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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상법이 기업들의 경영전략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깊이 있게 분석합니다.

㈜두산은 국회 상법개정안 논의에 앞서 올해 초 선제적으로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혔다. 최근 상법개정안 논의로 인해 소액주주의 권리 제고, 이사회 독립성 강화 등 긍정적인 부분이 예상되지만 기업의 경영 자율성이 훼손된다는 반박도 나온다. ㈜두산은 그간 이사회 구성에서 독립성이 부족하단 비판이 많았던 만큼 이번 상법개정에 따른 변화도 기대된다.
상법개정 불확실성 속 자사주 소각 발표
㈜두산은 두산그룹의 지주사로 박정원 대표이사(회장)가 지분 7.72%로 단일 최대주주다. 두산그룹은 대주주 일가가 지분을 분산해 소유하고 있으며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율은 40.11%로 지배력이 공고한 집단이다.
최근 국회 본회의에서 1차 상법개정안에 이어 2차 개정안까지 통과됐다. 2차 상법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도입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1차·2차 상법개정안에서 통과된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와 집중투표제 도입 의무화는 대주주에게 큰 부담이다. 소액주주의 권리 향상, 이사회 독립성 강화, 지배구조 개선 등 긍정적이 변화도 예상되지만 기업의 경영 자율성 악화,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 등 가능성도 커진다.
국회에선 자사주 의무 소각을 담은 3차 추가 상법개정안을 논의중이다. ㈜두산의 자사주 비율은 17.92%로 대기업 중 높은 편에 속한다. 자사주는 의결권은 없지만 우호세력에게 넘기면 우호지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
㈜두산은 상법개정에 앞서 올해 2월 선제적으로 자사주 소각 계획 밝혔다. 올해부터 2027년까지 매년 33만주씩 총 99만주의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이는 보통주 발행주식 총수의 6%에 해당하며 소각 비용은 발표 당시 약 3600억원으로 추산됐다. ㈜두산이 자사주 소각 계획을 내놓은 것은 2016년 이후 처음이다. 이에 더해 양도제한조건부주식(SRU)으로 처분될 8만7145주를 합산하면 자사주 비중을 10% 이하로 낮출 전망이다.
상법개정 여파, 대주주 견제 가능성 커져
그간 ㈜두산의 이사회 의장은 박정원 회장이 맡아왔다. 대표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지만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것이 보다 선진화된 지배구조 체계로 평가받는다. 박 회장은 ㈜두산의 대주이자 오랜 기간 회사에 몸담아온 경영자다. ㈜두산이 향후 대표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 계획을 명시하지 않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보다 중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두산그룹은 과거 오너 일가와 학연으로 연결된 인물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면서 이사회의 독립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사외이사의 임기가 마무리되면 계열사의 사외이사로 이동하는 등 오랜 기간 두산그룹과 연을 맺어온 인물들이 많다.
2014년 ㈜두산 남익현 사외이사는 2017년 두산에너빌리티 사외이사로 이동한 뒤 2023년까지 두산건설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2018년 ㈜두산 이두희 사외이사는 상법상 제한된 6년간의 임기를 마친 뒤 2024년 두산밥캣의 사외이사로 이동했다. 또 두산밥캣의 이두희 사외이사는 박 회장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이며 현재 ㈜두산 허경욱 사외이사는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과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1년 후배다.
㈜두산은 오랜 기업 경영 경험을 갖춘 경영, 재무, 국제금융, 리스크 관리, 법무, ESG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사진을 꾸렸다는 입장이다. 장기간 사외이사의 임기를 보장하는 방식은 사업 연속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이사회 독립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단점도 상존한다.
이번 상법개정안으로 3% 룰과 집중투표제는 시행까지 약 1년간의 여유가 남아 있다. ㈜두산은 물론 대기업들은 상법개정안에 따른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울 전망이다. 경우에 따라 소액주주 연대나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으로 감사위원·이사 선임 시 ㈜두산이 의도한 인사가 선임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소수주주의 권리와 대주주 일가와 이사회의 견제 기능이 강화되는 한편 이사회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모두 존재한다.
김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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