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퇴직금에 2000만원 얹어 줬는데.." 15년 뒤 그 직원이 보낸 초대장에 울었다

작은 가게나 공장을 하는 사장에게 직원은 가족과 다름없습니다.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일하다 보면 정이 들고, 그 사람의 앞날까지 걱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헤어질 때 형편보다 더 많은 것을 챙겨 주는 사장들도 있습니다.

서울 중구에 사는 정영숙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남편 이광식 씨와 함께 30년 동안 충무로에서 작은 인쇄소를 운영했습니다. 직원 다섯 명이 일하는 작은 인쇄소였지만, 부부는 그곳에서 두 아들을 키우고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인쇄소 일은 고되었습니다. 마감이 몰리는 날이면 밤을 새워 기계를 돌렸고, 잉크 냄새가 옷에 배어 집에 가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영숙 씨는 경리와 배달을 도맡았고, 남편은 기계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 가운데 부부가 유난히 아끼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열아홉 살에 보육원을 나와 인쇄소에 들어온 박준기였습니다. 준기는 말이 적고 성실해서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습니다.

준기는 첫 월급을 받던 날 영숙 씨에게 작은 손거울 하나를 사 왔습니다. "사모님, 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구한테 선물해 봐요." 영숙 씨는 그 손거울을 오랜 세월 화장대 서랍에 넣어 두고 아꼈습니다.

영숙 씨는 준기를 친아들처럼 챙겼습니다. 점심 도시락을 하나 더 싸 와서 건넸고, 명절이면 갈 곳 없는 준기를 집으로 불러 함께 떡국을 먹었습니다. 준기가 감기에 걸리면 남편이 직접 약을 사다 주기도 했습니다.

준기는 인쇄 기술을 빠르게 익혔습니다. 남편은 "저놈은 언젠가 큰 인쇄소 사장이 될 거다"라며 자기가 아는 기술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가르쳤습니다. 준기는 8년 동안 인쇄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5년 전, 인쇄 경기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컴퓨터로 출력하는 시대가 오면서 일감이 절반으로 줄었고, 기계 할부금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부부는 결국 30년 지킨 인쇄소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문을 닫던 날, 부부는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정산해 주었습니다. 준기의 퇴직금은 1,000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준기에게만 따로 봉투 하나를 더 건넸습니다. 노후 자금으로 모아 둔 돈에서 꺼낸 2,000만 원이었습니다.

"준기야, 너는 기댈 데가 없잖냐. 이걸로 작은 가게라도 차려라. 네 기술이면 어디 가서도 굶지 않는다." 준기는 봉투를 받지 않으려 했지만, 남편은 억지로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준기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영숙 씨는 사실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습니다. 인쇄소를 정리하고 남은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편의 마음을 알기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날 밤 영숙 씨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우리도 넉넉하지 않은데 괜찮겠어요?" 남편은 한참 말이 없다가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아들이 둘이나 있잖소. 그 애는 세상에 기댈 데가 하나도 없소. 그 돈이 그 애한테는 목숨줄이오."

인쇄소를 접은 뒤 부부의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아파트 경비 일을 했고, 영숙 씨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습니다. 두 아들은 각자 살기 바빠 자주 들르지 못했습니다.

새벽에 경비실로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영숙 씨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30년 동안 인쇄소 사장이었던 사람이 아파트 주민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택배를 정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일할 수 있는 게 어디냐"며 웃었습니다.

준기에게서는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었습니다. 처음 1~2년은 명절마다 안부 전화가 오더니, 그 뒤로는 연락이 뚝 끊겼습니다. 영숙 씨는 가끔 "그 아이는 잘 살고 있을까"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남편은 "잘 살고 있으면 됐지" 하며 웃었지만, 눈빛에는 서운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3년 전,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쪽 다리가 불편해져 지팡이 없이는 걷기 어려워졌습니다. 재활 치료비가 만만치 않아 영숙 씨는 일흔이 다 된 나이에도 식당 일을 그만두지 못했습니다.

영숙 씨는 남편을 부축해 재활병원을 오가며 가끔 화장대 서랍 속 손거울을 꺼내 보았습니다. 준기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밥은 굶지 않고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서운한 마음보다 걱정하는 마음이 늘 더 컸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 초, 부부 앞으로 두툼한 우편물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고급 종이에 금박으로 찍힌 초대장이었습니다. [(주)광식인쇄 파주 신사옥 준공식에 이광식 사장님 내외분을 모십니다. 대표 박준기 올림]

영숙 씨는 초대장을 든 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회사 이름이 남편의 이름이었습니다. 남편은 돋보기를 꺼내 초대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더니,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며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준공식 날, 준기가 보낸 차가 부부를 파주까지 모시고 갔습니다. 커다란 인쇄 공장 입구에는 '광식인쇄'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준기는 마흔을 훌쩍 넘긴 얼굴로 부부를 맞으며 허리를 깊이 숙였습니다.

공장 안에는 최신 인쇄기 수십 대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장 한가운데 유리 진열장 안에 낡은 인쇄기 한 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충무로 인쇄소에서 30년 동안 쓰던 바로 그 기계였습니다. 준기가 고물상을 수소문해 되찾아 온 것이었습니다.

준공식 단상에 오른 준기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보육원 출신입니다. 갈 곳 없던 열아홉 살의 저를 받아 주고, 기술을 가르쳐 주고, 마지막 날 노후 자금까지 털어 주신 분이 계십니다. 오늘 이 회사의 이름은 그분의 이름입니다."

준기는 부부를 단상으로 모시고 감사패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연락을 못 드린 건 부끄러워서였습니다. 사장님께 받은 2,000만 원으로 작은 출력소를 차렸다가 두 번이나 망했습니다. 제대로 일어서기 전에는 찾아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준기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지금 저희 회사 직원 가운데 열두 명이 보육원 출신 청년들입니다. 사장님이 저한테 해 주신 것처럼, 저도 기댈 데 없는 아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영숙 씨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남편은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아이처럼 울고 있었습니다. 15년 전 건넨 봉투 하나가 열두 명의 청년에게 새 삶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준기는 부부에게 한 가지를 더 부탁했습니다. "사장님 재활 치료는 이제 제가 모시겠습니다. 회사 근처 재활병원에 벌써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영숙 씨가 손사래를 쳤지만 준기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15년 전에 받은 걸 이제야 조금 갚는 겁니다."

준공식이 끝난 뒤, 준기는 부부와 함께 옛 충무로 골목을 찾았습니다. 인쇄소가 있던 자리 근처 오래된 만둣국집에서 세 사람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둣국을 나눠 먹었습니다. 준기가 말했습니다. "사모님, 명절마다 끓여 주시던 떡국 맛을 아직도 못 잊어요." 영숙 씨는 웃으며 준기의 그릇에 만두를 하나 더 덜어 주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 속 왕자 동상은 자기 몸에 붙은 보석과 금박을 하나씩 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줍니다. 아낌없이 나눈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다시 빛을 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 마음은 당장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받은 사람의 가슴속에 오래 남아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집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작은 정이 먼 훗날 더 큰 빛이 되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올가을 영숙 씨는 남편과 함께 남산 둘레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준기가 마련해 준 재활 치료를 받기 시작한 남편은 지팡이를 짚고도 한결 밝은 얼굴이었습니다. 단풍이 붉게 물든 숲 사이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였고, 부부는 나란히 벤치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그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행복한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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