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DJ 사저 ‘국가문화유산’ 추진 급물살…매입자, 마포구와 손잡아
마포구→서울시→유산청 심의 거쳐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 여부 결정
김대중재단과의 매매 협상에 난항 겪은 박 대표 “국민적 유산 보존하고자”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울 동교동 사저를 100억원에 매입한 박천기 퍼스트커피랩 대표가 마포구와 손잡고 사저의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한다. 마포구는 소유주인 박 대표의 동의를 확보한 만큼 최대한 빠른 시일 내 DJ 사저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박 대표는 10월30일 오후 3시 마포구청에 DJ 사저의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동의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 범위는 △ 역사·문화·예술·사회·경제· 종교·생활 등 각 분야에서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 △ 지역의 역사·문화적 배경이 되며 그 가치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 등이다.
앞서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10월21일 국가유산청을 찾아 한국 근현대사에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닌 동교동 사저를 임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해줄 것을 촉구하는 공문을 전달했다. 그러나 박 대표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는 마포구를 비롯해 서울시, 국가유산청이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후속 절차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근현대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근현대문화유산 소유자가 아닌 기관 또는 개인이 국가문화유산 등록을 신청할 경우에는 소유자의 동의서를 반드시 제출하게 돼 있다.
이번 동의서 제출은 박 대표 역시 동교동 사저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데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다.
박 대표 "더 이상 논란의 대상 되지 않길"
박 대표는 시사저널에 "DJ 사저 매입과 민간 기념관 프로젝트 추진은 상업적 목적이 아닌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국민적 유산을 보존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시작한 것"이라며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공적 추진이 어렵다는 점에서 DJ 사저를 국가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마포구에 동의서를 제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사의 선의와 자선적인 취지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이해관계자들의 협력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김대중재단 및 관계자들,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동교동 사저를 영구히 보존하고자 하는 진심을 전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을 위한 동의서) 신청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산을 올바르게 기리기 위한 진정한 노력이며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며 "이 장소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으로 영원히 기억되길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사저 매입 후 '김대중 다이얼로그(Dialogue·대화)'를 콘셉트로 한 기념관으로의 재탄생을 준비해오다 지난달 김대중재단과 재매각 협약서를 체결하면서 프로젝트 진행을 중단했다. 재단은 협약 이후 구체적인 매매 계약 완료 시점을 확정하지 못한 채 우선적으로 사저 원형 보존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포구와 박 대표의 구상대로 DJ 사저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 되더라도 기념관 개관은 가능하다. 지정문화유산과 달리 등록문화유산은 '활용을 통한 보존'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어서다.
마포구는 소유주의 동의서를 접수한 후 DJ 사저 보존 및 관리, 활용계획서, 검토의견서 등을 첨부해 서울시에 제출할 계획이다. 향후 서울시가 서류를 접수하면 조사보고서와 함께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DJ 사저를 근현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는다. 시 심의를 통과해 국가유산청에 신청서가 접수되면 유산청 내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다시 한번 거쳐 동교동 사저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 여부가 확정된다.
"평화 위해 헌신한 韓 최초 노벨상 수상자, 역사적 가치 높아"
DJ 사저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데 걸림돌로 지목돼 온 관련법이 지난 9월을 기점으로 개정 시행됐고, 현재 소유주인 박 대표가 동의를 표한 만큼 지정 절차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희호 여사 별세 후 사저 단독 소유자가 된 김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전 의원은 2020년 서울시에 사저의 문화재 등록을 신청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신축 공사 영향으로 '준공 후 50년이 지나야한다'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고, 상속세 미납으로 근저당까지 설정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현재는 법 개정으로 50년 미만 건축물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으면 문화유산 지정이 가능하다.
여기에 국민의힘 소속인 박 구청장과 오세훈 서울시장도 사저 보존을 위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물꼬가 트였다.
특히 박 구청장은 "김 전 대통령은 정치적 견해나 이념을 떠나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헌신한 분"이라며 "동교동 사저는 대한민국 민주화와 평화의 상징으로 역사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강조했다. 마포구는 앞으로 DJ 사저 원형 보존을 비롯해 '김대중길' 조성과 각종 지원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 시장도 최근 진행된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DJ 사저 문화유산 지정과 매입 가능성에 대해 "정부와 함께 협업하는 방법이 있고, 서울시 단독으로 하는 방법이 있는데 어느 방향으로 갈지 지금은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DJ 사저 재매입을 위해 박 대표와 협약서를 체결한 김대중재단도 이번 결정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배기선 재단 사무총장은 "국가문화유산 등록이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힘을 보탤 예정"이라며 "이와 별개로 재단의 사저 재매입 추진은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저 재매입을 추진 중인 재단은 올해 연말까지 매매 계약금을 선확보한 뒤 각계각층으로부터 모금을 전개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나 마포구가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 이후 별도 예산을 확보해 박 대표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는 절차를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마포구는 사저 매입을 위한 지원조직을 구축하고 예산을 비롯한 전반적인 검토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상속세 17억원을 감당하지 못해 100억원에 사저를 매각한 김홍걸 전 의원도 마포구와 박 대표의 국가문화유산 등록 추진 내용을 전달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김대중재단이 사저 재매입 추진을 공식화 한 후에도 김 전 의원으로부터 매각 대금 일부를 기부하겠다는 등의 의사 표시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남양유업 ‘오너리스크의 그림자’, 아직 안 걷혔다 - 시사저널
- 이번엔 뇌물 혐의…연이은 악재에 휘청이는 SM그룹 - 시사저널
- 카드사 건전성 개선세인데…우리카드만 연체율 오른 이유는 - 시사저널
- [단독] 새마을금고 이사장 뽑는 데 490억원…위탁선거 괜찮나 - 시사저널
- “내가 뭘 잘못했나”…김건희 여사 ‘읍소전화’ 받았단 野대표 누구? - 시사저널
- 홍원식 전 회장, 남양유업 대주주 한앤코 대표 사기죄 고소 - 시사저널
- ‘성장률 0.1% 쇼크’ 기준금리 더 내릴까 - 시사저널
- [단독] “김정은, 러시아에 파병 대가로 1년간 7200억 받는다” - 시사저널
- 선거철마다 ‘불법 여론조사’, 명태균의 일그러진 행적들 - 시사저널
- 석유 ‘수요 피크’는 올 것인가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시사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