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부부가 모르는 것 한가지 [강준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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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들이 저지른 과오들엔 그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한번은 큰 배신이나 사기를 당할 수도 있지만, 세번 연달아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이라면, 속된 말로 타고난 봉 체질이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그의 메시지는 역사란 무슨 거창한 사건과 명분만이 아니라 매우 사소하게 시작된 일이 야기한 집단적 감성의 폭발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바뀔 수 있다는 것, 사소하게 여긴 명품 백 하나가 윤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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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역대 대통령들이 저지른 과오들엔 그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국민의 입장에서 결코 용납할 수는 없어도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예컨대, 탐욕에 이성이 마비되어 저지른 범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탐욕 때문에 몰락한 지도자들이 무수히 많았기에 개탄은 할망정 왜 그랬는지 몹시 궁금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정치는 정치학의 영역을 탈출해 정신분석학의 영역으로 성큼 들어서고 말았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를 임기 초부터 계속 보여주고 있는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와 그가 무슨 일을 하건 우상처럼 숭배하기만 하는 대통령 윤석열의 경우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왜 그들은 한사코 일관되고 집요하게 자신들을 망치는 자해를 일삼으면서도 그걸 전혀 모르고 있는 걸까? 왜 대통령 측근 인사들은 대통령 부부는 물론 나라까지 망치는 그런 엽기적 자해를 구경만 하고 있는 걸까? 단지 윤석열의 격노가 무섭기 때문인가?
지난 17일 한국의 대표적 보수 논객들은 칼럼을 통해 일제히 ‘김건희 체제의 종언’을 요구하고 나섰다. 보수마저 이제 더 이상 김건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나선 셈이어서 의미심장하다. 이제 막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명태균 게이트’가 드디어 컵의 물을 넘치게 한 마지막 한방울이었을까?
“국민들이 언제까지 여사의 이런 처신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대통령실이 2류, 3류들에게 농락당한 장면을 목격하면서 구정물을 함께 뒤집어쓴 느낌이다.”(조선일보 논설주간 김창균) “공직 활동도 부인이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나라가 무너질 일이다. 그러니 선임행정관이 대통령을 꼴통으로 여기고…”(동아일보 대기자 김순덕) “국민의 인내심이 임계치에 달해서다. 윤 대통령은 나라와 부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김건희는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남편을 챙겨주기 위해 대통령 업무에 이런저런 개입을 했다는 의혹을 받게 된 걸까? 그러나 최근의 마포대교 공개 시찰 논란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어떻게 하겠다거나 “저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끊어지면 적극적으로 남북문제 (해결에)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던 걸 보면 이른바 ‘대통령 놀이’에 심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럴 자격이 있는가? 법적 자격만을 묻는 게 아니다. 무례하게 들릴망정 진실을 말해보자. 김건희는 다른 일에선 영악할지 몰라도 정치적 언행에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리숙하고 경솔하다. 김건희와 사적으로 나눈 말이나 문자를 폭로해 정치판을 요동치게 만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탓할 필요는 없다. 한번은 큰 배신이나 사기를 당할 수도 있지만, 세번 연달아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이라면, 속된 말로 타고난 봉 체질이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공적 업무를 맡아선 안 된다.
윤석열 부부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 말이다. 민주당의 대통령 탄핵 공세가 사납게 전개되던 지난 8월 조선일보 논설실장 박정훈은 “민주당 기준대로라면 문재인 정권 5년간 탄핵을 정치 쟁점화할 기회가 수두룩했지만 당시 야당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며 “‘박근혜 탄핵’의 피 맛을 보았던 민주당 눈에는 참으로 순진하게 보였을 것이다”라고 했다.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건 문 정권과의 그런 비교를 통해 탄핵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는 윤석열 부부의 생각이다.
그래서 지난 1월 중순에 나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김경율의 경고를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으로 환원시켜 펄펄 뛰었을 게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그의 메시지는 역사란 무슨 거창한 사건과 명분만이 아니라 매우 사소하게 시작된 일이 야기한 집단적 감성의 폭발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바뀔 수 있다는 것, 사소하게 여긴 명품 백 하나가 윤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대중은 권력의 ‘나쁨’보다는 ‘어리석음’에 더 분노하며 폭발하는 법이다. ‘박근혜 탄핵’을 복기해보라. 폭발의 티핑포인트는 최순실이 박근혜의 연설문을 미리 받아 보고 첨삭했다는 사실을 밝힌 제이티비시(JTBC)의 ‘최순실 태블릿 피시(PC)’ 특종 보도였다. 윤석열 부부는 지금 그때와 매우 비슷한 분위기와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비판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호소다. 더 이상 탄핵을 재촉하지 말고, 국민께 사죄하면서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를 완전히 끝장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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