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영국에서도 극우가 이겼다

박상병 2026. 5. 1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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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병 시사평론가

유럽 정치에 극우 세력의 약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탈리아처럼 이미 권력을 장악했거나 집권당 턱 밑에 있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나치의 역사가 살아 있는 독일에서는 극우 독일대안당(AfD)이 지난해 총선에서 사민당을 제치고 제2당이 됐다. 집권의 길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치 후예를 자처하는 오스트리아 자유당(FPO)은 2024년 9월 총선에서 원내 제1당으로 집권 직전까지 갔었다. 연정에 실패해 집권당이 되진 못했지만 독일어권에서 극우 정당이 원내 제1당이 된 것은 1930년대 나치당 이후 처음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도 극우 정당의 활약은 정말 놀랍다.

지난 7일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 결과는 충격적일 만큼 극우 정당의 돌풍이었다. 2024년 총선 승리의 주역인 집권 노동당은 잉글랜드에서 1496석을 잃어 1068석에 머물렀다. 전통의 보수당도 563석을 잃어 801석만 남았다. 반면 4년 전엔 단 2석에 그쳤던 극우 성향의 영국개혁당(Reform UK)은 이번에 1452석을 얻었다. 14개 지방의회에서는 과반 의식을 가진 정당이 됐다. 노동당과 보수당에서 이탈한 유권자 표심을 창당 10년도 안 된 영국개혁당이 대부분 가져간 셈이다. 심지어 노동당은 중·북부 등 텃밭에서도 참패했다. 영국개혁당 돌풍은 노동당과 보수당이 주도한 양당체제도 붕괴시켰다. 양당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의회민주주의의 본고장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집권 노동당 참패는 무엇보다 영국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이 핵심이다. 2024년 7월 총선을 통해 14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지만 그 후에도 영국 경제는 나아진 것이 없었다. 정부의 재정 부담이 갈수록 높아지자 금융위기 우려까지 제기됐다. 게다가 높은 세금과 높은 물가로 인해 민생고는 최악으로 몰렸다. 하지만 뼛속까지 노동당 색깔인 키어 스타머(K.Starmer) 총리의 자질은 기대 이하였다. 주요 결정마다 우왕좌왕하거나 알맹이 없는 메시지로 대중을 질리게 할 정도였다. 그 새 켜켜이 쌓인 대중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극우 영국개혁당에 몰표가 집중된 배경이다. 무미건조한 리더십의 스타머는 당 안팎에서 쏟아지는 사퇴 압박에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

지방선거 압승 직후 영국개혁당 패라지(N.Farage) 대표는 '영국 정치의 역사적 변화'라고 밝혔다. 패라지는 '영국의 트럼프'로 불릴 만큼 극우 인물이다. 그런 그가 말하는 '역사적 변화'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영국에서도 극우 세력이 정권을 차지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라면 오해일까. 트럼프의 미국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다. 제어할 힘이 없으면 극우의 행태를 막기 어렵다.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극우의 준동이 시작됐다. 의회정치의 교과서가 이젠 박물관으로 갈 형편이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무너지고 있다.

/박상병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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