, 그는 늘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지난 브라질전에서는 A매치 100경기를 채우며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
홍명보호에서 이재성의 역할은 독보적이다.

그는 측면과 중앙을 자유롭게 오가며, 다양한 전술적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선수다. 옆으로 벌려 크로스를 돕거나, 중앙 침투로 뒷공간을 공략하며, 손흥민·오현규·조규성 등을 향한 날카로운 스루패스도 자주 보여준다.

최근 대표팀이 스리백 전술을 꾸준히 시도하는 상황에서, 이재성은 그 전술의 균형을 잡는 핵심이다. 윙백이 공격에 가담할 때 생기는 공간을 메우는 보조 움직임은 경험과 지능이 없으면 해내기 어렵다.

홍명보호의 경기 내용은 이재성의 유무에 따라 체감될 정도로 달라진다.

오늘 밤, 그는 103번째 A매치를 치른다.
가나전에서 또 한 번 조용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