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주자에서도 밀리나
어제(21일, 이하 한국시간) 경기다. 종반이 제법 치열했다. (다저 스타디움, SF 자이언츠-LA 다저스)
스코어는 7-5다. 홈 팀이 앞섰다. 하지만 뒤가 따갑다. 원정 팀이 자꾸 따라붙는다.
가뜩이나 못 믿을 불펜이다. 언제 불을 지를지 모른다. 도망가는 1점이 급하다.
그러던 7회 말이다. 소중한 기회가 생긴다. 1사 후에 마이클 콘포토가 안타를 치고 나간다. 됐다. 여기서부터 작업을 시작하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 타임이 걸린다. (감독) 데이브 로버츠가 주자를 바꾼다. 그럼 그렇지. 오랜만에 몸 좀 풀게 생겼다.
하지만 웬걸. 등번호 6번이 아니다. 12번을 단 알렉스 콜이 나온다. 콘포토 대신 1루 주자로 들어간다.
이건 좀 충격적이다. 다른 건 몰라도 달리기 종목이다. 그 실력은 의심받은 적 없다. 대주자 기용의 첫 번째 옵션은 늘 Kim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깨진 순간이다.
물론 콜의 능력 발휘는 없었다. 적어도 이 대목에서는 그랬다. 후속 번트 때 2루로 간 것이 전부였다. 도루나, 득점을 올리지는 못했다. 경기도 그냥 7-5로 끝났다.
뭐,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 콜은 8회 초 수비 때 좌익수로 들어갔다. 콘포토 자리에 등가로 치환된 셈이다.
만약 Kim이 대주자였다면, 조금 복잡하다. 수비 때는 다시 바꿔줘야 하기 때문이다. (9월 초 마이너리그 때 좌익수 테스트를 한 적은 있다. 그러나 아직 실전용은 아닐 것이다.)

우투수, 일요일 낮경기인데…
그러더니 오늘(22일) 또 그런다. 여전히 아웃 오브 안중이다.
현지는 일요일 낮 경기다. 평소라면 순환 근무가 이뤄져야 할 날이다. 피로가 쌓인 주전들은 좀 쉬어야 한다. 대신 벤치 선수를 활용하는 게 순리다. 그래야 실전 감각도 찾을 수 있다.
물론 시기가 시기다. 아직 안심은 이르다. 매직 넘버가 시퍼렇게 살아있다. 그동안은 전력질주가 맞다.
그래도 이건 많이 섭섭하다. 이럴 때도 안 쓰면 어쩌자는 건가. 그런 생각이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SF 자이언츠는 초짜 우완 투수(트레버 맥도널드)가 선발이다. 좌우놀이 좋아하는 로버츠 아닌가. 평소 성향이라면 당연히 타석에 세우는 게 맞다. 그런데도 ‘2루수 로하스’를 고집했다. 이건 시사하는 바가 있다.
마지막 타석은 15일이다. 벌써 일주일 전이다. 그동안 계속 벤치만 지켰다. 대주자, 대수비조차 기회가 없다.
슬슬 걱정된다. 왠지 심각하다는 느낌도 든다. 중요한 옵션 하나를 뺏긴 것 같은 기분이다.
사실 달리기는 마지막 믿는 구석이었다. 작지만 가볍게 볼 수 없는 역할이다. 더욱이 가을야구가 코앞 아닌가. 그때는 1~2점 차 승부가 많다. 따라서 유능한 대주자가 필요하다. 종반 변수를 만들고, 승부수를 띄우는 역할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로버츠다. 그래서 ‘아무리 그래도 로스터 한 자리는 들어가겠지’ 하는 낙관론이 대세였다.

일주일 넘게 선발 제외
그냥 국뽕이 아니다. 현지 매체도 비슷한 견해다.
“필드 플레이어는 포수 3명과 프레디 프리먼(1루수), 미겔 로하스(2루수), 무키 베츠(유격수), 맥스 먼시(3루수), 외야수 3명(테오스카 에르난데스, 앤디 파헤스, 알렉스 콜)이 예상된다. 여기에 유틸리티 플레이어와 벤치 멤버로 토미 에드먼과 키케 에르난데스, 그리고 Kim이 포함될 것 같다.” (MLB.com)
눈여겨볼 것은 마이클 콘포토가 빠진 부분이다. 대신 콜이 들어갈 것으로 봤다.
“(콘포토와 콜) 둘 모두 LA로 온 뒤로 확실한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애매한 부분은 있다. 그런데 콜은 외야 3자리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 그런 점 때문에 우위에 있다.” (MLB.com)
김혜성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주자로 쓰임새가 있고, 2루수와 유격수가 가능한 내야 수비 대체 요원으로도 가치가 크다”는 것이 MLB.com의 평가다.
하지만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진다. 왠지 쎄~하다. 코멘트의 온도도 달라졌다. 벌써 꽤 오래전부터다.
“Kim은 수비와 주루는 좋지만, 왼손 투수를 상대로는 공을 쫓아다닌다. 컨택트 능력도 떨어진다. 포스트 시즌에 들어가면 더 힘든 투수를 상대해야 한다. 거기서는 더 심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
그렇다고 매정하게 잘라낸 건 아니다. 약간의 가능성은 열어놓는다.
“이런 경험은 분명히 앞으로 그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 위치를 소화할 수 있는 수비의 다재다능함과 탁월한 스피드(달리기)는 PS 로스터 합류의 경쟁 요소가 될 것이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

미묘해진 PS 로스터 가능성
2004년 7월 말이다. 레드삭스의 테오 엡스타인 GM(부사장) 시절이다. 트레이드 마감시한이 코 앞이다. 급히 인턴을 찾는다.
테오 “어디 괜찮은 대주자 하나 찾아봐. 오전 중으로 리스트 정리해 줘.”
인턴 “대주자요?”
테오 “가을에 야구하려면 꼭 하나가 필요해.”
인턴은 1시간 만에 보고서를 전달했다. 맨 위에 있던 후보는 LA에 있는 외야수다. 테오 GM은 곧바로 다저스로 전화를 건다. 트레이드는 반나절만에 성사된다.
그렇게 데려온 인물이 바로 데이브 로버츠다. 그해 10월에 ALCS 4차전(상대 양키스)에서 9회에 대주자로 기용된다. 거기서 2루 도루를 성공시키고, 후속 적시타 때 동점 득점을 올린다.
이걸로 빨간 양말은 4전 전패의 나락에서 기사회생했다. 기세를 타고, 시리즈 역스윕까지 이룬다. 그리고 내친김에 월드시리즈까지 승승장구했다.
86년 된 밤비노의 저주에서 해방된 사건이다. 그 도루에는 ‘더 스틸(The Steal)’이라는 명칭까지 붙었다. (엡스타인 옆의 인턴은 후에 레드삭스 부단장, 뉴욕 메츠 GM을 역임한 잭 스캇이다.)
그렇다. 가을이 되면 작은 요소로 승부가 뒤바뀐다. 그런 경우가 흔하다. 가장 잘 아는 것이 로버츠 감독 자신이다.
하지만 매정하게 외면하고 있다. 철저한 배제다. 이런 식이면 합류를 장담할 수 없다.
가뜩이나 부상 공백이 길었다. 멀쩡하던 타격감도 사라졌다. 게임에 나가야 뭐라도 해볼 것 아닌가.
들쭉날쭉 기용이다. 어쩌다 나가도 기껏 1~2타석이다. 못 치면 바로 빼 버린다. 자신감을 갖는 게 이상하다. 9월 성적이 14타수 1안타다. 타율로 따지기도 초라하다. 겨우 0.071에 그친다.
그래도 다저스 공식 SNS에는 꾸준히 등장한다. 각종 이벤트와 행사에 참가하는 모습이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안 된다. 어서, 빨리, 그라운드로 돌아와야 한다. 대타가 됐던, 대주자가 됐던, 대수비가 됐던. 일단 돌아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