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밉게 잘 만들었어!" 제네시스 Electrified G80 페이스리프트 [시승기]

초창기 G80 전기차는 어퍼미들급 세단을 바탕으로 한 전기차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로 존재의 의미가 있었다. 완성도를 떠나 당시만해도 이 급의 전기차 자체가 드물어 희소가치가 있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어느덧 G80 전기차도 페이스리프트를 맞이했다. 그 사이 경쟁자도 많아졌다. 과연 제네시스는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올해 개최된 베이징 오토쇼를 통해 먼저 만나봤었기에 디자인은 익숙하다.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거의 모든 한국 소비자들은 신형 eG80의 디자인에 거부감을 표하지 않을 것이다.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제네시스 페이스리프트 모델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공통점. 바로 '디테일'이 좋아졌다. 헤드램프는 이제 거의 모든 제네시스가 쓰고 있는 MLA 헤드램프가 적용됐다. 조금 답답해보였던 그릴 디자인이 개선됐으며, 충전구 커버가 이제는 전동식으로 열리고 닫힌다. 범퍼 디자인은 더 많은 공기를 받을 수 있게 생겼다. 뒷모습은 범퍼에 크롬장식이 더해진 정도.

그보다 달리진 점은 옆에서 바라본 비율이다. 휠베이스가 130mm 길어지면서 더 웅장해진 느낌이다. B-필러 부근이 아닌 C-필러 영역을 늘렸기 때문에 전체적인 비율도 더 보기 좋아졌다. 뒷좌석 도어 면적이 그만큼 넓어져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차체가 길어졌기 때문일까? 새로운 디자인의 휠은 상급모델인 G90을 연상시키도록 변했다.

많이 커졌다. 이제 휠베이스만 놓고 보면 G90이랑 40mm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동급 경쟁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BMW i5나 벤츠 EQE 보다 반 체급 높은 정도다.

체급이 높아졌다는 표현을 한 것이 과언은 아니다. 실제로 뒷좌석만 놓고 보면 G90 부럽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뒷좌석은 사실상 독립시트 구성을 갖는다. 2열시트 등받이 각도 조절과 시트쿠션 슬라이드에 발 받침대까지 갖췄다. 조주석 시트를 최대한 앞으로 밀면 어느때보다 넓은 뒷좌석 공간을 즐길 수 있다. 대신 키가 좀 큰 탑승자라면 G90과 다르게 다리가 조수석 시트백에 닿을 것 같다. 이밖에 2열시트는 통풍과 열선 기능도 지원한다. 옵션이긴 하지만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추가하면 14.6인치 듀얼모니터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G90에서 볼 수 있었던 '자동문' 기능도 탑재된다. 도어 암레스트 부위에 자리한 버튼을 누르면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센터 암레스트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문을 닫을 수 있다. 이번 eG80이 어느 정도로 뒷좌석 중심 모델로 변경됐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뒷좌석은 당연히 넓다. 원래 넓었는데 더 넓어졌다. 그래서 개선된 부분이 있다. 어색했던 다리의 위치다. G80과 다르게 eG80은 바닥에 배터리가 자리한다. 이 배터리를 차체 밖으로 노출시키지 않고 실내로 집어 넣었다. 때문에 바닥 높이가 높아졌고, 사람이 탑승하면 어색하게 다리가 올라갔었다. 그런데 이제는 휠베이스가 넓어졌고, 그만큼 다리를 더 앞으로 뻗을 수 있으니 그러한 불편이 사라졌다. 역시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뒷좌석 공간이나 거거익선(巨巨益善)인 듯 하다.

대신 트렁크 공간은 아쉬움이 남는다. 순수한 대형차라고 해도 될 정도로 큰 크기를 갖지만 트렁크만큼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골프백은 2개 정도, 꾸겨서 어떻게라도 넣어보면 3개가 가능할까?싶은 수준이다. 특히 시트백 뒷부분에 크게 돌출공간까지 차지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나 실질적인 화물 적재 모두 아쉬움이 남는다. 트렁크만 놓고 본다면 그랜저쪽이 더 앞선다.

앞좌석의 가장 큰 변화는 27인치 OLED 패널 한장으로 바뀐 계기판-인포테인먼트 통합 패널이다. 2개의 패널을 이어 붙인 것이 아니라 진짜 하나의 긴 패널을 썼다. 덕분에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경계 없이 자유로운 화면전환이 가능했다. 기본적으로 2분할 방식으로 정보를 보여주지만 운전자가 원하면 3분할 방식으로 바꿀 수도 있다. OLED 특성에 맞춰 쨍한 색감을 느낄 수 있으면서 밝은 빛이 비춰도 시야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센터페시아도 깔끔하게 변경됐다. 사실상 모든 조작이 터치패널 방식으로 변경됐는데, 조작할 때마다 햅틱 피드백도 전달했다. 대신 햅틱 강도가 조금 더 강했으면 좋겠다. 살짝 모호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밖에 워셔액이 와이퍼에서 나오는 기능, 가죽과 원목을 아낌없이 쓴 부분, 시트 다이아몬드 스티칭 내부에 별도 스티칭을 더한 부분, 센터 암레스트에 열선이 추가되는 등 소소하지만 디테일의 개선사항이 많아졌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차를 보면 눈 높은 한국인도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라는 점이다. '화려함'보다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주행을 시작하면 단번에 두 가지 특징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정숙성과 승차감이다. 먼저 정숙성보터 보자. 전기차니까 당연히 조용하다. 원래도 조용했다. 그런데 이것이 조금 더 세련된 모습으로 조용해졌다. 단순히 세상과 단절된 느낌의 조용한 느낌이 아니라 자동차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듣기 싫은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도록 노력한 모습이다.

전기모터에서 들리는 고주파음과 같은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풍절음 없이 조용할 뿐이다. 들리는 소리라면 타이어가 굴러가는 소리 정도랄까? 제네시스에서는 정숙성을 위해 액티브 로드 노이즈 캔슬링, 각종 흡차음 보강 및 추가 등등 다양한 정보를 나열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더라도 쉽게 조용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이번 eG80은 조용하다.

전기차만의 새로운 경험 전달을 위한 전기차 전용 사운드도 갖췄다. 지금은 호라이즌과 헤리티지:블랙 2개만 선택 가능하다. 먼저 호라이즌을 선택하면 우주선 느낌의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다. 벤츠와 BMW 전기차의 사운드와 유사한 느낌이다. 헤리티지:블랙으로 바꾸면 내연기관차와 유사한 소리가 들린다. 대신 고급차라는 특성에 맞춰 볼륨을 최대한 높여도 은은하게 들릴 정도로만 소리를 만들어줬다.

다음은 승차감이다. 원래도 제네시스는 승차감이 부드러워 소비자들이 좋아했다. 이번에도 역시 부드러운 승차감을 갖는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다듬어 더 완성도 높아진 승차감을 느낄 수 있다. 과거에는 그저 출렁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충격이 발생하면 생각지 못한 곳에서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같은 부드러움 이지만 충격을 조금 더 부드럽게 처리하고 있으며, 출렁거림을 조금 더 잘 붙잡았다. 전체적으로 보다 깔끔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도록 한 것이다. 과속방지턱을 넘는 느낌?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의 도움으로 더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전기차 같은 경우는 무거운 무게 때문에 이따금 경직된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eG80은 그런 부분까지 최소화된 느낌을 전달했다.

다음은 쇼퍼 모드다. G90처럼 eG80에도 쇼퍼 모드가 추가됐다. 왜 제네시스가 '플래그십 전기차'라고 강조하는지 알 수 있는 기능으로 꼽힌다. 아쉽지만 이 모드에 엄청난 기대를 하면 안된다. 차량의 불필요한 움직임을 한번 더 줄여 주기는 한다. 특히 방지턱을 지날 때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딱 타자마자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변화의 폭이 큰 수준까지는 아니다. 분명 차이는 있지만 탑승자에게 '감동'을 전달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테니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자리를 뒷좌석으로 옮겨봤다. 가장 많은 기대를 한 부분이다. 과연 G90의 느낌을 eG80에서 느낄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확실히 체급 차이는 무시할 수 없었다. G90과 eG80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었던 것이다. 의외로 노면의 반응이 쉽게 체감됐다. 그리고 가볍게 툭툭 치는 느낌도 올라왔다. 이정도는 걸러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도 들었을 정도.

쇼퍼 모드로 변경하면 운전석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감각이 재현된다. 미묘하게 바뀌는 승차감과 더불어 상하 움직임에서 조금 더 일관성을 보인다. 다만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그 변화의 폭이 큰 편은 아니다.

한가지 더. 쇼퍼 모드로 설정하면 차량이 멈출 때 브레이크 제어를 통해 조금 더 부드럽게 멈추는 기능이 적용된다. 하지만 그것이 100% 작동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이따금 '툭'하고 멈추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개선되기를 바라본다.

그렇다고 승차감이 안좋다는 것이 아니다. 매우 훌륭하고 동급 경쟁모델과 비교해도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다. 그저 G90처럼 생긴 시트와 공간으로 인해 G90의 승차감을 기대했던 것일 뿐이다.

이제 간단하게 달리면서 밸런스 확인도 해보도록 하자. eG80은 모터나 배터리 선택권이 없다. 듀얼모터가 기본으로, 370마력과 71.4kgf.m를 발휘한다. 배터리용량도 95.4kWh 단일인데, 전기형의 87.2kWh대비 9% 이상 늘었다. 참고로 배터리 셀 제조업체는 SK온.

주행모드 설정에 관계없이 잘 나간다. 전기모터 특성상 초반토크가 좋기 때문에 에코모드로 두고 운전해도 답답함이 없다. 대신 에코모드에서는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eG80의 모든 출력과 토크를 쓰지 않는다.

그보다 좋았던 점은 바로 가감속 감각이다. 지금까지 많은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타면 울렁거린다고 말하는 이유는 급격한 가감속 변화 때문이다. 가속페달 밟으면 바로 앞으로 튀어가고, 페달을 떼기만해도 회생제동으로 인해 급격하게 감속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런데 eG80은 그 과정이 점진적이다. 가속페달을 밟아도 부드럽게 가속해주고 페달을 떼도 부드럽게 감속한다. 왼쪽 패들을 당겨 회생제동 레벨을 최대한 높게 설정해도 그렇다. 덕분에 전기차를 기피했던 동승자도 "이 차는 괜찮다"는 말을 했을 정도다. 우리가 전기차에 원했던 바로 그 움직임이다.

이번에는 주행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설정해본다. 같은 양으로 가속페달을 밟지만 모터는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2.3톤의 무게를 아랑곳하지 않고 튀어나간다. 다만 시속 160km 부근부터 가속감이 빠르게 저하됐다. 참고로 급가속을 할 때 프런트 노즈가 꽤 들리는 편이다.

냉정히 보면 고속안정감 자체는 벤츠 EQE나 BMW i5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뛰어난 수준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주행 환경에서는 고속안정감의 아쉬움을 느끼긴 힘들 것이다. 또 속도감도 크게 다가오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고속주행때 안정적이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간단한 와인딩 주행을 해본다. 전기형 G80 가솔린 버전은 주행 밸런스가 좋지 않았다. 특히 3.5 터보 모델은 힘만 강력하고 이를 받아주지 못한 하체의 아쉬움도 컸다. 이번에는 달랐다. 급격하게 좌우로 움직여도 롤은 발생하지만 하체가 허둥대지는 않았다. 전륜 움직임에 일관적으로 후륜이 따라오고 그 과정도 읽기 쉬웠다. 출력과 토크를 하체가 못 받아낸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스티어링휠에서 느껴지는 감각도 명확한 편이다. 직진 주행을 하거나 코너 상황 모두 운전자에게 뚜렷한 정보를 전달했다. 단순히 가볍거나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소통이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전기차는 브레이크 페달 감각 부분도 중요한데 어쩌면 현대차그룹은 이 분야에서 가장 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페달 감각이 좋았다.

후륜 조향 기능은 최대 3.5도까지 작동한다. 특징이라면 노골적으로 후륜조향 감각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있는듯 없는듯 도와주는 성격인데, 이질감이 없으면서 회전반경을 줄여주거나 코너에서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만족감이 높았다.

물론 달리기의 한계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 eG80은 뒷좌석 탑승자에게 초점을 맞춘 고급 전기차로 개발 방향이 바뀐 모델이다. 그러한 부분을 감안하면 이정도로 달려준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2개의 모터가 여전히 따로 논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점이다. 전기형 eG80 때도 느낀 부분인데, 와인딩로드에서 조금 빠르게 달려보면 전후륜 모터가 유기적으로 작동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전륜 코너 안쪽 바퀴가 헛돌거나 한다면 출력 조절을 하던지 브레이크 기반의 토크 벡터링을 작동시키는 등 방식으로 대응이 됐으면 좋겠다. 소프트웨어적으로 금방 개선 가능하지 않을까?

이번 eG80. 단순히 휠베이스 길어지고 뒷좌석 시트가 좋아졌다고 말하기 아까운 차다. 그만큼 변화의 폭이 크다. 지금까지 국산차는 변화 했다면 눈에 보이는 부분에 치중했다. 하지만 지금의 제네시스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 많은 신경 쓴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디테일'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한 부분만 변하면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작은 차이가 모여서 결과적으로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금 제네시스는 그렇게 하고 있다.

휠베이스 이외에 뒷좌석 시트도 좋아졌다. 더 조용해졌고 승차감도 좋아졌다. 배터리는 3세대 배터리에서 4세대로 변경됐고, 그만큼 주행거리도 늘었다. 현대차그룹의 800V 시스템은 워낙 좋은 것으로 유명하니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세제혜택 후 가격 기준으로 100만원 오른 것이 전부다. 인기있는 일부 모델은 연식 변경만 해도 수백만원이 오르기도 하는데… 요즘처럼 전기차를 꺼리는 시기에는 이처럼 상품성이 좋아지고 가격 인상은 최소화 수준이다. 솔직히 얄밉긴 하다. 그렇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번 eG80은 정말 괜찮은 차다. 1억원 가까운 금액을 내고 이 차를 사도 될까? 2024년 10월 현재 시점에서 강력히 추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