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밖에서 답 찾자... '호·캐·튀'로 눈 돌리는 광물업체들
미중·호중 갈등 후 중국산 수입 리스크 커져
중국산 비철금속 수입국 호주·캐나다 다각화
붕소는 중국산 대신 튀르키예산 부쩍 늘어
해외에서 알루미늄, 니켈 등 비철금속 광물 및 중간재를 들여와 국내에 공급하는 중견 수입업체 A사는 2020년부터 호주산 구매 비중을 의도적으로 늘렸다. 2년간 호주 공급선 확대에 힘쓴 결과, 10% 내외였던 호주산 비중은 최근 30% 대로 상승했다.
중국·호주 갈등이 한국 광물시장에도 영향
A사가 호주산 광물 수입을 늘린 것은 가격이 저렴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지정학적인 이유(국제정치 환경 변화)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때 시작된 미·중 갈등이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지면서 중국산 광물을 사다 쓰기가 갈수록 위험한 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자원 무기화' 기조를 바탕으로 핵심 광물 수출을 줄이는 것도 중국산 수입 감소에 한 몫을 했다. 한때 60%이상이던 A사의 중국산 광물 수입 비중은 현재 40~50%를 밑돈다.
중국과 호주 사이에 발생한 갈등도 하나의 이유가 됐다. 코로나 원인 규명 문제와 홍콩의 보안법 사태로 인한 외교 분쟁 때문에, 중국이 호주산 쇠고기와 석탄 수입을 금지했고, 호주는 중국에 수출하는 철광석 물량을 줄이며 맞대응했다.
"호주산 원자재를 가장 많이 수입해 가던 나라가 중국이었잖아요. 그런데 두 나라 갈등 이후, 과거 호주에서 중국으로 갔던 광물이 한국으로 대량 공급되는 중이에요. 호주산 물량이 많아지면서 덩달아 가격도 싸진 측면이 있죠."
A사의 김모 대표는 호주산 수입 물량이 늘어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호주·캐나다·튀르키예가 중국 대체 중
한국이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희토류 △니켈 △리튬 △코발트 △알루미늄 등의 핵심광물 공급망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어진 결과, 세계화 기간 내내 최고의 가치를 차지하던 '가격' 과 '효율성'에 대한 신화가 무너졌다. 대신 국제 거래 관계에서 '안정성'과 '신뢰'의 중요성이 부쩍 높아졌고, '믿을 수 있는 나라'끼리만 공급망을 공유하는 쪽으로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중이다.
국제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가 진행 중인 영역이 바로 자원 분야다. 국내 철강·비철금속 기업은 이미 발빠르게 공급선 다양화에 착수해, 호주 캐나다 튀르키예 등 친미 자원 대국을 중국·러시아의 유력한 대체지로 삼기 시작했다.
상반기 한국무역협회가 연간 거래실적 50만 달러 이상인 국내 기업 1,094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철강·비철금속 기업의 36.8%는 "핵심 품목의 대체 공급선 발굴을 추진하고 있거나 계획 중" 이라고 응답했다. 광물업계 관계자는 “광물 거래는 다른 품목과 비교해 영업이익률이 낮은 특성 때문에 운송비 부담을 줄이고자 가깝고 생산 여력도 좋은 중국을 선호해 왔다” 면서 “그러나 요즘은 호주나 캐나다 등 2 ·3순위로 여겼던 국가들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하는 업체가 확실히 늘었다”고 설명했다.
호주산 수입증가율, 중국산보다 높아
광물 거래업체들이 중국 외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분위기는 실제 수입 통계로도 확인됐다. 한국일보가 한국광해광업공단 및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제공하는 광종(원재료 기준)의 국가별 10년치(2012~2021) 수입 통계를 분석한 결과, '광물종합지수'를 통해 수급을 관리하는 7대 희소금속(니켈 리튬 망간 몰리브덴 코발트 텅스텐 희토류) 중 호주의 비중은 2012년 7%(2억 2,630만 달러)에서 지난해 12.2%(6억 1,0 00만 달러)로 비중과 금액 모두 최고치를 찍었다.
같은 기간 중국산 비중도 14.2%(4억 6,050만 달러)에서 21.6%(10억 8,300만 달러)로 높아졌으나, 주목할 부분은 수입 증가의 속도다. 호주에서 수입한 희소금속 규모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35.4% 증가해 중국산 수입 증가율(29.2%)를 앞질렀다.
호주산의 약진이 가장 두드러진 금속은 니켈이다. 한국은 2015년 호주에서 7,519만 달러의 니켈을 수입하다가, 2018년 1억 달러를 넘겼고, 지난해에는 수입액이 4억 6,700만 달러로 늘었다. 지난해 수입 니켈 중 호주산은 전체의 23%를 차지하며, 수입산 중 최대 비중을 기록했다. 호주산 니켈은 주로 고성능 2차전지(충전 가능한 배터리) 제조를 위한 순도 99.8% 이상의 중간재로 생산된다. 최종적으로는 전기차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의 양극재(전지의 극을 구성하는 소재)로 쓰인다.
김경훈 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중국은 또 다른 2차전지 원재료인 코발트와 희토류 등에서 여전히 최대 공급처 자리를 유지 중이지만, 수입되는 희소금속 광종 숫자 등 교역 수치만 놓고 보면 전반적인 중국 의존도는 서서히 낮아지는 추세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대체할 캐나다…튀르키예도 물망
광물 업계에선 호주 외에도 캐나다를 유력한 공급 후보국으로 꼽는다. 한국 광해광업공단이 지난달 27일 주최한 캐나다 핵심광물(니켈·리튬) 세미나에는 국내 50여개 광물 거래업체가 참여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세미나에 다녀온 한 광물 수입업체 관계자는 “이전까지 전기차 배터리용 니켈과 희토류의 주요 공급선이 중국이었으나, 중국 비중을 줄이고자 캐나다에서 사업 기회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공급망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물론 구조적 취약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팔라듐 공급에서 캐나다가 러시아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희소금속 중 하나인 팔라듐은 내연기관 차량 촉매제와 수소연료전지에 주로 쓰이는데, 작년 러시아산 수입 비중이 32%(4억 9,700만 달러)에 달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이현복 북방지질자원전략센터 연구위원은 “5월 러시아가 한국에 원자재 수출 금지를 발표해 팔라듐 수출에서 실제 제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면서 “캐나다가 새 공급선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캐나다산 팔라듐이 그간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러시아산 대비 가격이 다소 저렴한 것이 강점"이라며 "캐나다도 한국 수출에 대한 관심도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 또한 희소광물의 대체 공급선이 될 수 있다. 튀르키예는 2017년부터 중국을 제치고 한국의 붕소 주요 수입국이 됐다. 붕소는 전기차 모터를 돌리는 영구자석 제조에 쓰인다.
한국수입협회는 올해 8월 튀르키예 광물협회와 접촉해 붕소, 희토류 등 광물 시장 정보 교류의 물꼬를 텄다. 수입협회 관계자는 “이번 협의를 통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는 광물 수입 기업과 튀르키예 생산업체를 더 정확히 매칭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윤현종 기자 belly@hankookilbo.com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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