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엄마에서 발달장애아 엄마로...10년의 기록, 영화로

윤유경 기자 2024. 9. 2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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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그녀에게' 원작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류승연 작가
"장애는 누구나 갖게 될 수 있어, 사람들이 '나와 다른 존재 아니구나' 생각하길"
"미디어 속 판타지성 갖춘 장애인 모습의 한계, 현실성 있는 캐릭터 등장해야"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 영화 '그녀에게' 스틸컷. 발달장애 자녀의 부모 상연(김재화, 왼쪽)과 진명(성도현)의 모습.

'장애도(島)'라는 말이 있다. 장애가 있는 자녀의 부모가 자녀의 장애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심리적으로 묶여있는 상태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곤 장애인 자식만이 전부이고 오로지 자식의 장애를 중심으로 삶이 돌아가는 섬”(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중)을 뜻하는 말이다.

지난 11일 개봉한 이상철 감독의 영화 '그녀에게'는 자폐성 지적장애 2급을 가진 아들 '동환'과 비장애 딸 '수인', 쌍둥이 자녀를 둔 전직 기자 류승연 작가의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2018)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류 작가 본인이 국회 출입기자로 일하다 결혼 3년 만에 얻은 자녀의 출산부터 초등학생 저학년까지 성장 과정을 담았다. 영화와 책은 발달장애 자녀의 가정이 '장애도'에서 벗어나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10년의 세월을 거쳐 세상을 향해 나아간 그에게 한 부모는 장애인(長愛人)이란 “오랫동안 길게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3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한 카페에서 류승연 작가를 만났다. 류 작가는 “장애도라는 섬 자체가 없어지는 날이 우리 사회가 변화된 방증”이 될 거라 말했다. 그는 미디어 속 장애인과 달리 발달장애인 자녀와 가족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준 영화에 감사하다며 “발달장애인 가정 가까이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먼저 영화를 봤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류승연 작가. 사진=본인 제공

-본인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영화를 보니 어땠나? 직접 영화 각색도 참여했다고.

“만족스러웠다. 나는 원작자, 각색자일 뿐이고 이 영화는 감독님이 만든 감독님의 영화다. 게다가 주인공은 '상연'(김재화 역)이지 '승연'이 아니다. 비장애인으로 살던 부부의 가정에 발달장애인 자녀가 오면서 겪게 되는 일을 현실적으로 그려준 영화가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판타지가 아닌 우리의 밀접한 삶을 보여주는 영화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좋았다.”

-본인의 이야기임에도 '상연'과 '승연'을 분리할 수 있었나?

“영화는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당연히 덧붙여진 영화다. 참고로 나는 기자상을 받은 적 없다. (웃음) 우리 집이 그렇게 크고 깨끗하지도 않다. 현실이 아닌 건 확실히 맞다. 예를 들어 똥이 침대 위에 있던 장면이 있다. 우리는 '똥파티'라고 표현하는데, 현실을 그대로 다 보여줬다면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가 됐어야 한다. 영화에선 관객들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게 수위 조절을 해줬다. 실제 똥파티가 그 정도로 끝나겠나. 어두컴컴한 어둠 속 무언가 코를 찌르는 냄새에 눈을 뜬다. 킁킁거리다 눈을 뜨면 '아!' 먼저 깨닫는다. 불을 켜면 그 순간 온 이불과 아이의 얼굴, 딸 아이, 옆에 있는 내 옷과 옷장까지 똥이 묻어있다. 발달장애 부모들은 '영화가 너무 순한 맛 아니야?'라고 말한다. 만약 이걸 현실적으로 보여줬다면 극영화로서 다가갈 수 없었을 거다. 수위 조절을 잘해주신 감독님에게 감사하다.”

-영화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나?

“영화에 몇 점을 주겠냐고 물어보길래 98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왜 2점을 뺐냐면, 책에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조금 더 많이 들어있다. 영화에서는 (후반부에) 상연이 (장애 자녀를 가진) 후배 기자 전화를 받으면서 '울지마. 지금 그럴 때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부터 전달되는 부분이다. 장애 자녀를 둔 가정이 살아갈 수 있는 방향성을 전달하려는 건데 그 부분이 짧다고 느껴졌다. 시나리오 과정에서도 주장했는데, 교육 영상처럼 너무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아 좋았다는 비장애 관객들의 리뷰를 보고 '내가 진 게 다행이다' 생각했다.

영화를 처음 만들 때부터 남편도 '굳이 남편 입장을 많이 쓰지 말고 엄마에게 집중해달라' 부탁했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남편이 조금 밖에 안 나와 서운해하더라. (웃음) 남편의 글로 봤을 땐 몰랐던, 직접 눈앞에서 (남편 역을 맡은) 성도현 배우가 흐느끼며 우는 장면과 소파에 웅크리고 자는 모습, 그가 짊어진 무게가 실제화돼 눈앞에 보이니까 남편의 이야기가 조금 더 들어갔어도 괜찮았겠다 싶었다.”

▲ 영화 '그녀에게' 스틸컷. 후배 기자와 정치부 기자 상연(오른쪽)의 모습.

-'상연' 역을 맡은 김재화 배우 연기 지도를 직접 했다고 하던데.

“김재화 배우에게 연기 지도를 한 게 딱 한 번인데, 정치부 기자 시절 상연과 정치인의 통화 장면이다. 김재화 배우에게 더 못되게 연기해달라고 했는데 부담이 크셨던 것 같다. 지금 보면 배우 입장에선 모든 과정이 다 힘들었을 것 같다. 보통 실존 인물을 연기하면 죽은 과거의 사람인데, 눈 뜨고 멀쩡히 옆에 있는 데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얼마나 부담이 컸겠나. 오로지 상연만의 캐릭터가 새롭게 나왔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현실 고증하겠다는 욕심을 냈다. (웃음) 나중에 GV에서 '이 자리를 빌어 김재화 배우님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가장 강조하고 싶었나?

“남편은 맨 처음 (상연이) 기자일 때의 장면이 나오는 게 오글거려 싫다고 한다. 나는 그 장면이 반드시 나왔어야 한다고 본다. 기자일 때의 모습은 결혼해서 자녀를 갖고 계획을 세우는 보통의 비장애인 모습이다. 장애는 누구나 갖게될 수 있다는 사실, 나이가 들어 개인이 장애를 갖게 될 수도 있고 자녀 혹은 부모가 장애를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사람들이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구나' 생각하면, 그때서부터 비로소 우리를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그 이후 정책이든 복지든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 영화 '그녀에게' 스틸컷. 발달장애 자녀 '지우'(빈주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엇이었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은 탈장 수술 때문에 잠들어 있는 아들을 보며 상연이 '깨어나지 않아도 괜찮아. 더는 이런 세상에서 살지 않아도 돼. 엄마는 괜찮아'라고 말한 장면이다. '이런 세상에서'가 핵심이다. 그 대사 안에 발달장애인 자녀의 양육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와 고민이 다 들어 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이런 세상'이 아니다. 다른 세상으로의 변화를 바란다.”

-책은 2016년부터 연재한 칼럼 '동네 바보형'을 엮어 만들었다. 미디어가 장애를 다루는 방식이 아닌 현실 속 장애인과 그 가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썼는데.

“칼럼을 쓴 2016년부터 2017년, 비장애인인 내가 미디어에서 본 유일한 발달장애인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이 '동네 바보형'이라며 흉내 내는 모습이었다. 발달장애인의 모습이 유일하게 보여지는 통로가 개그 프로그램이라니. '저게 내 아들의 미래라고?' 이건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 삶의 모습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도 하나의 미디어다. 잘하는 게 많지 않은 내가 동환이 엄마로 태어나 잘한 게 하나 있다면, 동환이의 삶에 대해 알리는 작업을 한 거다.”

-현재 미디어가 장애를 다루는 방식엔 변화가 있다고 보나.

“분명 달라진 건 있다. EBS '딩동댕 유치원'에 자폐인 친구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나. 심지어 자폐인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캐릭터가 될 거라는 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우영우에 열광하고 아껴줬던 전 국민의 따뜻한 온기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지난해 교사 교권침해 사례가 발생했을 때 가장 큰 화살은 발달장애인과 부모에게 향했다. 발달장애인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가 부각되고 그들의 부모가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외치고 싶었다. '여러분, 작년까지 우리 아이들한테 환호하지 않으셨어요? 자폐인 너무 사랑해주셨잖아요'라고.

한계라고 본다. 판타지성을 갖춘 장애인의 모습이 미디어에서 하나의 소재로 활용만 됐을 때는 실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봤을 때까지 연결되지 않는다. 실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에 대한 현실성 있는 캐릭터가 미디어에 등장해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응원받을 수 있다면 그땐 또 달라질 수 있을 거다.”

-판타지가 아닌 실제 발달장애인 가정이 미디어에 등장한 사례를 꼽는다면.

“배우 오윤아님의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이 KBS2 '신상출시 편스토랑'에 나와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 번은 동환이와 지하철을 탔는데 옆에 있는 할머니가 '아들 손 한 번 잡아봐도 되냐'고 하시더라. 할머니는 동환이 손을 잡아보시더니 '편스토랑 보면서 몰랐던 걸 많이 깨닫고 있다. 엄마도 힘들지만 아이가 가장 힘들겠다. 내가 그걸 느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예쁘게 잘생겼네. 힘내서 잘 살아' 응원해주시는 걸 보고, 현실의 발달장애인 삶을 보여주고 그 모습을 통해 사랑받을 땐 실제 발달장애인인 우리 아들도 얼마든지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경험한 순간이었다. 앞으로 미디어가 추구해 나가야 할 방향성도 이런 방향이라고 본다.”

-책에선 발달장애 자녀를 둔 가정이 '장애도'에서 벗어나 세상과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포스터에도 동환이와 내가 안고 있고, 옆은 다 흩날리듯이 표현돼 있다. 동환이가 어릴 때 나는 지옥의 3년을 살았다. 데리고 죽을까, 혼자 죽을까, 3년 동안 하루도 안 빼놓고 생각하며 사는데 주변에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좋은 엄마'라고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다. 지나고 보니 그때 나는 남편도, 비장애 자녀도 없고, 오로지 아들만 보고, 아들은 나만 보며 뒤엉켜 살았다. 나중에 보니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둘만 있는 이 섬이 아니라, 저 드넒은 세상 속이었다.

▲ 영화 '그녀에게' 포스터.

아들이 어렸을 땐 못했다. 아들의 장애를 완전히 수용하지 못했고 나도 장애 혐오가 있는 비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장애도에 가뒀던 가장 큰 이유다. 우리 사회가 장애도라는 실존하는 섬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다. 교육, 복지 등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장애 특성에 맞게 잘 살아갈 수 있으면 섬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지 못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장애가 있는 자녀의 대다수 가정이 장애도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장애도라는 섬 자체가 없어지는 날이 우리 사회가 변화된 방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에선 많이 다뤄지지 않았지만 책에는 '장애도'를 설명하며 아빠의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에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며) 엄마를 버려야 해. 엄마는 없다고 생각해'라는 대사가 나온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남편도 기자였는데 아들이 발달장애인이 되고 치료실 전쟁이 시작되면서 모든 걸 다 포기했다. 남편은 매체(의 규모, 영향력)가 낮아져도 단돈 10만 원이라도 연봉을 더 주는 곳으로 이직했다. 그게 유일한 효용 가치라는 생각에 그렇게 살았고 남편도 장애도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지금은 서로 아들의 장애와 더불어 우리가 원하는 꿈과 목표도 함께 성취하자고 말한다. 아들의 장애와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비장애 자녀 수인이 '차라리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책에서 수인이 본인 인생에서 1인자로 살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영화에 나온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아들에게 모든 게 맞춰진 삶이었다. 당시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는데 욕이 담긴 메일을 많이 받았다. 어른이 돼 자녀를 두고 사는 비장애 형제자매들이었는데, 본인이 장애인 형제자매를 돌보는 수단으로 밖에 사용되지 않아 키워진 화, 분노, 한이 절절하게 담긴 메일이었다. 크게 반성했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딸에게 일부러 더 시간과 관심, 애정을 쏟았다. 내가 딸에게 바랐던 건 '보통의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기'였다. 딸은 정말 엄마의 바람대로 잘 자라 말대꾸도 잘하고 동생한테 소리도 잘 치고 보통의 아이들처럼 자라주고 있어 고맙다.(웃음)”

▲ 영화 '그녀에게' 스틸컷. 영화에 출연한 류승연 작가의 모습.

-영화 속 초등학교 장애 이해 교육을 하려다 장애인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교사의 이야기에 하지 못한 장면이 나온다. 어떤 교육을 하고 싶었나?

“현장 교사는 실제 장애 이해 교육이 낙인이 되어버리는 경우를 보게 되기 때문에 의견이 굉장히 갈리는 문제다. 현재의 어려움보다 궁극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한다면 장애에 대해 누구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장애'라는 단어 자체는 무미건조한 하나의 단어다. 우리가 '장애'라는 단어에 부정적 의미를 담았기 때문에 장애 이해 교육이 꺼려지는 분위기가 생긴다. 부정적 의미를 걷어내면 '장애'라는 단어의 뜻만 남는다. 장애가 하나의 특성처럼 소개되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부터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교육 현장이 됐으면 한다.”

-책에서 장애등급 심사, 공교육 시스템 등 장애 제도의 문제점을 다층적으로 지적했다. 6년이 지난 지금 변화가 있었나.

“책을 쓴 시점은 8년 전이다. 7년 전 특수학교 '서진학교'를 지어달라고 엄마들이 무릎을 꿇었다. 올해 서울 중랑구에선 주민들이 특수학교 동진학교 설립을 반대해 엄마들은 또 무릎 꿇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 사회는 변화했나? 내가 이 사회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6년이 지난 지금 동환은 청소년이 됐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또 있다면.

“중학생이 된다는 건 그나마 본인을 보호해줬던 '어린이'라는 보호막을 벗고 성인과 똑같은 신체를 지닌 발달장애인이 되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아들의 삶은 또 다시 새로운 문제들에 부딪혔다. 청소년기 일들과 문제점,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룬 책 '아들이 사는 세계'가 내일 출간된다. 아동기가 재활치료의 품에 있다면 청소년기에는 특수교육의 품, 성인기에는 사회복지의 품에 안기게 된다. 몇 년 뒤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부딪히게 될 여러 어려움을 책으로 써서 총 책 세 권을 써놓으면, 적어도 동환이 엄마로서 이번 생에 내가 해야 할 사명 하나는 끝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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