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필리핀 대형 개발사업에 2兆 ‘유상 차관’... 불꺼진 원전 다시 켰다(종합)
총 20개 MOU 서명
현지에 ‘농기계 생산 기지’ 설립... 방산 수출도 탄력
윤석열 대통령은 7일(현지시각)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경제와 안보 등 전방위적 분야에서 협력이 대폭 강화됐다.
특히 필리핀 도로·교량 등 대형 인프라에 2조원 규모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투입키로 하면서, 우리 기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38년간 멈췄던 ‘바탄 원전’의 타당성 조사도 한국수력원자력이 맡게 되면서, 양국 간 원전 협력에 청신호가 켜졌다.
양국 정상은 이날 오전 마닐라 말라카냥 궁에서 확대 회담을 갖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총 7건의 문서(MOU)에 서명했다. 오후에 열린 비즈니스 포럼에서도 13건 문건에 서명, 총 20건의 MOU를 맺었다.
◇ ‘랜드마크 인프라’ 조성에 유상 차관... 韓 기업 진출 교두보
양국 정상이 이날 합의한 경제협력 분야의 키워드는 ‘인프라’다. 현 마르코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빌트(Built) 배터(Better) 모어(More)’로, 대형 인프라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라구나 호수 순환도로와 PGN 해상교량 건설사업에 한화 총 2조원 규모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지원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이 두 사업은 EDCF 사업 기준 역대 1·2위의 대형 개발협력 사업이며 우리 기업들이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DCF는 ODA의 한 형태로, 개도국의 경제·산업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장기·저리로 빌려주는 자금을 뜻한다. 사업권도 시공사가 우리나라 기업으로 한정되는 경쟁입찰로 진행된다.
라구나 사업은 총 37.5㎞의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EDCF로 첫 번째 구간(7.9㎞) 건설에 약 9억500만 불을 지원하게 된다. PGN 교량 사업은 필리핀 중부에 있는 세 개의 섬인 파나이·귀마라스·네그로스 섬을 연결하는 것을 뜻한다. 첫 번째 교량 13㎞ 건설에 10억 달러를 지원한다. 필리핀 EDCF의 경우, 누적 사업 규모가 20조6000억 달러로 전체 지원 대상 59개국 중에 4위에 해당된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6일 현지 브리핑을 통해 “글로벌 중추국가를 목표로 꾸준히 EDCF 역할을 키워온 결과, 이제 (단일 프로젝트별) 1조 원이 넘는 대규모 사업도 지원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 기업의 필리핀 및 동남아 인프라 시장 진출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필리핀의 지역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동시에, 우리나라 기업의 대형 인프라 사업 수주를 지원함으로써 양국이 윈-윈하는 경제 협력 성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1억1000만달러 규모의 사마르 해안도로 2차 사업 차관공여 계약도 체결했다. 작년 우리나라 기업이 완공한 1차 사업(2000만달러)과 연계된 사업이다.
또 양국 간 경제혁신파트너십(EIPP) 프로그램 체결, 우리 정부가 오는 2027년까지 필리핀 전자정부 및 통신 네트워크 관련 종합적인 ‘정책 컨설팅’을 제공하기로 했다. 박 수석은 “향후 필리핀 전자정부,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경쟁력 있는 우리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 36년간 멈췄던 ‘바탄 원전’, 한수원이 ‘타당성 조사’
필리핀 정부는 ‘바탄 원전(621MW)’ 건설 재개 관련, 타당성 조사도 우리 기업에 맡기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1986년 체르노빌 사태 등으로 건설이 중단된 바탄 원전 건설 재개 필요성에 공감했고, 이번 순방을 통해 한수원이 필리핀 에너지부와 타당성 조사 MOU를 체결하는 구체적 성과를 거두게 됐다.
마르코스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발표한 ‘에너지 계획 2050′에 따르면, 필리핀 정부는 화석연료 저감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을 20%에서 50%로 높이고, 원전을 4.8기가(3호기) 정도 건설할 계획이다.
특히 바탄 원전은 우리나라 고리 2호기와 동일한 노형인데다, 한수원이 40여년간 운영해 왔다는 점에서 향후 수주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타당성 조사는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2022년 6월 현 대통령이 취임한 후 같은 해 11월 ASEAN 정상회의부터 논의가 시작됐고 실무 회의를 계속 하다가 이번에 MOU를 맺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중동 바라카 원전 수주에 성공한데 이어, 체코 신규 원전에서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등 ‘원전 외교’ 성과를 이어오고 있다.
◇에너지‧공급망 분야 협력 강화... 한국軍, 방산 수출 계기 마련
이번 순방을 계기로 필리핀 카바나투안시(市)에 ‘한국 농기계 생산단지’도 건설된다. 한국농기계협동조합은 2018년부터 필리핀 농업부와 단지 조성 방안을 논의해왔다. 해당 단지가 조성되면 필리핀 환경과 작물에 적합한 농기계를 공동으로 개발·보급하고, 국내 농기계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거점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양국 산업부는 핵심 원자재 공급망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필리핀은 니켈 세계 2위, 코발트 6위(2023년 기준)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MOU로 양국은 핵심광물 투자 정보를 교환하고 공급망 중단 시, 상호 지원하기로 했다. 또 광산 개발·제련을 위한 공동 연구개발(R&D)도 확대한다.
국방 및 방산, 해양분야 걸친 안보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두 정상은 필리핀에서 실시된 연합훈련에 한국군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고, 양국 국방 당국간에도 교류를 확대키로 했다. 또 필리핀 군 현대화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보다 확대하기로 했다. 또 양국 해경기관 간 MOU를 통해 해상 초국가범죄 관련 정보 교환 및 수색 구조 등 해양 안보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 밖에 양국은 향후 5년간 민간·정부 차원의 관광협력을 보다 활성화하기로 했다. 작년 필리핀을 방문한 외국인 가운데 한국인은 144만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외국인 4명 중 1명이 한국인인 셈이다. 한국을 방문한 필리핀 국민도 36만명으로, ASEAN 국가 중 세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6일 현지 브리핑에서 이번 순방의 의미를 강조했다. 김 차장은 “1949년 수교 이래 양국이 정상 차원의 공동문건을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새롭게 수립한 만큼 이에 걸맞은 협력이 전방위적으로 추진됐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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