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와 기대가 있었는데...결국 언론시사회서 기자들이 운 신작 韓영화

영화 '인턴' 리뷰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2015년 작 할리우드 영화 ‘인턴’은 로버트 드 니로와 앤 해서웨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의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앙상블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현대 직장인 판타지의 정점이었다.

성공한 30대 여성 CEO와 인생의 황혼기에 시니어 인턴으로 돌아온 70대 신사의 만남은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지혜와 따스한 우정으로 수많은 관객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적 정서와 극단적인 세대 갈등, 그리고 가파른 직장 문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한국판 리메이크 ‘인턴’이 언론 시사회를 통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메가폰을 잡은 이는 영화 ‘82년생 김지영’과 ‘만약에 우리’를 통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내밀한 상처와 관계의 결을 집요할 정도로 섬세하게 포착해 온 김도영 감독이다.

김 감독의 손을 거친 한국판 ‘인턴’은 원작의 경쾌하고 세련된 할리우드식 코미디 문법을 일정 부분 덜어내는 대신, 지극히 현실적이고 뼈아픈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스크린 위에 정교하게 직조해 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텍스트의 중심축이 이동한 방향성이다.

원작이 ‘일과 가정을 완벽히 양립하려는 워킹맘의 분투’와 ‘멘토의 품격 있는 지혜’에 초점을 맞췄다면, 김도영 감독의 ‘인턴’은 갈수록 커리어 우먼의 사회적 진출과 고뇌가 심화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이 온전한 주체로서 어떻게 자아를 확립해 나가는가에 훨씬 더 깊은 시선을 둔다.

빠르게 변하는 스타트업 생태계 속에서 매 순간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젊은 여성 리더의 고립감은 한국 관객들에게 너무나 익숙하고도 쓰라린 풍경이다.

여기에 더해, 급격한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음에도 설 자리를 잃고 사회적 유대에서 밀려난 은퇴 후 실버세대의 고단한 현실이 맞물린다.

영화는 이 이질적인 두 세대가 하루 8시간 이상 부대껴야 하는 한국식 직장 문화라는 무대 위에서 충돌하고, 서로의 결핍을 바라보며 연대의 손을 내미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파고든다.

작품을 압도적으로 지탱하는 힘은 단연 배우들의 대체 불가능한 연기력에서 비롯된다.

시니어 인턴으로 분한 최민식과 젊은 스타트업 대표를 연기한 한소희의 만남은 기획 단계의 우려와 호기심을 완벽한 확신으로 뒤바꿔놓았다.

두 사람의 호흡은 기대 이상을 넘어 스크린을 꽉 채우는 밀도 높은 화학작용을 발휘한다.

원작의 로버트 드 니로가 정돈된 수트와 클래식한 손수건으로 대변되는 세련되고 낭만적인 노신사의 멋을 보여줬다면, 최민식은 우리네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질곡의 현대사를 묵묵히 버텨온 한국적 아버지의 곰삭은 온기와 깊은 주름의 미학을 탁월하게 길어 올렸다.

한소희 역시 겉으로는 차갑고 빈틈없는 프로페셔널이지만, 속으로는 세간의 편견과 실패에 대한 공포로 바스러질 듯 위태로운 청춘의 불안을 날 선 눈빛과 미세하게 떨리는 호흡으로 처연하게 그려내며 배우로서 한 단계 더 성숙한 도약을 증명했다.

원작과의 가장 결정적인 정서적 차이는 두 주인공의 관계 역학에서 발생한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앤 해서웨이가 세대를 초월한 지적인 파트너이자 담백한 우정의 형태를 띠었다면, 최민식과 한소희의 관계는 그보다 훨씬 더 진하고 애틋한 ‘한국형 유사 부녀’의 정서로 나아간다.

이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자 직장 동료이지만, 서로를 지켜보는 시선 속에 담긴 깊은 긍휼과 연민을 통해 혈연보다 더 끈끈하고 숭고한 유대감으로 발전한다.

비록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구체적인 정황을 밝힐 수는 없으나, 러닝타임 후반부 최민식과 한소희가 오롯이 서로의 내면을 마주하며 정서적 교감을 터뜨리는 특정 대목은 객석 곳곳에서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게 만들 만큼 거대한 감정의 파고와 울림을 선사한다.

그 순간 최민식의 담담한 눈빛과 한소희의 무너져 내리는 표정이 건네는 위로는 단순히 극 중 인물들만의 화해를 넘어, 오늘날 각자도생의 팍팍한 삶 속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상처 입은 이 땅의 모든 젊은 세대의 등을 가만히 토닥여주는 기적 같은 치유의 순간으로 다가온다.

주연들의 눈부신 앙상블 외에도 조연들의 탄탄한 존재감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촘촘히 메운다.

특히 최민식과 함께 은퇴 후 실버세대의 삶과 고충을 대변하는 인물로 분한 김금순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오랜 세월 가사와 노동에 헌신했으나 사회적으로는 투명인간처럼 취급받는 노년 여성의 쓸쓸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생명력을 절제된 연기로 표현해 내며 서사의 현실적 무게감을 배가시킨다.

여기에 트렌디한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야근과 성과 압박에 시달리는 다채로운 개성의 2030 청년 직원들까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국 직장 사회의 생생한 공기를 극장 안으로 고스란히 끌어들인다.

영화의 톤 앤드 매너 전반에는 김도영 감독 특유의 연출적 인장이 짙게 배어 있다.

‘82년생 김지영’에서 보여주었던 한국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과 ‘만약에 우리’에서 입증했던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선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시선이 이번 ‘인턴’에서도 오롯이 발휘된다.

감독은 원작이 지녔던 다소 동화적이고 무결한 ‘가족주의적 봉합’ 대신,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주목하며 여성의 진정한 주체성과 자아 찾기라는 화두를 전면에 밀어붙인다.

조직과 사회, 그리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억압을 걷어내고, 스스로 온전한 주체로 서는 과정을 지지하는 결말부는 김도영 감독다운 뚝심 있는 선택이다.

물론 이러한 노선 변경은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다.

원작 영화가 주었던 특유의 안락하고 균형 잡힌 가족적 화해와 전통적인 홈드라마의 훈훈한 봉합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이번 한국판의 현실적인 결단과 결말부가 다소 낯설거나 묵직한 아쉬움으로 다가올 여지도 있다.

원작이 선사했던 가볍고 경쾌한 힐링 코미디의 리듬을 한국적 현실의 무거운 질감으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필연적인 간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5년의 원작으로부터 10여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고,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정서적 지형과 노동 환경이 할리우드의 낙관론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변주는 지극히 타당하고도 영리한 재해석이다.

세대 갈등의 골이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진 이 시대에, 혈연을 뛰어넘은 깊은 공감과 애정으로 서로를 구원하는 두 세대의 조화는 어쩌면 영화가 꿈꿀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비현실적인 순수함이 역설적으로 가장 진한 현실적 위로가 되어 가슴을 친다. 시대의 변화와 한국적 토양의 결을 정면으로 수용해 훌륭한 생명력을 얻어낸 수작이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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